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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 앞바다, 딱새, 가리비, 낭태 1.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집안이 너무 더워서, 어디라도 가볼까 하는데 갑자기 툭 떠올랐다. 그래, 오늘이 진동 장날이었지. 4·9일인데 5~6년 전만 해도 자주 갔더랬다. 한 번씩 가서 잡어를 사왔는데 1만 원어치씩 팔 때가 많았다. 한 번 사면 열흘 정도 구워 먹고 쪄서 먹고 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는 같은 무더기를 5000원에 떨이를 하기도 했었다. 해가 늬엿늬엿 넘어가는 저물 무렵에 그랬다. 왜 그렇게 싸게 파느냐고 멍청하게 물은 적이 있다. 잡어를 다 팔지 못하면 아줌마들은 내장을 끄집어내고 머리·지느러미 등을 떼어내 말린다. 도리없이 이런 노동을 더해도 말린 고기는 생물보다 값이 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진해 경화시장( 3·8일 )에서 잡어를 보고 사다 먹기 시작..
영화 '밀수' 훌륭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영화 '밀수', 재미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다. 나의 쓸세권 끝자락에 영화관이 하나 있다. 거기서 드러누워 봤는데 몰입도는 높아졌지만 이 세상 같이 느껴지지는 않더라. 다음에는 쓰레빠 신기 전에 맥주도 두어 캔 챙겨 가야지. 1. 여름철 흥행에 딱 맞는 영화 왜냐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가 배경이기 때문이다. 누군들 시원하지 않을까. 어쩌면 저 넘쳐나는 바다가 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 통통배는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내 기억으로 그때 통통배는 이런 정도까지 빠르지는 않았다. 옛날 속도로 갔더라면 바다 풍경이 조금 더 멋드러지게 연출되지 않았으려나 모르겠다. 해녀들 옷차림도 멋스러웠다. 흑백이 그렇게 잘 조화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왜 여태 못했을까..
조선일보의 노인 맞춤형 독자 서비스 독극물 조선일보를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조선일보만의 노인 맞춤형 독자 서비스였다. 준독극물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도 이런 거 하나 싶어서 찾아보았는데 거기는 없었다. '치매 예방 뇌 훈련 게임-두근두근 뇌 운동'이다. '두근두근' 아래에는 깨알같이 '頭筋頭筋'이라고 한자까지 적어두었다. 노인들 치매 걸리지 말라고 손가락 많이 놀리게 만드는 것들이다. 주의력 계산력 기억력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적었다. 자기네 독자들 대부분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인 줄 잘 알고 이런 것을 하나보다. 제발 살면서 치매 걸리지 말고 독극물 조선일보를 오래오래 봐달라는 주문인 것이겠다. 종이 신문 오른쪽 구석에 박혀 있었다. 이것을 기어이 찾아내서 시키는대로 종이를 오리고 글자를 적고 덧셈 뺄셈 계산을 하..
독극물 조선일보에 실린 '월간 시인' 광고 고은을 두고 "미투에 휘청거린 감성의 황제"란다. 감성의 황제면 남 보라면서 자위해도 되나. 싫다는 이성한테 맘대로 추행을 해도 되나. 나태주 이름도 보이고 신달자 이름도 보인다. 얼굴 사진을 보니 참 남루하다. 나는 아무리 늙어도 저렇게 누추해지지는 말아야지 생각을 하게 된다. 월간 시인은 서울시인협회라는 데에서 내는 월간지인 모양이다. 광고를 대충 훑어보니 작전이 읽힌다. 먼저 이름 알려진 시인 나부랭이들을 앞장세운다. 다음으로 시인 지망생 늙다리 느끼한 꼰대들한테 '시인'이라는 '관형어'를 얹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대가로 지갑을 털어보자는 수작이다. -- 2023년 8월 10일
너거는 이런 시금치 못 사제? 볏짚으로 싸맸다. 둥그렇게 여몄다. 단단하게 묶었다. 손가락으로 눌러도 안 들어갈 정도로 탄탄했다. 한 단에 4000원 했다. 오전에는 5000원 팔았단다. 합천 삼가장날 난전에서 샀다. 삼가장은 2일과 7일에 선다.
