전체 글 (259) 썸네일형 리스트형 어떤 정부기관의 넝마주이 소비 방법 1. 내가 아는 넝마주이나는 넝마주이를 알고 있다. ‘넝마’는 입지 못할 정도로 낡고 해진 옷을 가리킨다. ‘주이’는 줍는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까 넝마주이는 넝마를 줍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요즘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지만 내가 태어난 1960년대와 10대였던 1970년대에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등에는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바구니가 지워져 있었다. 손에는 기다란 집게가 들려 있었다. 내 기억 속에 넝마주이는 다들 깡마른 체격이었는데 그들의 옷은 대체로 넝마였다. 이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그들이 돌아다니면서 거리에서 주운 것들이었다. 그들의 대바구니는 넝마만 담지는 않았다. 신문지나 골판지를 비롯한 종이와 못이나 철근 같은 쇳조각이 담기는 것은 예사였고 일반 가정집에서 먹다 남긴 .. 연꽃과 고추잠자리 이런 것이 리얼리티구나~~~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대구간송미술관에서 보았다.연잎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는데처음에는 종이가 썩어서 저런 줄 알았다.이 그림을 보고 나는 김홍도가 그냥 김홍도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내일 한 번 더 대구간송미술관에 간다. 마산 창동 버들국수 국수+육전+알파 1.마산 창동에 가면 ‘버들국수’를 만날 수 있다. 창동예술촌 학문당 서점 뒤쪽 골목에 살짝 돌아앉았다. 아마 창동예술촌이 조성될 즈음에 들어섰는데 알고 찾는 이들이 제법 있다. 국산 재료에다 공장에서 만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수와 떡국이 맛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집 국수는 일단 씹는 맛이 남다르다. 육수까지 그럴듯한데 주인아주머니가 대놓고 말은 않지만 가만 보면 자부심이 은근 느껴진다. 이를테면 이렇다. “국수 면발이 식감이 참 좋아요.” 이러면 “아무리 면발이 좋아도 육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지 않아요?” 대답한다. 육수가 좋으니 떡국도 맛이 좋다. 특히 겨울철에는 매생이를 넣어서 끓인다. 몽글몽글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듯 씹히지 않는 그 느낌이 나는 좋더라. 굴도 넣어서.. 마산 창동 버들국수 국수+육전+알파 1.마산 창동에 가면 ‘버들국수’를 만날 수 있다. 창동예술촌 학문당 서점 뒤쪽 골목에 살짝 돌아앉았다. 아마 창동예술촌이 조성될 즈음에 들어섰는데 알고 찾는 이들이 제법 있다. 국산 재료에다 공장에서 만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수와 떡국이 맛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집 국수는 일단 씹는 맛이 남다르다. 육수까지 그럴듯한데 주인아주머니가 대놓고 말은 않지만 가만 보면 자부심이 은근 느껴진다. 이를테면 이렇다. “국수 면발이 식감이 참 좋아요.” 이러면 “아무리 면발이 좋아도 육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지 않아요?” 대답한다. 육수가 좋으니 떡국도 맛이 좋다. 특히 겨울철에는 매생이를 넣어서 끓인다. 몽글몽글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듯 씹히지 않는 그 느낌이 나는 좋더라. 굴도 넣어서.. 마산 창동 버들국수 국수+육전+알파 1.마산 창동에 가면 ‘버들국수’를 만날 수 있다. 창동예술촌 학문당 서점 뒤쪽 골목에 살짝 돌아앉았다. 아마 창동예술촌이 조성될 즈음에 들어섰는데 알고 찾는 이들이 제법 있다. 국산 재료에다 공장에서 만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수와 떡국이 맛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집 국수는 일단 씹는 맛이 남다르다. 육수까지 그럴듯한데 주인아주머니가 대놓고 말은 않지만 가만 보면 자부심이 은근 느껴진다. 이를테면 이렇다. “국수 면발이 식감이 참 좋아요.” 이러면 “아무리 면발이 좋아도 육수가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되지 않아요?” 대답한다. 육수가 좋으니 떡국도 맛이 좋다. 특히 겨울철에는 매생이를 넣어서 끓인다. 몽글몽글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듯 씹히지 않는 그 느낌이 나는 좋더라. 굴도 넣어서.. 악양루에서 한나절 1.예전에 썼던 함안 악양루 기사를 다시 보니까 점심 먹고 가면 볕바라기 하기 아주 좋고 저녁 답에 가면 해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몇 달 전 어떤 분에게서 ‘함안 탐방의 마지막은 석양이 멋진 악양루’라는 말을 듣고는 아! 그렇구나 여겼었다.2.집에서 점심 먹고 나서서 악양둑방으로 갔다. 하늘이 맑았고 바람은 잦아들어 있었다. 제방 나무의자에 앉았다. 저기 나는 저 새는 오리 같지 싶은데 가마우지일 수도 있겠다. 찐 고구마 입에 넣고 커피 한 모금 머금었다.3.남강 물길을 짐작하면서 억새와 버들 덤불에 눈길을 보냈다. 