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27)
윤석열의 역사적 임무는-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걱정이 많았다. 그의 공약과 발언 때문이다. 언론노조를 손보겠다느니 선제타격을 하겠다느니 사드 배치를 하겠다느니 핵발전을 늘리겠다느니 검찰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느니 등등 예사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권 차원 보복 수사는 당연한 것으로 예고됐고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가리고 덮었다. 최저임금제를 손보고 주 5일 노동제를 무력화하고 해고의 자유를 넓히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손질하고…에서는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아무리 공약이라 해도 실행은 않기를 바랐다. 공약이나 발언대로 하면 더 큰 폐해가 생긴다는 것을 얼른 깨닫고 없었던 걸로 삼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공약도 아닌 것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감옥에 갇힌 김경수의 진실 10년쯤 됐는지 모르겠다.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와 피해자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가까운 이웃이었다. 피해자는 용의자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경찰은 용의자가 빚 독촉을 하다가 살인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용의자의 창고에서는 피 묻은 옷이 나왔다. 함께 발견된 범행에 쓰였음 직한 도구에는 용의자의 지문도 묻어 있었다.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경찰은 용의자를 구속했지만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했다. 같이 들일을 하던 피해자가 다쳐서 피를 흘리기에 헌옷으로 닦아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동기가 뚜렷하고 증거도 갖추어졌다며 아랑곳없이 기소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경찰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범행 도구에 용의자의 지문이 있다 해도 그것이 용의자가 살해..
예쁘네, 함안 가야장 예쁘네. 젊은 호박도 예쁘고 꽃 핀 배롱나무도 아름답다. 함안 가야장은 5일과 10일에 선다. 31일까지 있는 달은 30일 말고 31일이 장날이다. ---- 2022년 8월 5일
경주, 그 친구 1. 경주, 라고 하면 나는 아득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눈물 어리게 좋아했던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경북 월성군 건천읍 용명1리. 나는 문학소년이었으나 간이 작아서 문학반에 들지는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문학반 ‘태동기’의 당당한 멤버였고 2학년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태동기에서 시를 잘 쓰는 친구로 우뚝 꼽히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우리 반은 참 별났다. 모두 50명 남짓이었는데 화가, 사진작가,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연극배우, 가수 지망생이 숱하게 많았다. 현직 건달 또는 건달 지망생 대여섯까지 더하면 스무 명가량이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도 그 친구도 그랬다. 친구는 웃는 모습이 기막히게 멋졌다. 웃으면 자그마한 눈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꼬리가 처지면서 얇..
할부지 계시는 데까지는 한장딴일까 두장딴일까 1. 시골 집에서 읍내 장터까지는 길이 제법 멀었다. 아부지는 8키로라 하셨고 할부지는 20리라 하셨다. 걸어서 두 시간이 걸렸는데 읍내 중학교 다니는 형들은 새벽밥 챙겨 먹고 6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었다. 할부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셨다. 어둑어둑한 어스름에 사랑방에서 나는 “에헴!” 소리는 집안을 깨우는 신호였다. 식구들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부산함을 어린 꼬맹이였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할부지 옆자리 이불 밑에서 꼼지락거리며 게으름을 부렸고 할부지는 사랑채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셨다. 콩깍지랑 볏짚이 삶아지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면 할부지는 소마구의 구시를 김이 펄펄 나는 소죽으로 가득 채우셨다. 아침 세수는 소죽 끓인 솥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물로 하셨다. 아침밥 먹는 자리는 안채 대청마..
우포늪 저어새 나는 보았네. 부리가 노란색이 아닌 그냥 부리 저어새 일당을. --- 2023년 1월 28일
보람은 작은 것에도 있더라 1.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에서 2023년 들어 처음 펴낸 책이 ‘줬으면 그만이지-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이다. 20대 초반부터 50년 넘게 나눔과 베풂을 실행하고도 정작 당신의 이름은 눈곱만큼도 드러내지 않은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다. 커다란 울림과 감동을 안겨주는 내용이어서인지 반응이 뜨거워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3쇄를 준비하고 있다. 새해 들머리부터 이런 좋은 일이 생기니 책이 나오는 데 작으나마 힘을 보탠 당사자로서 보람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선한 영향력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퍼져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지언정 빠듯한 신문사 살림에 보탬도 되니까 말이다. 2. 하지만 보람은 이렇게 크고 빛나는 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눈길을 덜 끌고 적게 팔리는 책에도 보람은 ..
