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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풍성하게 매달린 옛날 추억들 고성 둠벙 시말기⑤ 22. 둠벙 물 나누기 모내기가 끝나고 장마철도 지나간 다음 날이 가물어지면 농촌은 느닷없이 바빠집니다. 나락이 자라는 논에 물을 대야 했으니까요. 둠벙에서 물을 푸고 고랑에서 물을 끌어들이느라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둠벙은 개인 소유입니다. 논에 딸려 있는 것이 둠벙이고 논에는 저마다 주인이 있으니까 둠벙에서 나는 물은 좀처럼 나누어 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일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다툼이 일어날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물이 되게 많이 나거나 논에 대고 나서 남으면 이웃에게 쓰라고 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별나게 물이 많은 둠벙이 열에 서넛은 되었습니다. 이런 둠벙에서는 오늘은 논 주인이 푸고 내일은 이웃 사람이 끌어가고 하는 식으로 나누어 썼습니다. 물을 끌..
저 논에 고인 것은 물이었나 땀이었나 고성 둠벙 시말기 ④ 16. 물을 푸는 두레채 둠벙에서 물을 푸는 도구를 보면 먼저 두레채가 있습니다. 이 두레채는 물을 푸는 데 쓰는 작수바리(바지랑대 또는 나무막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길이가 대략 3.5m 안팎에 이르는데 나무 밑둥에 해당하는 퉁퉁한 쪽을 손으로 잡도록 했고 위쪽 줄기 끄트머리에는 한 말 가웃 정도 되는 두레박을 달아 붙였습니다. 이 두레채는 손으로 잡는 쪽은 지름이 15㎝ 정도로 굵고 두레박 쪽은 지름 5~6㎝로 가늘게 했습니다. 손으로 잡는 쪽은 무거울수록 좋고 끄트머리 두레박 쪽은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좀 더 손쉽게 물을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레채를 손으로 잡는 밑둥에는 끝자락에서 두 뼘 정도 되는 곳에 작은 나무를 하나 쐐기처럼 박아 넣었습..
JTBC가 못 잡아낸 이준석의 거짓말 5월 23일 저녁 8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한 대통령 후보 2차 텔레비전 토론 사회 분야 ‘기후 위기’ 주제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거짓말을 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는 물론이고 다른 대목 곳곳에서도 환경운동에 대한 적대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2002년 천성산 도롱뇽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터널이 생기면 도롱뇽이 피해를 입는다면서 어느 스님이 단식 농성을 하시는 바람에 시공업체는 140억 가까운 피해를 봤습니다. 고속철 개통은 1년 넘게 지연됐습니다.” 이에 대해 JTBC는 ‘대선 TV토론 실시간 팩트체크’를 통해 맞는지 여부를 검증한 결과라며 이렇게 보도했다. “지율 스님은 2003년부터 KTX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며 단식을 했고 이 때문에 공사가 189일간 중단됐으며 시공업..
둠벙 만들기-무너지지 않도록, 물이 잘 모이도록 고성 둠벙 시말기③-2 12. 바깥이 높고 안쪽이 낮도록 흙을 충분히 파냈으면 이제 돌로 벽을 쌓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크고작은 돌도 충분히 모아놓았습니다. 용도에 맞추어 적당하게 차례대로 쓸 수 있도록 큰 돌과 작은 돌, 반듯하게 생긴 돌과 그렇지 않은 돌을 먼저 분류부터 잘 해놓아야 합니다. 큰 돌은 지접돌(받침돌)로 쓰고 작은 돌은 적심돌(돌을 쌓을 때 안쪽에 심으로 박는 돌)로 씁니다. 둠벙 바닥에는 돌을 깔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자리에 돌아가면서 크고 납작하고 반듯한 돌을 놓습니다. 이것을 지접돌이라 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합니다. 가로세로 한 자 정도는 되어야 했는데 가져온 돌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썼습니다. 지접돌을 놓는 바닥은 무르지 않고 단단해야 했습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도록 ..