그 집 툇마루에서 대나무를 보았다 1. 그 집에 가서 대나무를 보았다. 경남 함안 고려동 종택 사랑채 자미정. 오른쪽으로 감아들어 툇마루에 앉았다. 오후 2시 툇마루에는 제법 알뜰하게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어릴 적 대숲을 두른 집에서 살았다. 그 대숲은 길고 깊었다. 할아버지는 대밭이 돌밭이고 뱀도 많다면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틈 나는대로 대밭에 들어갔다. 들어가 앉으면 한여름에도 시원했다. 마당에서 어른들 나누는 말씀이 아득하게 들리는 느낌이 좋았다. 할아버지가 내게 심부름 시키려고 "주야! 주야!!" 부르기도 하셨지만 나는 잠자코 쪼그린 채 있었다. 2. 나는 대나무가 내는 소리를 조금 알고 있다. 휘어지는 소리도 있고 꺾어지는 소리도 있다. 휘어지는 것은 바로 서기 위해서였고 꺾어지는 소리는 굽히지 않았기..
'5월 광주'의 상징이 조선일보에 광고한 사연 1. '전일빌딩245'의 광고를 조선일보에서 보았다. 2023년 8월 8일자였다. 80년 당시 항쟁의 중심이었고 지금 '5월 광주'의 으뜸 상징이 되어 있는 장소가 전일빌딩이다.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는 광주 항쟁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였다. 전일빌딩이 '전일빌딩245'로 이름을 바꾼 까닭은 당시 반란군의 헬기 사격 총탄 자국 245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정당한 시민들의 저항과 무도한 반란군의 진압이 이 하나에 응축돼 있다.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245개 탄흔이 가장 명확한 증거이다. 탄흔을 지속 가능하게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5·18민주화운동을 후대에 온몸으로 알리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전일빌딩245는 브랜드 이미지에서 숫자 245를 크게 넣고 4의 가운데를 둥글게 ..
능소화 붉은 기운이 흙돌담장까지 능소화는 울 위에 폈고 봉선화는 울 밑에 섰다. 나는 왠지 울 밑에 더 눈이 갔다. # 2023년 8월 28일 전남 담양군 창평면 삼지내마을에서
대구에도 고운 얼굴선이 있었네 보이시는지? 저 고운 얼굴 윤곽과 흘러내릴 듯 맺힌 옷 매무새. 비현실적인 저 선각. #대구 달성군 유가읍 비슬산 대견사지에서
달개비꽃 그리고~~~ 논두렁이 아니라 꽃밭이었네. 하마나 예뻐서 차마 밟지 못했네. #경남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 일대 다랑논
이런 나무 어르신~~ 풀밭에 누웠다 하늘이 보인다 구름은 간데없고 이파리가 가득하다. 설렁 일어나 잎사귀를 간질이던 바람 내게 스며들어 머리를 헹군다. 이런 고마우신 나무 어르신 나는 몇몇 분 모시고 있다. #창녕 우포늪 사지포제방 근처 언덕배기 팽나무 #경남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 175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어여쁘고 너는 어떻게 피어났니, 물었더니 세월이 약이란다, 이렇게 답하더라. 구절초도, 쑥부쟁이도, 사람도, 그냥 한 번 피었다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구절초 쑥부쟁이는 저절로 어여쁘기라도 하지만 사람이 아름답기란 아무리 애써도 참 쉽지 않더라. --- 지난해 가을 대견사지 오가는 길에서
재우네에 놀러 갔더니 나는 오늘 재우네에 놀러 갔다. 사람이 없고 문은 열려 있었다. 장독대는 정갈했고 감나무는 열매가 실했다. 다섯 개를 따려다가 세 개만 따 먹었다. 참 맛있었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흐르는 구름과 노닐다 왔다. ----망우당곽재우생가(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황매산에서 거철 카르텔을 떠올렸다 사마귀를 보면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고 사마귀가 수레에 맞선다는 뜻이라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무리를 일컫는 경우도 있지. 역사는 물처럼 절대 건너뛰지 않고 때로는 막히고 때로는 역류하지만 크게 보면 자유와 평등 그 폭과 깊이를 더하는 방향으로 흘러 나간다는데. 역사를 가로막고 거스르는, 자기만 옳다고 뻗대는, 고속도로까지 휘게 만드는, 거철 카르텔이 자네를 보니까 떠오르네. 하지만 그래도 자네 탓은 아니니까 황매산 등산길에 걸터앉아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는 말게.
