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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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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그 친구 1. 경주, 라고 하면 나는 아득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눈물 어리게 좋아했던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경북 월성군 건천읍 용명1리. 나는 문학소년이었으나 간이 작아서 문학반에 들지는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문학반 ‘태동기’의 당당한 멤버였고 2학년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태동기에서 시를 잘 쓰는 친구로 우뚝 꼽히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우리 반은 참 별났다. 모두 50명 남짓이었는데 화가, 사진작가,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연극배우, 가수 지망생이 숱하게 많았다. 현직 건달 또는 건달 지망생 대여섯까지 더하면 스무 명가량이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도 그 친구도 그랬다. 친구는 웃는 모습이 기막히게 멋졌다. 웃으면 자그마한 눈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꼬리가 처지면서 얇..
다람쥐를 보았네 이름에 '쥐'가 들어가는데도 귀엽다. 금은보화로 꾸미지 않아도 보기 좋다. 부풀려 단장하지 않아도 예쁘다. 날래서 그런지 사람을 피하는 기색이 없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나 귀찮다는 듯 몸을 재게 움직여 멀어질 뿐 떨어져 지켜보면 저 할 짓 하느라 사람이 있는지 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쪼춤바리만으로도 잘 논다. 가만 멈추어 서서도 잘 논다. 놀이감이 없어도 한 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사람들은 날마다 조금이나마 더 가지려고 몸부림인데 상처를 주고 받느라 정신이 없는데 사랑하거나 미워하느라 난리법석인데 인정받지 못한다고 안달인데 먹고살려고 발버둥치고 걱정하는데 아이든 어른이든 놀이감이 없으면 금세 따분해지는데 아무래도 다람쥐는 사람보다 한 길 위이지 싶다. --2023년 6월 11일
그대들의 자유 물고기 그대들은 먹고 사는 것에만 매이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밖에 매이는 것들이 많다네 오늘은 무얼 할까 어느 물고기의 먹이를 빼앗을까 다른 물고기에게 인정받아야지 생각지 않는다네 아가미를 열 번 열까 백 번 열까 지느러미를 오른쪽부터 칠까 왼쪽부터 칠까 헤아리지 않는다네 바위 틈에 들까 모래알이랑 노닐까 물풀과 어울릴까 고민을 않는다네 여기서 저기까지 두 번을 오갈까 열 번을 오갈까 가늠도 않는다네 예정 없이 목표 없이 과정 없이 결과 없이 되는대로 에헤라디야 우리는 매이는 것들이 많다네.
안동 만휴정이 아쉬운 까닭 경북 안동에 가서 만휴정(晩休亭)을 보았다. 멋진 산수 가운데 바위 계곡 건너편 도도록한 자리에 들어앉아 있었다. 말은 정자라 하지만 다섯 칸 이상도 많은데 만휴정은 조그마해서 고작 세 칸이었다. 500년 전 즈음에 김계행이라는 인물이 서울서 벼슬살이 하다가 늘그막에 돌아와서 노닌 정자다. 1. 쌍청헌에서 만휴정으로 원래는 그의 장인 남상치가 짓고 당호를 쌍청헌(雙淸軒)이라 했는데 사위가 거처하면서 만휴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뀐 만휴정은 뜻을 바로 알 수 있다. 그 주인의 행적 그대로 늘그막에 쉬는 정자라는 뜻이다. 쌍청헌은 왜 그리 이름붙였을까 싶었는데 둘러보니 까닭이 짐작되었다. 먼저 건너가기 전에 아래쪽으로 물줄기 쏟아지는 폭포가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다. 건너가서 몸을 돌려 올려다보면 그보다는..
대구에도 고운 얼굴선이 있었네 보이시는지? 저 고운 얼굴 윤곽과 흘러내릴 듯 맺힌 옷 매무새. 비현실적인 저 선각. #대구 달성군 유가읍 비슬산 대견사지에서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어여쁘고 너는 어떻게 피어났니, 물었더니 세월이 약이란다, 이렇게 답하더라. 구절초도, 쑥부쟁이도, 사람도, 그냥 한 번 피었다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구절초 쑥부쟁이는 저절로 어여쁘기라도 하지만 사람이 아름답기란 아무리 애써도 참 쉽지 않더라. --- 지난해 가을 대견사지 오가는 길에서
하늘 끝자락에 기대어 선 저 돌탑 옛 절터 옆에 새 절간이 들어서는 경우가 없지 않다. 대부분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내가 본 바로는 합천 모산재 영암사지 옆에 영암사와 대구 달성 비슬산 대견사지 옆에 대견사가 그렇다. 천 년도 더 되었을 절터는 폐사지여도 조화로움이 있으나 새로 지은 절간에는 조화나 균형이 없다고 무방하다. 합천 영암사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옛 절터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로 옆 바깥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 달성 대견사는 그렇지 않다. 멋진 유물들이 자리 잡은 옛 절터 안으로 들어와 안목이 없는 내가 보아도 무질서할 정도로 산만하게 여기저기 휘저어 놓았다. 오래된 유물들이 새로 지은 건물에 내쫓겨 이리저리 흩어지고 달아나 제 모습을 숨기고 있는 형국이다. 하다못해 연등 하나를 달아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