둠벙 만들기-여섯이서 이레는 일해야 고성 둠벙 시말기③-1 9. 물이 고이는 자리 찾기 둠벙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신기한 느낌이 듭니다. 물이 나는 자리는 어떻게 알았을까? 크고 작은 돌을 어떻게 쌓았기에 저토록 촘촘하고 튼튼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생겨납니다. 사람이 다른 도움 없이 저렇게 깊이 파려면 얼마나 힘이 많이 들었을까? 논에는 돌이 없는데 어디서 얼마나 가져와야 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지요. 둠벙을 만들려면 먼저 물이 나올 만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농사짓는 어른들이 여럿이 나가서 둘러보고 경험과 감각으로 찾아냈습니다. 이런 물길을 잘 찾는 사람이 마을마다 한두 분씩 있었습니다. 연세도 지긋하시고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같은 논이라도 마른 데도 있고 물이 가피서 지질한(물기가 많아서 조..
나무와 나라의 공통점 창원 대산면 북부리 팽나무.우영우 팽나무로 더 많이 알려진 당산나무.2022년 8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끝나자 드라마 속에서 전개된 스토리 그대로곧바로 두 달만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엄청난 노거수. 며칠 전 이 당산나무를 찾아가 우러러 뵈었다.그 아래로 스며들어 알현하는 도중에 이런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당산나무는 나라와 같다. 당산나무는 모두를 거두어들인다. 얼핏 보기는 사람만 거두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벌과 나비, 새도 거두고 벌레와 곤충도 거두고 보드라운 풀들이나 작은 다른 나무들도 거둔다.흙과 공기와 물은 여기서 흐름과 숨통을 얻으며 사람이 아닌 다른 네발짐승들도 여기서 쉬었다 간다.마을 공동체의 생태계가 건강하고 풍성한 것은 바로 그 덕분이다. 나라도 모두를 거두어들인다. ..
거제 공곶이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 1. 언제나 푸근하고 따스한 공간 며칠 전 거제 공곶이에 다녀왔다. 공곶이는 언제나 푸근하고 따스하다. 거기 가서 동백이나 수선화를 보면 절로 그런 마음이 든다. 바다를 보아도 마찬가지 느낌이 든다. 멀리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아도 그러하고 가까이 다가가 몽돌을 발아래 두고 걸으며 쳐다보아도 그러하다.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한 번도 그늘이 들지 않아 언제나 볕바라기를 해도 될 정도로 양지바른 지대라 더욱 그런 것 같다. 바로 앞에 손에 잡힐 듯 떠 있는 내도와 외도는 바깥에서 밀려드는 파도를 막아주어 잔잔한 바다를 더욱 잔잔하게 만든다. 그래서 위로 올라가 아래로 훑어내리면서 동백숲을 가로지르고 수선화가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은 다음 밝고 환한 햇살 아래 바닷가를 따라 숲속길을 걸어서 돌아..
양산 통도사 반야암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계절이 돌아왔다. 옛날에는 좋은 꽃 보려면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했는데지금은 눈만 돌리면멋진 배롱 꽃이 천지에 널려 있다.이제부터 9월까지는눈이 호강할 차례다. 그나저나 정말 보기 좋은 것은겨울 배롱나무가 으뜸이지.꽃도 내려놓고잎도 털어내고껍질도 한 꺼풀 벗어 던지고볕 바른 자리에 뿌리를 박은 채더 이상 버릴 것 없는 자태로북풍한설을 올라타 너울대는가뿐한 부드러움이 참 좋더라. 그래서 나는배롱나무 앞에 서면늘 루저가 되고 만다.옛날 성현께서는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셨다. ## 2024년 7월 31일
창녕 우포늪 할배나무 우포늪 좀 아는 이라면 모두 사랑하는 자리사지포제방 옆 언덕 위의 팽나무.연세가 이백오십은 넘었으리라 짐작되지만키는 저렇게 조그맣다. 여기서 바라보는 맞은편 대대(大垈)마을은 토종말로 한터라 했다.더러는 대대라고도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팔할은 한터였다. 우리 할부지는 그 한터에서 나고 자라팔십 평생을 농사지으며 사셨다.‘훤주’라는 내 이름은 당신께서 친히 지으신 것인데도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늘 “훈주야”, “훈주야” 하셨다. 막내손주였던 덕분에 나는 다른 형제들처럼 방구들 미지근한 건넌방이 아니라소여물을 끓여 아랫목이 따끈따끈한 사랑방에서 할부지 곁에 누워 안온하게 잠들 수 있었다.당신 등에 업혀 폴짝거리는 개구리를 내려보며 “저게 뭐냐?” 물었던 적도 있고 가물대는 호롱불을 앞에 두고 당신 품에 안..