유곡천변 정원이야기 햇살 구름 그늘 모두 좋다. 암반 절벽과 우거진 수풀과 나른한 물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한나절. ----2023년 10월 14일 오후에
70년대 문자가 아직 그대로 70년대 문자다. 80년대까지 유효했다. 쇠딱지는 보았지만 나무딱지는 처음 본다. '방첩'은 간첩을 막자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막아야 할 간첩은 북한 간첩일까 일본 간첩일까. 경남 창녕군 이방면 우만길 30-1 뒤편 대문
남지 개비리 자드락 오솔길 마삭줄 고운 단풍 들어갈 땐 못 보고 돌아올 때 보았네. ----2023년 10월 16일
어느 카페의 창문 밖 풍경 마산 저도 다리 아래 어느 카페 창밖으로 스며드는 마산 앞바다. 부서지는 햇살은 혼자서도 다사롭고 산그늘에 갈매기들 무리지어 한가롭다. # 2023년 10월 31일 #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저도 콰이강의 다리 옆 할리스커피 # 오후가 좋다.
열매지기공동체가 고마운 까닭 1. 2023년 11월 13일 열매지기공동체를 위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거기서 생산하는 생강차와 생강청을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고 한 병이라도 더 팔리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번에 우연히 열매지기공동체의 서정홍 선배와 통화를 했는데 덕분에 그로부터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경남한살림과 부산한살림에서도 요청이 오고 해서 거기도 공급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 3년 동안은 한 푼도 나눠 갖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100만 원씩 배당을 했다고 한다. 크다면 큰돈이지만 한 해 동안 생강을 길러서 제품까지 생산한 노고에 견주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는 금액일 텐데도, 고맙다고 했다. 2. 사실은 내가 더 고맙다. 먼저 그렇게나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아닐 텐데도 그렇게 말해 주어서 고..
낙원은 초록색 예식은 붉은색 경남 합천군 삼가면 낙원예식장 현관을 물들인 단풍 아름답구나. 전화번호 T 32-4442에TJ 국번이 세 자리가 아닌 두 자리인 것이 아마도 80년대 식이지 싶다. 낙원은 초록색으로 차분하고 예식은 붉은색으로 한창 불타올랐구나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한때 많은 이들이 여기서 백년가약을 했겠지. 그들의 황혼도 이 단풍만큼 그럴듯하기를. 경남 합천군 삼가면 일부리 765. (2023년 11월 9일 오후)
거대한 뿌리를 보았네 나는 거대한 뿌리를 보았다. 1.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우포늪생태관이 있는 쪽 출입구에서 우포늪으로 들어간 다음 우포늪과 마주쳐서 왼쪽으로 길 따라 가다보면 양쪽에 나타난다. 하나는 육지 쪽에서 바위를 갈랐고 다른 하나는 물 쪽에서 한 길 건너뛰어 또다른 나무를 뻗어냈다. 2. 경남 고성군 마암면 마동호갯벌 근처에서도 보았다. 삼락리 554 일대 언덕배기에 있는데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다시 거기서 왼쪽 아래로 흐르면서 바위를 쪼갰다. 여기 일대는 퇴적암 해식애가 발달하여 줄줄이 이어지면서 색다른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3. 우리집 근처에도 있더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안계마을 뒤편 서재골인데 지번은 삼계리 1363이다. 아주 멋졌다. 여름에 옆에 개울물이라도 흐를 양이면 ..