나는 저 덤불 속에 얼마나 수많은 것들이 어우러져 있는지 대충은 짐작한다. 생명도 있고 비생명도 있다. 덤불은 저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공동 터전이다.. 한실고개 넘으며, 겨울에 봄 의령에서 남강을 거슬러 오르면화정면 상정리가 나타나고거기서 진주 대곡면 대곡리 한실마을까지 3km 남짓은강변이 깎아지른 절벽 또는 낭떠러지에 가까운 고갯길이다.이 고개를 사람들은 한실고개라 이른다. 한실고개를 넘다 보면 멋진 풍경이줄곧 이어지는데 그러다 마루에 서면 물이 휘돌아 감는 하회(河回)마을이안동에만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개를 넘어 한실마을에 들어제방 따라 걷다가몽글몽글 버들가지를 망울에서연둣빛 차림에 낮은 포복으로 조용히 매복 중인 봄을 봄. 2025년 12월 18일 한산도가 바라보이는 통영 이순신공원 1.통영에 가면 이순신공원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가운데 가장 이름이 높은 한산대첩의 그 한산도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마련되어 있다. 들머리 오르막을 따라가 바다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면 바다를 한눈에 장악한 이순신 장군이 저 멀리 눈길을 던지고 있다. 한산도는 아시는 그대로 1593년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고 나서 설치했던 최초 통제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 앞에 섬들 가운데 오른쪽으로 바라보이는 어디쯤이 거기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거기서도 매우 아팠다. 2.여기에 오면 언제나 몸과 마음이 경건해진다. 주책스럽게 나만 그러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갔던 일행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그렇단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것은 이미 우리 몸 세포에 DNA로 새겨져 있는 것인지도 .. 임도를 거니는 묘미 우리 집에서 직선으로 남남서쪽 3.5km 지점에 감천초등학교가 있다. 그 언저리에는 무학산을 두르는 임도가 마련되어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굴곡이 있는 지형이지만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재미있게 산책을 할 수 있다. 600m가량 걸으면 갈라지는 데가 나오는데 왼쪽으로 접어들면 더욱 그렇다.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2.4km 정도 더 닦았는데 물이 흐르는 골짜기 연두색 철책 쳐져 있는 데서 돌아 나오면 대략 8000 걸음이 된다. 여기에서는 날이 맑기만 하면 오전이든 오후에든 햇볕을 등에 지고 품에 안을 수 있어서 좋다. 또 경치도 그럴듯해서 물이 흘러내리는 조그만 골짜기와 엄청 커다란 암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데 이것은 덤이다. 합천 가회에서 끼니 걱정은 덜었다-중앙식육식당 1.요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옛날에는 겪지 않았던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가 많다. 예전에는 여기저기 식당이 있었고 밥맛도 나쁘지 않았다.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식당 찾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찾았다 해도 밥이 밥이 아니고 반찬이 반찬이 아닌 경우가 드물지 않다. 모두 찾는 사람이 적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밥도 처음 지어놓았을 때는 괜찮았겠지만 손님이 적어지니 식은밥 묵은밥이 되기 십상이다. 반찬 또한 마찬가지. 언젠가 소고기 곰탕을 시킨 적이 있는데 거기 든 고기가 젖은 목화솜보다 뻑뻑했고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냉동칸에서 적어도 반 년은 묵혀두었던 것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2.대한민국 인구가 시골일수록 더 빨리 더 많이 줄어드는 현실의 반영일 뿐이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지만 .. 창원 양덕동 제일식당-밥은 이렇게 먹는 법 밥과 반찬 그리고 국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자고로 밥은 이렇게 먹는 법이다. 아시겠지만 언제나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집에만 가면 언제라도 이처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울 수 있다. 오랜 단골이었는데 경남도민일보에서 정년퇴직하면서 2024년부터 자연스레 발길이 뜸해졌다. 그런데 두 달쯤 전에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그냥 밥 한 번 먹으러 오이소” 이랬다. 사장님은 나보다 나이가 열여섯 살이 많다. 우리 큰누나보다 한 살 아래시다. 어쩌면 막내동생 같아서 밥 한 끼 먹이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날인가 냉큼 달려갔다. 가을을 맞아 심심풀이로 주워 담은 도토리도 챙겨 갔다. 