1945년 만들어진 미제 군용 수통 미제 군용 수통을 재수 좋게 득템했다. 잘 아는 어떤 사람 집에 갔다가 버리려 하기에 그럴 거면 달라고 해서 갖게 되었다. 집에 와 펼쳐 보니 거의 완전한 상태였다. 수통 몸통과 뚜껑을 잇는 고리만 조금 다쳐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멀쩡했다. 싸개는 솜을 두툼하게 저며서 넣어 놓았다. 보온과 보냉을 위해서이겠지. 수통 받침은 물잔인데 손잡이도 달려 있다. 바닥에는 ‘U. S. / S. M. CO. / 1945’ 음각이 새겨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몰라도 1950년 한국전쟁에는 참전했음이 분명하지 싶다. 가져와서는 한참을 씻었다. 처음 두세 차례는 물이 시커멓다가 조금씩 옅은 국방색이 비치더니 끝에는 아주 옅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친구에게 여기 물을 담아 마실 거라 했더니 “그 더러운 데에 어떻게?”..
사천에서 우연히 얻어걸린 맛집 으뜸국수 사천에 가니까 ‘으뜸국수’가 있더라. 알고 찾아간 게 아니라 남해 출장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보이기에 ‘배나 채우자’ 하고 들렀는데 뜻밖에 괜찮더라. 나름 깔끔하고 개성이 있는데다 맛까지 훌륭하더라. 가격이 비싸지 않았는데도 재료는 모두 국산을 쓰더라. 콩국수를 주문했는데 반찬으로 깍두기가 나왔다. 여름에는 무 김치가 맛있기 어렵다. 그런데 이 집은 어떻게 양념을 해서 버무렸는지 물기도 촉촉하고 씹는 맛도 나쁘지 않고 간도 세지 않고 적당했다. 반찬을 보면 나머지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 집이 그랬다. 콩국물은 검은콩을 갈았는지 거무스레했고 입안에 고소함을 끼치면서 풍성한 느낌을 주었다. 면발도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으며 덤으로 땅콩가루가 올려져 씹는 식감을 더해 주었다. 내친김에 유부초밥도 ..
통영 해맑은생선구이에서 받은 상차림 海맑은 생선구이는 통영 서호시장 옆 통영항여객선터미널 건너편에 있다. 이미 맛집으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이번에 작정하고 찾아가 먹어보았다. 말 그대로 훌륭했다. 통영에 가서 생선구이를 먹는다면 여기가 딱이다. 1. 보기 드문 생선이다 보통 생선구이 집에 가면 고등어나 갈치가 기본인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싸고 흔한 생선이다. 맛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푸짐해 보이는 효과를 내려고 그러는 것 같다. 이 집은 그렇지 않았다. 물어보니 꽃돔과 능성어 그리고 민어조기라 한다. 다들 고급으로 알려져 있거나 보기 드문 생선이다. 특히 꽃돔을 나는 이번에 처음 보았다. 생선은 날마다 종류가 바뀐다고 했다. 그날그날 어판장에 나오는 생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항상 정해진 종류가 아니라 이처럼 날마다 달라지는 것이 나쁘지 ..
통영옻칠미술관의 미덕 1. 푸근하다 위쪽에 있는 통영옻칠미술관 본관은 단층이고 기획전시실은 아래에 있는데 2층짜리다. 뒤로 옆으로 펼쳐지는 산자락에 안겨 있는 형국이다. 앞으로 펼쳐지는 바다에 대해서도 높은 데서 위압적으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슬그머니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2. 비싸지 않다 관람료가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년, 어린이 1500원이다. 20명 이상 단체는 여기서 1인당 500원씩 빼준다. 요즘 이렇게 싼 관람료 흔치 않다. 주차비를 따로 받는 것도 아니다. 3. 붐비지 않는다 알만한 사람만 아는 장소고 찾을만한 사람만 찾아오는 명소다. 물론 10년 전 또는 코로나19 이전과 견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아진 것은 맞다. 판매용 작품과 소품을 전시하..