장승포 애광원 애빈하우스 거제 장승포 애광원 애빈하우스. 괜찮은 경관을 푸근한 분위기로 누리는 멋진 카페. 커피와 빵과 과자도 맛이 좋다. 예전엔 현금만 됐는데 이제는 카드로도 결제 가능. 맛, 풍경, 분위기 다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하나는 여기 와서 뭐든 사면 장애인 복지시설 애광원에 바로 보탬이 된다는 사실. --- 2023년 2월 5일
멀리 오래 떨어져 있어서 잘 보이는 모국 1. 22년 전, 13년 차 기자 성우제는 장애를 가진 자녀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장애인을 캐나다에서는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잘나가는 시사잡지 기자 생활을 접고 월급을 모은 돈과 아파트 판 돈을 갖고 캐나다로 날아갔다. 원래 이민이란 게 몇십 년 살아온 자신의 뿌리를 통째 뽑아 옮기는 존재의 결단이다. 그래서 새로 잔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이민 초기는 새로운 정착과 생존을 위한 고달픈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그에게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 몸부림은 더욱 절박하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영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 작업으로 음식점에 '알바'로 들어가 새벽부터 '철카트'를 밀며 뛰었다. 펜..
화왕산의 새와 벌레 옥천계곡에서 화왕산 올라가는 들머리 새들에게 습격당한 벌레들의 아파트. ---2023년 4월 10일
화왕산과 봄 창녕 화왕산의 진달래, 억새, 버드나무. 진달래와 억새는 좋고 멋지다 해도 볼 수 있는 다른 산이 적지 않게 있다. 반면 버드나무가 산꼭대기에서 자라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버들은 습지식물이고, 습지는 저 아래 낮은 데에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밀양 재약산 사자평 700~800m 고지에도 있는데 거기가 높기는 하지만 산꼭대기는 아니므로. 가운데 네모 난 못은 용호상박과 용쟁호투의 현장 용지(龍池). 호랑이 대가리가 여기에서 발굴되었는데~~ 옛날 기우제를 지내면서 이걸 집어 넣고는 물 속에 사는 용이랑 한 바탕 붙어서 구름을 모으고 비를 내려 달라는 주술. 그리고 용지 왼쪽 위에 보이는 네모 난 울타리는 창녕조씨 득성비. 관련 전설은 인터넷 찾아보면 나옴. 이 또한 용지 관련이라네. --- 2023년 4월..
가온길과수원 청년 농부 김성인을 응원하는 까닭 그제 합천 삼가 난전에서 복숭아를 샀다. 1만 원에 네 개였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맛이 없었다. 씹는 맛도 목화솜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 맛도 없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딸도 같은 말을 했다. 둘이서 한 개는 억지로 삼켰지만 나머지는 도저히 먹기가 어려웠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천벌 받는 줄 알면서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멀쩡한 복숭아 세 개를 음식물쓰레기통에 집어넣으려니 마음이 심란했다. 어제 다시 복숭아를 두 상자 샀다. 가온길과수원에서였다. 한 해 전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샀다. 상자를 집어드는데 단내가 코를 찔렀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과연!이었다. 한 상자에 열여섯 개 들었는데 씹는 식감까지 제법 괜찮았다. 문자로 얼마냐고 물었더니 2만9000원이라 ..
망우당 곽재우 생가 안채 정지간 나는 저런 으스럼이 좋더라. --- 2023년 5월 16일
고분군의 봄 아직은 봄. 한참 들여다 봄. 옛 무덤 뒤덮은 노란색 봄. --- 2023년 4월 10일
말이산고분군의 느티나무 저 느티나무 나이가 몇 살일까. 63년생 나보다 그리 많진 않겠지. 쑥쑥 빨리 자라는 속성수니까. 60년 만에 이룩한 저 넉넉한 품새 60년 동안 키워온 저 연두의 함성 해가 뉘엿 기울 무렵 고단한 심신으로 저 그늘에 스며들어 불어오는 골바람에 머리를 헹구며 집과 사람과 들판과 개울을 굽어보다 어느새 길어진 그림자 끌면서 터덜터덜 내려오는 언덕길. 내 마음속 가장 푸근한 봄날. --- 2023년 4월 12일
빌어볼 결심 # 40년 전 1982년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서울은 신세계였다. 나는 어리숙하고 가난한 촌놈이었다. 속에 가득한 열등감을 숨기려고 겉으로는 오만을 떨었다. 그때는 그것이 나의 남루함과 초라함을 가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인 지망생이었지만 문학 동아리에는 부끄러워서 가입하지 못했다. 동아리가 두 개 있었는데 얄팍한 실력이 들통날까 봐 얼쩡거리기만 하고 말았다. 반면 같은 불문학과 동기 성우제는 잘 나가는 문학회의 멤버였다. 나는 술을 많이 마시고 우제는 적게 마시는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는 참 잘 지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피동적이었다. 유신 교육이 결정적이었다. 그때 초·중·고는 폭력이 의사소통의 수단이었고 멸시가 교육의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선생과 선배는 말 그대로 ‘하느님..