이 집은 가을이면 손수 만드는 도토리묵이 좋다. 마주보며 한 번 웃은 다음 사장님은 밥을 차려주셨.. 올 겨울 가마우지가 늘어났다 2025년 12월 9일 동판저수지 제방을 걸었다.동판은 주남저수지를 이루는 세 저수지 가운데 하나다.남쪽에 동판, 가운데에 주남, 북쪽에 산남이 셋을 아울러 주남저수지라 통칭한다고 한다. 동판은 주남에 견주어 규모가 작지 않지만도로로부터 살짝 돌아앉은 덕분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그래서 철새들에게는 머물거나 쉬어 가기 좋은 장소가 되었다. 걷는 내내 제방 바깥쪽 들판에는 기러기들이 가득 앉아 볕을 쬐면서 떨어진 곡식을 주워 먹고 있었고제방 안쪽에서는 오리, 기러기, 고니, 가마우지 같은여러 철새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시끄러울 정도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늘을 보았더니 기러기가 가장 많이 날아다녔고가마우지도 제법 보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많던 오리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덩치가 크고 날갯짓이 우아한.. 매력적인 주왕산 2025년 12월 8일초겨울 주왕산.냇물이 군데군데 얼어 있었지만 바람까지 차지는 않았다.딸과 함께 다녀왔다.1만2736걸음을 걸었다.내가 서른한 살 때 태어난 우리 딸의나이가 지금 딱 서른한 살이다.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세월은 이렇게 흐른다.우리는 같은 길에서 같이 걸어가는 것 같지만,그는 내가 갔던 길을 가지 않는다.그는 그의 길을 간다.세월이 흐르면 장면이 바뀐다.누구는 퇴장하고 누구는 등장한다.그런데 그리고 그뿐이다.우리는 걸으며 내내 얘기를 나누었다.내란 따위만 다시 나대지 못하도록 한다면이 나라가 이처럼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데 공감했다.주왕산에서. 삼계리 첨두서원 은행나무 우리 집에서서쪽으로 1000 걸음을 가면 나오는 은행나무.여기 노씨 집안 소유였던첨두(瞻斗)서원이 원래 있던 자리였다.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10길 118-33.이 삼계리 은행나무는둘레 수풀을 조금 다듬고 정리하면더없이 멋진 경관을 자랑하지 않을까 싶다. ## 첨두( 瞻斗)는 북두칠성=북극성을 우러러 바라본다는 뜻이다. "깔치가 너무 비싸서 못 사겄는 거야" 함안 입곡저수지 겨울산을 산책하러 갔다.들머리에 함안 여러 마을 어르신들의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하나하나 읽다 보니 콧등이 시큰해졌다.입곡저수지 못물이 저처럼 짙고 푸른 것은이들의 피땀과 눈물이 한데 어우러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주변에는하남석의 ‘밤에 떠난 여인’ 가사처럼“눈물을 감추려고먼 하늘만 바라보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청송 주왕산 닮은 순창 강천산 전북 순창 강천산.별 기대 없이 왔는데생각 이상이었다. 굴피나무의 품새도눈여겨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질 무렵 변산반도 전북 부안 변산반도저녁 노을저녁 나절에 들르기는 처음이다.제법그럴듯했다. 담양 영산강 전라남도 담양에서.우리 집에서자동차 타고 2시간 거리다.참 좋았다.무슨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고장이바로 담양이다. 2025년 12월 1일 창원 삼풍대 아침에 숲으로 들어가 걸었다.살짝 단내가 났다.낙엽이 인간에게 주는선물이지 싶었다.삼풍대(三豊臺)다.세 가지 풍성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나는 사람, 물, 인심이라 일러두고 싶다. 우리 집 바로 옆, 걸으면 500걸음 거리다. 이름은 없지만 참 멋진 소나무 떨어져서 볼 때는 몰랐는데가까이 다가가 보니 좋았다.이래 보아도 괜찮았고저래 보아도 멋있었다.아직 이름이 없는 것 같았는데나는 신감리소나무라 하기로 했다.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신감리 601-2.우리 집에서 남쪽으로 7200걸음 지점이다. 대구간송미술관 신윤복의 연소답청(年少踏靑) 제목이 ‘젊은이들의 봄나들이’란다. 나도 스무 살 시절에는 저랬을까? 곰곰 되짚어 생각해 보니 몸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음은 저랬던 것 같다. “양반가 한량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기생을 말에 태워 봄나들이에 나섰다. 기생들도 트레머리에 꽃가지를 들고 허리를 드러내며 매력을 뽐내고 있다. 담배에 불을 붙여 대령하고 말구종을 자처하는 한량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정작 말 끄는 마부는 못마땅한 얼굴로 어린 주인의 갓을 들고 뒤따라간다. 늦게 온 친구는 옷자락 휘날리며 어린 마부를 몰아 달려온다.같이 오는 기생의 녹색 장옷도 뒤로 나부낀다. 젊은이들의 활기가 봄기운과 어우러지며 화면 가득히 생동감이 넘쳐난다.” 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의 압도성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갔더니봉화 북지리 석조반가상이 있었다.윗부분이 없어지고허리 아래와 발받침대만 있는데높이가 1.6m라고 한다.전체가 온전하게 남았다면4m는 넉넉히 되고도 남겠다.