공범을 통신 조회만 한 검찰 1.이런 문자메시지가 왔다. 세월에 둔감해 모른 채 있다가 어제에야 휴대폰을 열어보고 알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제1부에서 수사 목적으로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조회했다고 한다. 반부패수사제1부라…… 신학림 위원장을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고 기소한 데가 거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올해 1월 5일 통신사로부터 정보 제공을 받았다고 적혀 있으니 그 관련으로 들여다보았구나 여겨졌다. 2.신학림은 2003년 11월부터 2007년 2월까지 언론노조 위원장을 했다. 나는 그즈음 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에서 집행 간부나 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이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신학림은 나에게 무슨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지역 신문에서 기자 노릇을 한다면 지역의 역사와 ..
KBS 수신료 분리 고지서를 보면서 1.지금 KBS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하는 방송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가 감싸고 도는 일부 극우 정파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반영하는 국민 배반적 편협 방송이다. 나는 KBS에서 윤석열과 김건희에 대해 비판하는 보도를 본 적이 없다. 그 휘하 행정부의 말도 안 되는 여러 행태를 지적하는 보도도 나는 본 적이 없다. KBS는 나라를 말아먹는 방송까지 하고 있다.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 실체에 눈감은 이승만 찬양 동영상 ‘기적의 시작’을 광복절 8월 15일에 맞추어 송출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이런 동영상을 영화관도 아닌 공영방송을 통해 보면서 즐거워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극우적 상상력에 KBS가 침몰했다. 2. 그런데도 윤석열은 이런 KBS를 키워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KBS를..
작비(昨非)와 금시(今是) : 이진숙을 생각함 1. 이광진이라는 사람 500년 전에 이광진(1513~1566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어릴 적 공부할 때는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나이가 들어 벼슬에 나가서는 유능하고 강직하다는 세평을 얻었다. 명종실록>과 그의 행장·묘지명 등을 보면 1548년 예문관 검열로 벼슬살이를 시작해 수재들에게 주어졌던 승문원과 교서관의 여러 관직을 맡았다. 학문이 높은 성균관에서도 일했고 맑고 깨끗한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벼슬도 두루 맡았다. 호조·공조·예조·병조에서는 좌랑·전랑과 같은 핵심 요직을 꿰찼고 왕족 비위를 규찰하는 종부시에서도 첨정을 했다. 군기시·군자감·사복시 같은 실무 기구에서는 최고 책임관을 지냈고 순천·흥양·사천·창녕·담양의 수령을 지낼 때는 선정을 베풀어 포상까지 ..
산청 덕천서원 배롱나무 꽃 그늘에 스며 들어꽃 사진을 찍었다네. 꽃 그늘은 꽃 그늘답게짙지 않고 그윽했네. 불쑥 솟아 펼쳐진 품이일산(日傘) 마냥 넓고 크네. 한 줄기 바람이 일렁한 가닥 일산이 설렁.
삿갓배미, 가난의 간절함이 만든 아름다움 며칠 전 우연히 삿갓배미를 보았다. 옛날에는 흔했지만 요즘은 귀해진 이 삿갓배미를 보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삿갓은 삿갓처럼 조그맣다는 말이고 배미는 한 배미 두 배미 세 배미 하며 논을 헤아리는 단위다. 삿갓배미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농부가 논에서 김을 매다가 세어 봤더니 한 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날도 저물고 하여 집에나 가야겠다면서 벗어둔 삿갓을 집어 드니까 그 밑에 사라진 한 배미가 있었다. 논이 얼마나 작았으면 이런 우스개까지 생겨났을까. ‘삿갓배미를 열 개 모아도 한 마지기(200평) 될까 말까……’ 이런 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부쳐 먹을 땅이 얼마나 없었으면 가파른 산비탈에 자투리까지 논으로 만들었을까 싶다. 언덕배기 비탈진 땅을 논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전후좌우..
함안 고려동 배롱나무 가서 보더라도 사진은 크게 기대하시지 말기를.눈으로 보는 것보다 앵글에 잘 담기지 않는 것이함안 고려동 배롱나무, 꽃. 자미정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면 눈에 담기는 장면도 있고자미정 문간에 걸터 서면 눈이 환해지는 나무도 있더라. 오늘이라 그랬는지 모르지만한낮 2시에 찾았는데도자미정 마루에 불어오는 바람은정말 시원하더라. 고려동에는 고려교가 있다. 이 다리를 넘어 들어가면 고려 땅이고 건너기 전의 땅은 조선의 다스림을 받는 곳이다. 이렇게 해서 조선과 고려를 연결해 주면서 구분도 해주는 상징 조작 장치가 고려교다. ### 2024년 8월 20일.