조선일보는 소리도 없이 돈을 번다 ‘top class’라는 월간지를 만들고 거기에 광고를 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런저런 단체에 대량 구매를 하도록 한다. 조선뉴스프레스라는 데서 하는데 ‘top class’ 말고도 이렇게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비슷한 정기간행물은 더 있다. 여기 있는 이것은 한국SGI가 사서 마산의 여러 가게에다 뿌린 것이다. 앞표지 오른쪽 아래에 보면 "이 책은 한국SGI가 드립니다"라고 인쇄돼 있다. 이렇게 인쇄해 줄 정도면 최소 1000부는 샀을 테고 합리적으로 추정하면 1만 부나 10만 부도 가능하다. 정가가 한 부에 1만원이니 1만 부면 한 달에 1억원, 1년이면 12억 원이다. 대량 구매 할인 적용해도 최소한 8억 원은 될 테니 이렇게 훑어대는 식으로 돈을 끄는 것이다. 한국SGI는 아시는대로 ‘국제창가학회..
그나마 이민정책이 성공하려면 1. 저출생 극복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저출생 극복과 출산 장려를 위한 정책을 펼쳐 왔다. 쏟아부은 예산만 2006년부터 2022년까지 280조 원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학교와 유치원·어린이집은 갈수록 텅텅 비고 이제는 대학 폐교도 모자라 군부대까지 해체·통합되고 있다. 30년 동안 애써왔지만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인 0.78명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그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흐름 가운데 하나가 저출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라 자체가 소멸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2. 대안은 이민밖에 없다 새로운 사회구성원이 태어나지 않으면, 나라 바깥에서 구해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광주청년문화잡지 '귄있진' 우리 사이는 싱거워진 것 같아요 우리 사랑은 며칠이나 남았을까요 당신과의 이별은 오지 않았음 했는데 이제 서로에게 향한 마음 거둬요 싫은 것에 익숙해지지 마시고 요령 있게 잘 피하며 사세요 나이에 어울리는 것보단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하며 살고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어줘 고마웠어요 별일 없는 매일의 안부를 물어줘 고마웠어요 우리 둘만의 영화는 엔딩크레딧 오르고 혹시라도 쿠키영상 기대 마요 괜한 미련 갖지 말고 탈탈 털어버려요 우리 두 사람에겐 속편이 없어요 싫은 것에 익숙해지지 마시고 요령 있게 잘 피하며 사세요 나이에 어울리는 것보단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하며 살고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되어줘 고마웠어요 별일 없는 매일의 안부를 물어줘 고마웠어요 행복하시라 전했으니 나는 이걸로 됐어요 우린 이..
기형도 : 어두운 시세계 vs 밝고 환했던 일상 성우제가 쓴 책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를 보면 기형도 시인 관련 글이 세 꼭지 실려 있다. 세 살 많은 형 성석제(소설가)의 대학 친구가 기형도였고 그 때문에 성우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형도와 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1. 성우제의 글을 다른 이들의 기형도 관련 글과 비교하면 색깔이나 무늬가 다르다. 기형도가 등단하고 알게 된 사이도 아니고 대학 시절 무엇을 함께 도모하거나 행동한 관계도 아니다. 친구의 동생으로서 보고 들은 기형도의 일상을 꾸밈없이 적었다. 여기 기형도는 밝고 환하고 명랑하고 경쾌한 모습이다. 어둡거나 침울하고 무거운 구석은 없다. 예의도 바르고 노래도 잘하고 말재주도 좋고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할 줄도 알았다. 그 중 몇몇 대목을 고르면 아래와 같다. “기형도는 친구..
