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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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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과 숲에서 길어 올린 여러 갈래 사람살이 ◇생사고락을 묵묵히 지켜봐 온 노거수 8월은 무더웠다. 흙먼지가 풀풀 날렸고 바람이 잦아든 바닷가에는 비릿한 갯냄새가 머물렀다.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산 중턱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눈에 들어와 박혔다. 휘적휘적 올랐더니 마을 들머리 언덕배기에 나무그늘이 짙었다. 설천면 진목리 355번지에서 고사마을을 200년 넘게 지켜온 팽나무였다. 아래는 없던 바람이 들판과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골목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걸어나왔다.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뒤춤에 올린 채로 가만히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자락과 들판을 넘어 바다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편안했다. 푸른 무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벼들로 짙어지고 있었고 갯벌을 머금은 바다는 갈수록 거뭇거뭇해지..
바다에 안긴 보물 앵강다숲길 마을마다 갖가지 매력 ◇남해 나비섬의 속내에 담긴 앵강만 남해를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편 나비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위가 창선섬이고 나머지 세 날개는 남해 본섬이다. 접었다 펼쳐서 만든 데칼코마니에서 왼쪽 아래 끝과 오른쪽 아래 끝이 제각각 가천마을과 두모마을을 이루고 있다. 가천에서 두모까지 두 날개 사이 옴폭 들어간 데가 앵강만이다. 여기에 홍현·숙호·월포·두곡·용소·화계·신전·벽련까지 모두 열 개 마을이 있다. 이들 마을은 모두 독특하고 개성이 뚜렷하다. 산비탈 다랑논으로 유명한 가천, 크고 멋진 마을숲과 석방렴을 갖춘 홍현, 전복으로 이름난 숙호, 몽돌과 모래를 모두 가진 해수욕장의 월포·두곡, 미국마을을 품은 용소, 역사가 오랜 화계, 마을숲과 석방렴에 모래사장까지 있는 신전, 마을숲이 투박하지만 자연스러..
단절의 고통이 섬 꽃으로 피었나니 ◇‘사씨남정기’의 탄생지 남해 지금 남해는 보석처럼 빛나는 자연이 곳곳에 박힌 보물섬이지만 옛날 남해는 외롭고 서러운 유배의 섬이었다. 지금은 1㎞도 되지 않는 남해·노량대교로 육지와 이어져 있지만 옛날에는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는 절해고도였다. 전통시대 남해에 유배 왔던 사람은 130명가량 되는데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서포 김만중(1637~1692년)이었다. 서포는 한문을 떠받드는 사대부였지만 한글로 쓴 글도 남겼다. 남의 말인 한자를 쓰는 것은 앵무새와 같다고 했을 정도로 주체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유배를 떠난 아들 때문에 상심한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쓴 김만중의 소설이 ‘구운몽’이었다.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고 입신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깨어보니 꿈이더라는 내용이다. 김만중은 병자호란 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숨결 노량해협 따라 흐르는 듯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2022년 남해군 방문의 해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남해군은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경상남도의 지원 아래 찾아오는 탐방객과 관광객을 늘리고자 지역을 갈고닦으면서 널리 알리는 활동을 펼쳐 왔다. 경남도민일보는 이를 응원하는 뜻으로 연말을 맞아 '내년에 남해로 오시다' 짧은 기획을 마련했다. 이미 잘 알려진 것도 좋지만 그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작고 소소한 것들을 좀 더 찾아보고자 한다. ◇노량해전이 벌어진 관음포 앞바다 남해 하면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역사의 풍랑이 거셌던 데이기도 하다. 430년 전 백성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임진왜란의 마지막 끝자락 회오리가 남해를 몰아쳤다. 하동에서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건너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