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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주이를 꿈꾸며 1. 쓰레기 천국 그동안 주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에 대해서는 생각을 않고 지냈다. 어쩌면 일부러 못 본 척 외면했다고 할 수도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혼자서는 아무래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생태·습지 현장을 찾아 취재·보도하는 일을 주로 했다. 습지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데가 아니면 쓰레기가 많다. 풀섶만 헤치면 나타난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것까지 한데 모여 물살이 약한 여울 같은 데에 무더기로 쌓여 있기도 하다. 도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깨끗한 것은 고속도로가 유일하다. 국도든 지방도든 도심을 벗어나 시골로 접어들수록 쓰레기가 많아진다. 실수로 흘린 것, 봉투에 담아 던진 것, 생활용품을 작정하고 버린 것들로 범벅이다. 그래도 길섶은 나은 편이다. 가드레일 아래 비탈이나..
두꺼비와 로드킬 우리 동네에 저수지가 하나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주택과 상가가 들어서면서 개발이 되다 보니 때 맞추어 물을 대야 하는 논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이 저수지는 평소에는 물이 빠져 있고 눈비가 제법 왔을 때나 한 번씩 채워진다. 바로 옆에는 왕복 2차로 아스팔트 도로가 있고 도로 옆에는 삼계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일대에 두꺼비가 많이 사는 모양인데 봄이 다가오니 알을 낳으려고 하천에서 저수지로 가느라 도로를 가로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나 보다. 며칠 전 어스름에 지나가고 있었는데 아저씨 한 분이 양손으로 무언가를 들어서 옮기고 있었다. 무어라무어라 하시기에 무슨 말씀인지 물었더니 차에 치여 죽는 두꺼비가 많다면서 두꺼비를 저수지 제방으로 옮겨준다고 하셨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
통도사 홍매화 자장매 며칠 전 비 오는 날 통도사에 갔다. 점심으로 비빔밥과 두부를 먹었다. 통도사는 경내에 직영으로 식당을 열어놓고 있다. 맛이 아주 썩 괜찮은 데다. 그러고 나서 경내를 한 바퀴 거닐었다. 자장매와 홍매화가 붉었다. 아래 사진에서 비상소화장치가 같이 찍힌 것이 홍매화이고 그냥 홍매화만 있는 것이 자장매다. 자장은 통도사 개산조사인 신라 자장 스님을 일컫는 것이다. 비가 오는데도 찾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엉뚱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무척 외로운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꽃보다 곱고 그립고 반가운 사람이 자기 옆에 한 명만 있어도 저렇게 꽃에 매일까 싶었다. 나오는 길에는 직영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여기도 직영 식당만큼이나 맛이 그럴듯하다.
국가에 세금을 지급하고 싶은 1인 1. 납입과 지급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낼 때는 ‘납입(納入)’이라 한다. 반면 국가에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준다면 그때는 ‘지급(支給)’이라 한다. 국가뿐만 아니다. 예컨대 근로복지공단도 우리가 고용보험료를 낼 때는 납입이 되고 공단이 우리한테 실업급여를 줄 때는 지급이 된다. 또 학부모가 학교에 등록금을 낼 때는 납입·납부한다고 하고 거꾸로 학교에서 학생한테 장학금을 줄 때는 지급한다고 한다. 우리가 다달이 받는 고지서에는 납입 납부 납세 등 ‘납’ 글자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없다. 2. 들도록 시킨다 ‘납(納)’이라는 한자는 ‘들이다’로 풀이된다. 이 낱말을 의미에 따라 쪼개면 들+이+다가 된다. ‘들’은 들어간다(入)는 말이고 ‘이’는 다른 사람더러 무엇을 하도록 시키는 이른바 사역형(使役形) ..
영산장에서 만난 어여쁜 유과 어제가 창녕 영산장날이었다. 5일 10일이다. 31일이 있는 달에는 30일 말고 31일에 장이 선다. 그 장에 가면 이런 유과를 살 수 있다. 입이 큰 사람은 한 입에 쏙 할 수 있다. 나는 어렵더라. 그래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 건 입 작은 사람도 마찬가지더라.