사먹을 결심 1. 맛있다 두미팜 김치는 맛도 있고 개성도 있다. 지난해 처음 주문해 왔을 때는 맛이 좀 센 것 같았는데 며칠 있다가 먹으니 김치가 부드러우면서도 혀에 감기는 맛이 남달랐다. 또 대형 매장에서 파는 김치들은 표준화되어서 그런지 그게 그거 같이 맛은 있어도 밋밋하지만 두미팜 김치는 두미팜만의 색다른 개성이 혀끝에서 찰지게 느껴진다. 딸도 좋아한다. 대구에서 자취를 하는데 두미팜 김치를 달아놓고 주문해 먹는다. 배추김치, 알타리김치 섞박지, 파김치 모두 즐겨 먹는데 특히 파김치는 한 자리에서 밥도 없이 “아, 맛있다, 맛있어.” 하면서 한 보시를 다 먹는 걸 본 적도 있다. 2. 로컬푸드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로컬푸드의 가장 큰 미덕은 기름을 적게 먹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경상도 창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
탱자나무 울타리가 나는 좋더라 1.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집에서 멀었다. 대략 1k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아침에 여럿이 어울려 등교하다 보면 한 시간은 예사로 걸렸다. 걸음이 어른처럼 빠르지 않았는데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노느라 그랬을 것이다. 학교는 컸다. 가로세로 150m 정도는 되었다. 학교 뒤쪽 담장이 보이고 나서도 정문까지는 그만큼 더 걸어가야 했다. 공부하는 교실은 뒤쪽 담장에 가까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간 다음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그만큼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한 시간씩 걷다 보니 지치기도 했겠지만 그렇게 정문까지 돌아가는 것이 억울했다. 뒤쪽 담장은 탱자나무 울타리였는데 개구멍이 몇 군데 나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등교할 때 그 개구멍으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선생님이 지키고..
쉽고 편하게 읽는 가야 역사책-'가야로 가야지' 제가 책을 한 권 내었습니다. ‘가야로 가야지’입니다. 기원 전후부터 서기 560년대까지 가야의 600년 역사를 유물·유적과 역사 기록을 통해 개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아울러 장수·남원·고령과 김해·함안·고성·합천·창녕 등 대규모 고분군이 남아 있는 여덟 군데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밖에 순천·동래·성주 등 안팎의 주요 지역들도 포함시켰습니다. 1. 처음 나온 가야 전체 역사서 역사 애호가로서, 가야 역사 전반에 대한 책이 여태 한 권도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펴낸 책입니다. 물론 여태 가야를 다룬 책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딱딱한 전문 학술 용어로 가득찬 학술서적이 아니면 주마간산식으로 사실을 나열하고 자신의 감정을 덧붙이는 여행기나 답사기였습니다. 저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
너무 달콤한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달달하게 키우지 않은 사과들~~ 색깔 좋다. 크기는 어른 주먹보다 많이 작다. 맛은 사람 입맛에 맞춘 것이 아니다. 지중해 언저리에 많다는 학설이 있더라. 이런 게 좋은 사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과뿐 아니라 요즘 과일은 너무 달다. 설탕물을 입에 머금는 것 같다. 이브가 먹었던 사과는 홍옥, 부사, 아오리가 아니었다. 마늘로 말하자면 웅녀는 네덜란드도 POLAND 종자도 아니고 홍산마늘이란 개량종 씨앗도 아니었다. 나는 나의 씨앗을 얼마나 제대로 갖고 있는가 잃어버렸는 줄도 모른 채 잃어버리고 살아온 나날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직도 제대로 먹는 법을 모른다. 음식을 바꿀 수 있으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
넉넉함과 옹졸함, 부처와 인간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한 번 가서 보았다. 전북 남원 만복사지 경남 합천 영암사지 전북 익산 미륵사지를 맞먹거나 능가하는 규모라기에 경관과 감흥도 그러할 줄 알았다. 회암사지는 그러나 절터가 아닌 왕궁터였다. 절간 형식으로 지어진 궁궐이 원형이었다. 상왕과 태상왕 노릇을 하던 태조 이성계를 위한 자리가 가장 높은 데 가장 널찍하게 있었고 그 아래에 방장 그것도 동서로 두 방장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부처를 위한 전각은 그 아래였는데다가 석가모니 진신사리 탑조차 높은 자리이기는 했지만 오른쪽 한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부처가 아무리 높아도 중심은 아니라는 듯 세상의 중심=태조 이성계를 밝고 돋보이게 하는 보조 장치일 따름이라고 일러주는 듯. 마당에서 어둠을 밝히는 정료대는 왜 그렇게 많은지 석탑과 짝을 이..
