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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촌정제방·주남제방은 없고 외제방·내제방이 있었다

생태관광 1번지 창원 주남저수지의 모든 것

 

1. 촌정제방

 

촌정제방은 촌정농장을 홍수에서 보호하기 위해 쌓은 제방인데 지금은 원래 기능을 잃은 채 도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천강과 맞닿은 창원시 대산면 우암리 제1호제방에서 제동리와 대산면 소재지인 가술리를 거쳐 동읍 산남리의 죽동마을 제9호제방까지 반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천갑문과 닿는 부분이 끊어져 있지만 원래는 이어져 있었습니다.

 

촌정제방을 만든 목적은 홍수 때 낙동강의 역류로 말미암은 범람을 막는 데 있었습니다. 1907년 낙동강에서 제법 떨어진 일대에 점점이 늘어서 있는 구릉을 이어 붙였는데 전체 길이는 2=7.85km입니다. 그런데도 촌정농장은 1908년부터 해마다 홍수가 거듭되자 계속 물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촌정제방 보강·증축 공사를 계속했습니다만 1911년에는 기록적인 대홍수를 맞아 제방이 터지는 일까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911년 가을 제방을 쌓는 공사가 다시 시작돼 이듬해 봄에 마무리됐습니다. 강물에서 33(10미터) 높이로 홍수 때 최고 수위보다 5~6(1.5~1.8m) 높은 것을 표준으로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촌정제방이라 하지만 처음 쌓은 때로부터 멀지 않은 1915년의 기록을 보면 바깥에 있는 제방이라는 뜻으로 그냥 외제방이라 일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들은 원래부터 촌정제방이라 한 줄 알고 있지만 이는 그 이후 어느 시점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아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점은 지금으로는 정확하게 따져볼 방법이 없지만, 대체로 농장 주인이 촌정(村井, 무라이)에서 박간(迫間, 하자마) 등으로 바뀐 이후 또는 해방 이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싶습니다.

촌정농장의 콘크리트 수로. 2019년에 찍었는데 그새 없어졌습니다.
너비가 좁아 자동차는 건너다닐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인도교.

 

2. 주남 제방

 

주남 제방은 1907년 대산평야의 서쪽과 남쪽, 그러니까 낙동강 반대편의 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농지로 들어오지 않도록 처음 쌓은 제방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전체 길이가 5=20km 안팎이었는데 외제방인 촌정제방보다 안쪽에 있다고 해서 내제방이라 했습니다.

 

그와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는 원구·춘산·송용산·민포·밀포·서어지·동어지제방이 더 있습니다. 지금 보면 송용산제방은 주남제방과 더불어 주남저수지를 이루었고 민포제방은 동판저수지를 감싸고 있는 제방입니다.

 

나머지 밀포·서어지·동어지제방은 김해시 진영읍 옛 진영역 북쪽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당시에는 제법 커다란 소택지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주남 수문. 아래와 위가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3. 홍수 때마다 잠기고 터지고

 

이처럼 서쪽과 남쪽 산자락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농지로 넘쳐 들지 않도록 제방을 둘렀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1908년부터 1911년까지 해마다 홍수에 잠겼으며 1910년에는 제방이 터지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촌정농장은 그래서 해마다 수리·보강공사를 해야 했는데 제방의 높이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곳은 1927년의 주남 제방(18)과 춘산·원구 제방(14) 등 세 군데입니다.

 

이 가운데 주남 제방은 주천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물이 새는데다 무너질 우려도 있다는 이유로 동면수리조합이 1927년에 전체 길이 1452칸에 대해 높이를 4척 더하여 22척으로 증축 보수했습니다.

 

마지막 대규모 공사는 해방 이후인 19699월 대홍수로 수해가 들었을 때입니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몸소 시찰을 왔을 정도로 엄청난 재난이었는데, 창원농지개량조합(지금 한국농어촌공사 창원지사)이 산남·주남·동판저수지의 모든 제방에 대해 197010~197611월에 벌인 공사였습니다.

상류 쪽에서 찍은 주남교 수문 모습. 주남돌다리 바로 옆에 있습니다.

 

4. 주남 수문

 

현재의 주남저수지 수문은 주남저수지쪽에 붙어 있는데 1976년 완공된 것입니다. 주남저수지람사르문화관과 주남저수지생태학습관에서 탐조대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나옵니다. 주천강이 시작되는 조그만 다리의 왼쪽인데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도로를 건너면 주천강 방향 20m 지점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습니다.

 

창원농지개량조합은 대산수리조합에서 1924년에 준공했다고 적어 놓고 있습니다만 실제 준공한 주체는 대산수리조합이 아닌 동면수리조합이며 준공 시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 절반과 위쪽 절반의 모양이 서로 다릅니다. 같은 시기에 만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래쪽은 주남저수지를 처음 축조할 때 만들었다면 위쪽은 그 이후 어느 시기에 새로 설치했습니다. 다만 공법 등을 보면 거의 비슷해서 만든 시기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고 합니다.

주남교의 하류 방향 아래쪽을 보면 이렇게 홈이 파여 있습니다. 과거에 수문을 여닫는 철판을 끼워 두던 자리입니다.

 

5. 다릿발과 바닥이 남다른 주남교 수문

 

창원시 동읍 판신마을과 대산면 고등포마을을 직접 이어주는 다리가 주남교입니다. 높이는 4m, 너비는 5m, 길이가 20m가량인데 1916년에 측량한 지도에는 신교(新橋)로 나옵니다. 명칭으로 보아 촌정농장에서 새로 만든 다리로 짐작됩니다. 상판 표면은 콘크리트로 덮여 있고 양쪽에 난간이 있는 것은 여느 다리와 같지만 다릿발이 아주 색다른 모양입니다.

 

일반적인 다리의 다릿발은 콘크리트로 되어 있고 가늘며 또 하천 바닥에다가는 대부분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남교는 다릿발이 모두 석재로 되어 있고 두께도 두툼한 편입니다. 그리고 하천 바닥에도 석재를 다듬어 깔았는데 그 가장자리에는 가로로 길게 홈이 파여 있습니다.

 

또 다릿발과 다릿발 사이 물이 드나드는 네 군데는 위쪽을 모두 무지개 모양으로 보기 좋게 마감했는데 가장자리 둘은 바닥과 천장이 높고 가운데 둘은 낮도록 차이를 두었습니다.

 

주남저수지를 향한 상류 쪽은 표면이 평평하고 별다른 시설이 없지만, 낙동강을 향하는 하류 쪽은 다릿발에 해당되는 부분이 20cm 정도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제법 두꺼운 철판을 끼울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는 것입니다. 홍수가 졌을 때 하류에서부터 낙동강이 역류해 들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수문이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