반절밖에 남지 않았는데도여느 온전한 불상보다 크기가 밀리지 않는다.한 마디로 압도적(壓倒的)이다. 창원 광산사의 해탈 카페 우리 집에서 남남서쪽으로1만986 걸음을 가면광산사가 있다. 1890년대 오횡묵 함안군수가 쓴함안총쇄록>에도 나오는나름 유서 깊은 절간이다. 광산사 왼쪽 끄트머리에는달달한 봉지커피를 마련해두고누구나 타 마실 수 있게 하는‘해탈카페’가 있다. 거기 앞에 놓인 산자락은익숙하면서도 그럴듯한풍경을 보여준다.그윽이 바라보노라면절로 부처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탈팡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쿠팡 탈퇴 안 했다. 탈퇴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가입한 적이 없으니까. 쿠팡은 예전부터과소비를 부추기고노동을 학대하고상식을 능멸하는 범죄집단이었다. 나는 그런 악마구리들과한 발자국도 같이 할 수 없었다. 그랬어도 불편한 건 없었다.무엇이든 버릇 들이지 않으면 그뿐이다. 후퇴를 모르는 유일한 동물 말 2026년 1월 1일이다. 오늘부터 말띠 해란다.(사실은 설날부터 그렇단다.)2025년 10월 말에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말은 유일하게 뒷걸음질을 칠 줄 모르는 동물이에요."그러고 생각해 보니 과연 그랬다. 내가 보고 들은 바 말은전진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제자리걸음 정도였다.돌아가려면 말머리를 돌려야 한다.말은 후퇴를 모른다. 사람이 타고 앉아서 고삐를 세게 채면 말도 몇 걸음은 물러난다고도 하고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나은 경우도 있다지만나는 민주주의만큼은 언제나전진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민주주의를 불퇴전의 말 위에 태우고 싶다.그러면 마부 아니라길 위를 치우는 청소부 노릇만 해도나는 감지덕지다. 튼튼한 민주주의는 없다.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는 없다.민주주의는 언제나 간당간당한다.20.. 의령 세간리 은행나무 430년 전 전란에서 나라를 구한우리 곽재우 장군을어린 시절부터 지켜보아 오신이 은행나무 어르신은연세가 600이 넘으셨는데도모든 것을 비운 모습이태평하시고 아름다우시도다. 세간리 은행나무는 곽재우 장군 생가 바로 앞에 있다. 김득신의 춘산귀우 춘산귀우(春山歸牛)-봄 산에 돌아가는 소대구간송미술관바위산의 아름다움진달래의 소박함소나무의 위풍소의 역동성 묵의 리얼리티 오르막길의 상승감김득신(金得臣)의 성취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 이 나무님을 알현하는 순간나는 방언이 막 튀어나왔다."어서 가 경배하세,어서 가 경배하세,어서 가 우리 주~ 경배하세."돌아와 사진을 보니나무 어르신의 옥체가 실제보다 못 나와서 찍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문형배 <호의에 대하여> 간단 서평 1.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소통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쓴 호의에 대하여>를 읽었다. 그는 그에게 재판권을 위임한 국민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재판받은 당사자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보통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블로그에 쓴 글들이 차례대로 실려 있다. 문형배의 블로그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는 2006년 9월에 소통의 문을 열었다. “재판 당사자가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당사자가 법률을 몰라 제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판사인 저 역시 당사자의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하는 일을 겪고 나서, 짧은 법률 지식이라도 여러 사람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2. 판사라는 직업-독서·산책·등산·성찰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해 “판사가 죽은 사람.. 촌정제방·주남제방은 없고 외제방·내제방이 있었다 생태관광 1번지 창원 주남저수지의 모든 것⑨ 1. 촌정제방 촌정제방은 촌정농장을 홍수에서 보호하기 위해 쌓은 제방인데 지금은 원래 기능을 잃은 채 도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천강과 맞닿은 창원시 대산면 우암리 제1호제방에서 제동리와 대산면 소재지인 가술리를 거쳐 동읍 산남리의 죽동마을 제9호제방까지 반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천갑문과 닿는 부분이 끊어져 있지만 원래는 이어져 있었습니다. 촌정제방을 만든 목적은 홍수 때 낙동강의 역류로 말미암은 범람을 막는 데 있었습니다. 1907년 낙동강에서 제법 떨어진 일대에 점점이 늘어서 있는 구릉을 이어 붙였는데 전체 길이는 2리=7.85km입니다. 그런데도 촌정농장은 1908년부터 해마다 홍수가 거듭되자 계속 물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촌정제방 보강·..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