석 달 전 삼가장날 새끼줄로 엮은 마늘 한 접 1. 나는 이런 마늘이 좋다. 열 개씩 하나로 열 묶음을 새끼줄로 엮었다. 이렇게 마늘을 한쪽으로 치우치게도 하고 여자아이 머리 땋듯 양쪽으로 갈래 지게도 한다. 이런 마늘 한 접을 베란다 빨랫줄에 매달아 놓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똑 분질러 가져온다. 한 쪽씩 쪼갠 다음 손톱이나 칼로 껍질 까서 먹는다. 나는 이 마늘을 석 달 전에 장만했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합천 삼가장에서 3만 원을 주고 샀다. 덕분에 지금껏 싱싱한 마늘을 먹고 있다. 껍질을 벗긴 마늘은 냉장고에 넣어두어도 금세 시들시들해진다. 조금 더 지나면 싹도 나고 패기도 하다가 흐물흐물 녹고 썩어버린다. 먹기도 거시기하고 버리기도 거시기하다. 2. 시간이 아까워 어떻게 그리 하느냐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
하늘 끝자락에 기대어 선 저 돌탑 옛 절터 옆에 새 절간이 들어서는 경우가 없지 않다. 대부분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본 바로는 합천 모산재 영암사지 옆에 영암사와 대구 달성 비슬산 대견사지 옆에 대견사가 그렇다. 천 년도 더 되었을 절터는 폐사지여도 조화로움이 있으나 새로 지은 절간에는 조화나 균형이 없다고 무방하다. 합천 영암사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옛 절터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로 옆 바깥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 대견사는 그렇지 않다. 멋진 유물들이 자리 잡은 옛 절터 안으로 들어와 안목이 없는 내가 보아도 무질서할 정도로 산만하게 여기저기 휘저어 놓았다. 오래된 유물들이 새로 지은 건물에 내쫓겨 이리저리 흩어지고 달아나 제 모습을 숨기고 있는 형국이다. 하다못해 연등 하나를 달아도 ..
둠벙이 있는 풍경 2 경남 고성군 거류면 거산리 381-20 논. 바다와 산과 길과 둠벙이 있다. 가장 잘 난 둠벙 경관은 아니고 오히려 못 생긴 축이라고 보면 맞다. 6월 여름 사진 석 장과 10월 가을 사진 석 장.
우리집 근처에는 없는 게 없다 우리집 근처에는 없는 게 없다. 바로 옆 300걸음 안쪽에는 광려천 푸른 강물이 널널하게 흐르고 500걸음 언저리에는 대형마트와 시장이 나온다. 2000걸음 정도 걸으면 차례대로 종합병원이랑 영화관이 줄지어 있다. 압권이고 백미는 이런 나의 쓸세권 안에 마을숲이 두 개나 있다는 것이다. 남쪽으로 600걸음 걸으면 삼풍대 마을숲이 나오는데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등이 우거져 여름에는 한낮에도 어둑신하다. 또 서쪽으로 3000걸음 걸으면 안봉대 마을숲이 나오는데 줄기 표면이 근육으로 울퉁불퉁한 미스터 서어나무가 대부분이다. 안 보고 싶은 것은 멀리 떨어져 있다. 용산 대통령실과는 거리가 상당하다. 고속도로를 따라 걸어도 무려 사십삼만사천팔백칠십오 걸음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