그 동네의 빨래터 옛날 우리 동네는 빨래터가 우물가였네 우물은 들판 한쪽 구석 미나리꽝 옆에 있었다네 퍼질러 앉아 빨래하는 이들은 시집온 아낙들이었네 엄마도 있고 숙모도 있고 타성바지 아지매도 있었다네 끼얹는 물소리에 이야기가 묻히기도 했었네 나는 알아듣지 못할 얘기들은 빨래방망이에도 얻어터졌네 어린 우리들은 방망이질에 넋을 잃었다가 문득 일어서서 우물을 들여다보았네 우물은 얕았지만 조용할 때는 무서웠네 물지게 진 선머슴들 선한 웃음이 헤펐네 물동이 이고 어쩌다 오가는 누이들 뚝뚝 듣는 물 훔치기 바빴네 바지랑대 받친 빨랫줄 하얀 옷들이 나란했네 바람이 살랑, 구름이 흔들렸네. # 경남 의령군 유곡면 신촌리 상곡천 # 마을과 들판을 잇는 징검다리 건너는 근처 ---- 2023년 5월 24일
박노자 강의를 듣다가 조선일보가 생각났다 1. 박노자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이었다. 경남도민일보가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그해 12월 29일 저녁 7시 ‘한국 식민지 유산의 특징과 과거사 청산’을 주제로 특강을 마련했는데 그때 내가 주선을 맡았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박노자 교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서 간절히 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내 기억으로는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처가가 마산이니까 한국 들어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이 왔고 그게 그대로 지켜졌다. 그 후에도 2007년인가에 한 번 더 박노자 교수를 모시고 특강을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은 뚜렷하지 않다. 어쨌든 예전 강의에서 나는 정말 얘기를 똑 부러지게 하는구나 하고 느꼈었다. 논증에는 허술함이 없었고 예시는 구체적이었으며 결론에는 비약이 없었다. 2..
의령 담쟁이넝쿨 흙돌담 헛간 어디에서 보았다 담쟁이넝쿨 흙돌담 초록과 황토의 어울림 문을 열고 들어가 어릴 적 다락만큼 어둑신 숨어 있기 좋은 헛간 나를 가려주고 세상을 보여주던 어수룩한 햇살 두려움 없애주고 편안하고 따뜻하고 그래서인지 언젠가 저 문을 열고 나섰던 기억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을 향해 두 팔 벌리고 벌판을 나갔던 걸음. ----2023년 5월 26일 # 의령군 유곡면 신촌리 청정로 1780-6 근처에는 맛집으로 소문난 송산중국집이 있다. 전화 055-572-8289.
손혜원 똘끼는 어디까지 갈까? 보름쯤 전에 전라도 목포 옛 도심 거리를 다녀온 적이 있다.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의 성우제 작가와 함께였다. 먼저 ‘창성장’에 들렀다가 문이 잠겨 있기에 ‘손소영갤러리앤카페’를 찾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소품도 하나 장만했는데 둘 다 괜찮았다. 이 두 곳은 2019년 초입에 신문 방송이 떠들썩하게 들끓었던 손혜원 당시 국회의원의 조카들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들이다. 옛 도심 거리는 지금이나 4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가꿔져 있고 조금 더 차분해져 있는 것이 달랐다. 1. 조선일보류는 투기라 했고 그때 신문 방송들은 손혜원 의원이 투기를 위해 알박기 차원에서 조카들 이름으로 건물을 구입했다는 식으로 연일 보도해댔다.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목포시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이응인 시집 '은행잎 편지와 밤비 라디오' 이런 시가 나는 좋다. 이응인 시집 '은행잎 편지와 밤비 라디오'에 실려 있다. 언제쯤이면 나도 즐거이 ‘개숫물’이 될 수 있을까. 그 집 싱크대에서는 목련 나무가 창문 너머로 보일 것이다. 창고 옆에 훌쩍 자란 목련 나무를 베어 버리나 어쩌나 삐죽하니 키만 크고 쓸모가 없어 그래도 꽃 필 땐 환하고 좋잖아 저기 살구나무 심으면 어때 살구보다 단감나무 심어 제 맘대로 떠들다가 막내가 던진 한마디에 끝이 났다. 목련 나무는 새들이 사는 집인데 왜 우리 맘대로 해요? --- 가족회의 마지막 접시를 씻고 나자 어디선가 어슴푸레 관악기 소리가 들렸다. 남의 몸 말끔히 씻어 주고 싱크대 하수구로 사라지는 개숫물 시원하고 아득한 연주. --- 설거지 마칠 무렵 나는 이렇게 들었다. 책을 한 권 샀는데 거기서 마음에..