해맑은생선구이의 반건조생선 海맑은생선구이는 통영에 있는 맛집이다. 얼마 전 거기 가서 생선구이를 먹은 적이 있다. 여태 맛본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축에 들었다. 값은 싼 편(1인분 1만5000원)이었고 곁들여 나온 반찬은 하나같이 정갈했다. 1.벽에 보니 생선구이도 하지만 그 재료인 반건조생선을 팔기도 한다고 적혀 있었다. 생선구이가 이 정도면 엄청 훌륭하지 하면서 대충 물어보고 10만 원짜리 하나를 부탁했다. 상품 구성을 설명해 드리겠다며 밥 먹는 옆에 실물을 들고 와서 무엇 몇 마리 무엇 몇 마리~~ 했다. 생선을 잘 모르는 나는 모두 열네 마리라는 것만 귀담아들었다. 10만 원에 열네 마리면 한 마리에 7000원 조금 넘네~~. 이만한 크기 반건조생선은 어디를 가도 이보다는 비싸던데~~. 집에 와서 보니 모두 다섯 가지였..
“예산 없어요 내년에 고칠게요” 창녕박물관 엉터리 해설 8월 15일에 창녕박물관을 찾아갔었다. 전시 내용을 둘러보는데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설렁설렁 훑어보았는데도 잘못되거나 적당하지 않은 표현이 여러 군데 있었다. 안내데스크에 말했더니 휴일이라 학예사가 없고 본인은 해설사라 책임 있는 대답을 하기 어렵다면서 “전달해 드릴 수는 있지만 이런 지적은 담당자에게 직접 해야 더 효과가 있으니 평일에 한 번 더 오거나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닷새 뒤에 다시 찾아갔다. 그동안 잘못된 부분을 문서로 정리할 수 있었는데 스무 군데가 넘었다. 학예사에게 보여주며 필요한 대목은 설명을 곁들였다. 다 맞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고쳐야 하지 않겠느냐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뜻밖이었다. 가야와 관련한 부분은 그러잖아도 손질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당장은 안 ..
함안 칠원 무산서당 배롱나무 다른 데 배롱나무는 대부분바깥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그럴듯한데여기 이 배롱나무는꽃그늘 아래 들어가서 볼 때훨씬 좋은 경관을 누릴 수 있다.오늘 아침에 가서나무 아래 바위에 걸터앉아선듯 감돌다 떠나는두어 줄기 바람을 느꼈다.## 2024년 8월 31일
이 고양이 머물러 사는 카페 다희 나는 개를 좋아하지만집에 두고 기를 생각은 않는다. 국민학교 5학년 때 한 살 많은 개가 있었다.서로 좋아하고 무척 아꼈는데어느 날 문득 집을 나가버렸고찾아나선 우리는 다음날 저녁 집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에서그 개의 죽은 모습을 보았다.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정말 슬펐다.그러고는 개 기를 엄두를 다시 내지 못했다. 고양이는 달랐다.어릴 적 고양이도 길렀었는데내게 정을 주지 않았다.고양이와는 헤어져도 그토록 섧게 울지는 않을 것 같았다.내가 좀 귀찮게 구니까그 고양이는 집을 나갔고 어쩌다 한 번씩 찾아왔다.나는 올 때마다 먹이를 주었다. 나는 죽고 못 사는 사이보다서로 좋아해도 대면대면한 사랑이편하고 좋다는 것을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어제 이 고양이를 만났다.앞발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니까몸을 휙 뒤집..
경남 창녕의 괜찮은 식당 마루야 창녕을 지나가다 점심 때가 되어서 예전에 한 번 들렀던 ‘마루야’를 찾아갔다.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나온 밥과 반찬이 실망스럽지 않았다는 기억이 있었다. 마루야는 일단 주인들이 친절하다. 남자 주인 여자 주인 두 사람 모두 눈에 띄게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세 자체가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자연스럽기도 했다. 고등어구이를 주문했다. 우리는 1만5000원짜리 돌솥밥을 골라잡았는데 그냥 밥은 1만2000원이었다. 전에 와서 먹고 느꼈던 그대로 양은 적당했으며 맛도 나쁘지 않고 괜찮았다. 밑반찬은 깔끔하게 차려져 나왔다. 기본은 제대로 하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딸려나온 된장찌개는 맛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입에 맞지는 않았다. 땡초부추전도 주문해 보았다. 7000..