잊어볼 결심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SNS에는 존경스러운 스승에 관한 글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런 스승이 없다는 글도 많았다. 고통의 기억을 남긴 선생님들에 관한 얘기도 적지 않았다. 나는 혼자만 그렇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슷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 국민학교 때 1970년 3월 국민학교 입학한 다음 날부터 맞기 시작했다. 대답할 때 왼손을 들지 않았다고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왼손잡이다. 왼손으로 필기를 하니까 당연히 “저요” 하면서 오른손을 들었는데 왼손이 아니라고 얻어터졌다. 한강철교도 있었다. 비오는 날이었는데 운동장으로 내몰렸다. 60명 남짓 여덟 살 아이들은 엎드려뻗쳐를 하고 어깨 위에 다른 친구의 발을 올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강철교는 “앞으로 십 보”, “우..
다람쥐를 보았네 이름에 '쥐'가 들어가는데도 귀엽다. 금은보화로 꾸미지 않아도 보기 좋다. 부풀려 단장하지 않아도 예쁘다. 날래서 그런지 사람을 피하는 기색이 없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나 귀찮다는 듯 몸을 재게 움직여 멀어질 뿐 떨어져 지켜보면 저 할 짓 하느라 사람이 있는지 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쪼춤바리만으로도 잘 논다. 가만 멈추어 서서도 잘 논다. 놀이감이 없어도 한 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사람들은 날마다 조금이나마 더 가지려고 몸부림인데 상처를 주고 받느라 정신이 없는데 사랑하거나 미워하느라 난리법석인데 인정받지 못한다고 안달인데 먹고살려고 발버둥치고 걱정하는데 아이든 어른이든 놀이감이 없으면 금세 따분해지는데 아무래도 다람쥐는 사람보다 한 길 위이지 싶다. --2023년 6월 11일
그야말로 옛날식 도리깨의 기억 1. 오랜만에 본 옛날 그 도리깨 며칠 전 고성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아침에 선선할 때 나섰지만 날씨는 금세 더워졌다. 바람은 시원했으나 햇볕이 뜨거웠다. 모터배 아닌 노배라도 나타날까 싶어 바다에 눈길을 주고 걷는데 어디선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탁 탁.” “퍽 퍽.”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도리깨로 보리 타작을 하는구나.’ 고개를 돌려 언덕 위를 올려보았다.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다듬고 있고 할아버지 한 분이 서서 도리깨를 돌리고 있었다. 쇠나 플라스틱으로 조립한 요즘식 도리깨가 아니고 대나무로 얽은 옛날식 도리깨였다. ‘그렇지, 요즘 도리깨로는 저런 소리가 안 나지.’ 2. 도리깨로 콩타작을 하면 나는 저 도리깨를 기억하고 있다. 옛날 시골 우리집..
그대들의 자유 물고기 그대들은 먹고 사는 것에만 매이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밖에 매이는 것들이 많다네 오늘은 무얼 할까 어느 물고기의 먹이를 빼앗을까 다른 물고기에게 인정받아야지 생각지 않는다네 아가미를 열 번 열까 백 번 열까 지느러미를 오른쪽부터 칠까 왼쪽부터 칠까 헤아리지 않는다네 바위 틈에 들까 모래알이랑 노닐까 물풀과 어울릴까 고민을 않는다네 여기서 저기까지 두 번을 오갈까 열 번을 오갈까 가늠도 않는다네 예정 없이 목표 없이 과정 없이 결과 없이 되는대로 에헤라디야 우리는 매이는 것들이 많다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잡낭을 장만한 까닭 1. 며칠 전에 잡낭(雜囊)을 샀다. 나는 잡낭이라는 말은 이번에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처음 보았다. 17장 조르바와 주인공이 산림 벌채 계약을 위해 산 위에 있는 수도원을 찾아가는 장면 첫머리에 나온다. 조르바는 아침에 일어나 수도원까지 올라가면서 먹을 음식을 그잡낭에다 꾸려 넣었다. 찾아봤더니 잡낭은 ‘잡다한 물건을 넣는 주머니’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잡낭이 조르바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조르바는 몸으로 생각하고 몸으로 말한다. 행동하는 자유인이다. 그는 이런저런 잡다한 것에 매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조르바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단칼에 처리해 버린다. 조르바는 물건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말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모조리 잡다한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한데 모아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