그 집 김치가 먹고 싶어 찾아가는 식당 1. 주인을 닮은 김치 간혹 그 집 김치가 먹고 싶어서 가는 식당이 있다. 함안 가야장의 진이식당이랑 창녕 영산장의 맘보식당이다. 공교롭게도 가야장과 영산장 모두 5일과 10일 열리는데 이 두 식당은 장날 아닌 날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두 집 김치의 공통점은 맛이 좋다는 데에 있다. 두 곳 다 김장김치 묵은지를 내놓는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고 짜지도 싱겁지도 않으며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어서 그야말로 적당하다. 입에 넣으면 먼저 군침이 도는데 곧바로 씹으면 김치에서 스며나온 물기와 섞이면서 그 맛이 혓바닥 전체로 번져나간다. 배추 속 알갱이가 터지는 느낌도 있고 껍질의 적당한 질감도 느껴진다. 그러다 슬그머니 혀가 살짝 아릴 때도 있는데 그런 다음에는 대체로 탄성이 절로 터진..
마산 수남상가의 세일세일 마산에도 이런 가게가 있더라. 수성동 수남상가의 ‘세일세일’이다. 마산어시장에서 도로 건너 부림시장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자리 잡고 있더라.63년생인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어른이 주인인 것 같았다. 마산에서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십중팔구가 마치 기계처럼 윤석열을 지지하고 국민의힘을 편든다. 그런데 여기는 보란듯이 이렇게 적었다.“윤석열 없는 크리스마스”, “친일 정권 타도”, “윤석열 탄핵”, “이채양명주 기억”. 나도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꼴 보기 싫지만 대놓고 저러지는 못한다. 기개가 대단하다. ------------------- 장사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내일이라도 가서 뭐든지 하나 팔아줘야겠다. ### 2024년 9월 18일.
순천 웃장의 괜찮은 먹을거리 1. 국밥거리의 괴목국밥 2024년 9월 8일 전남 순천에 갔다. 갑자기 답사할 거리가 거기에 생겨서 찾아 나선 길이었다. 먼저 점심을 먹기 위해 그 유명한 순천 웃장의 국밥거리에 들렀다. 공용주차장에서 나와 국밥거리 첫머리 괴목국밥에 들어갔다. 미리 알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어도 대체로 괜찮았다. 국밥거리라고 하니까 다른 식당들도 이곳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1만 원짜리 막창순대국밥 두 개와 1만5000원짜리 작은 수육 하나를 주문했다. 그랬더니 순대는 시킬 필요가 없다고 했다. 국밥을 시키면 수육은 먹을 만큼 공짜로 나온다고 했다. 2. 맛도 좋고 가성비는 더 좋고 수육이 먼저 나왔는데 먹을 만했다. 막창순대와 살코기가 알맞게 섞여 있고 양도 모자라지 않았으며 맛도 만족스러웠다. 막창순대는 ..
돌멍 바람이 소슬한 만어사 미륵전휘영청 늘어진소나무 아래서한참을 보았다.
비 오는 날의 물멍 마산 진전 바닷가 동진대교 못 미쳐 카페가 하나 있다. 달 뜨는 비오리. 바다로 내리는 비 아래로 오동나무 내려보면서 물멍 올해 최고 호사를 바람 속에 누린다. ## 2024년 9월 20일
둠벙의 있고 없고와 크고 작고는 어떻게 결정될까? 고성 둠벙 시말기② 5. 둠벙이 없는 논은? 둠벙이 없는 논도 있었습니다.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물이 좋아서 둠벙이 필요 없는 논이었고 다른 하나는 둠벙이 필요한 천수답인데도 토질이 맞지 않아 파지 못하는 논이었습니다. 둠벙이 필요 없는 논은 이렇습니다. 아래쪽에 있는 논이 위에서 물이 내려오니까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산삐알(산비탈) 위쪽 골(골짜기) 안에 있는 논이 물이 좋았습니다. 산중턱까지 논이 있었는데, 이런 논은 옆에 있는 고랑(개울, 도랑)으로 물이 끊이지 않고 흘렀습니다. 그래서 논에 둠벙을 파는 대신 고랑에 물이 고이도록 여울을 만들어 자기 논으로 물길만 내면 되었습니다. 산삐알 위쪽 이런 논은 물 걱정이 없다고 해서 상소답이나 상수답(나는 물을 받아서 쓰는 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