드물게 크고 멋진 의령 둠벙 경남에서는 고성을 빼고 나면 둠벙을 거의 보기 어렵다. 사실은 고성에서도 바닷가 다랑논 말고 평야 지대에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어쨌거나 나는 며칠 전 의령에서 이 귀한 둠벙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제법 규모도 크고 들판과도 잘 어울리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 중인 그럴듯하게 멋진 둠벙이었다. 의령군 대의면 마쌍리 447. 나는 어쩐지 둠벙이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KBS 수신료 분리 고지를 신청한 까닭 1. 분리 고지 신청은 간단했다 며칠 전 텔레비전 방송 수신료 분리 고지를 신청했다. 아파트 관리비와 통합 고지되고 있던 것이었다. 방송법 시행령이 바뀜에 따라 단독 주택은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분리 고지가 되지만, 아파트는 신청하지 않으면 계속 통합 고지가 된다고 한다.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말했더니 준비된 양식을 꺼내주었다. 거기에 이름·동호수·전화번호와 텔레비전 수상기 대수만 적고 서명하면 끝이었다. 느낌으로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2. “수신료 안 내도 불이익은 없다” 수신료가 분리 고지되면 어떻게 될까? 첫째 KBS 입장에서 보면 한전을 통해 수신료를 거두어들이는 데 따르는 업무와 비용이 늘어난다. 둘째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 관리비 때문에 수신료를 억지로 내야..
가회면의 흙돌 농협 창고 하마터면 '방굥'이라 읽을 뻔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멸굥'하고 싶다. 경남 합천 가회면 신등가회로 1102 흙과 돌로 지은 1970년대풍 흙돌담 농협 창고.
갯벌과 숲에서 길어 올린 여러 갈래 사람살이 ◇생사고락을 묵묵히 지켜봐 온 노거수 8월은 무더웠다. 흙먼지가 풀풀 날렸고 바람이 잦아든 바닷가에는 비릿한 갯냄새가 머물렀다.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산 중턱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눈에 들어와 박혔다. 휘적휘적 올랐더니 마을 들머리 언덕배기에 나무그늘이 짙었다. 설천면 진목리 355번지에서 고사마을을 200년 넘게 지켜온 팽나무였다. 아래는 없던 바람이 들판과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골목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걸어나왔다.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뒤춤에 올린 채로 가만히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자락과 들판을 넘어 바다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편안했다. 푸른 무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벼들로 짙어지고 있었고 갯벌을 머금은 바다는 갈수록 거뭇거뭇해지..
바다에 안긴 보물 앵강다숲길 마을마다 갖가지 매력 ◇남해 나비섬의 속내에 담긴 앵강만 남해를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편 나비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위가 창선섬이고 나머지 세 날개는 남해 본섬이다. 접었다 펼쳐서 만든 데칼코마니에서 왼쪽 아래 끝과 오른쪽 아래 끝이 제각각 가천마을과 두모마을을 이루고 있다. 가천에서 두모까지 두 날개 사이 옴폭 들어간 데가 앵강만이다. 여기에 홍현·숙호·월포·두곡·용소·화계·신전·벽련까지 모두 열 개 마을이 있다. 이들 마을은 모두 독특하고 개성이 뚜렷하다. 산비탈 다랑논으로 유명한 가천, 크고 멋진 마을숲과 석방렴을 갖춘 홍현, 전복으로 이름난 숙호, 몽돌과 모래를 모두 가진 해수욕장의 월포·두곡, 미국마을을 품은 용소, 역사가 오랜 화계, 마을숲과 석방렴에 모래사장까지 있는 신전, 마을숲이 투박하지만 자연스러..
단절의 고통이 섬 꽃으로 피었나니 ◇‘사씨남정기’의 탄생지 남해 지금 남해는 보석처럼 빛나는 자연이 곳곳에 박힌 보물섬이지만 옛날 남해는 외롭고 서러운 유배의 섬이었다. 지금은 1㎞도 되지 않는 남해·노량대교로 육지와 이어져 있지만 옛날에는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는 절해고도였다. 전통시대 남해에 유배 왔던 사람은 130명가량 되는데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서포 김만중(1637~1692년)이었다. 서포는 한문을 떠받드는 사대부였지만 한글로 쓴 글도 남겼다. 남의 말인 한자를 쓰는 것은 앵무새와 같다고 했을 정도로 주체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유배를 떠난 아들 때문에 상심한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쓴 김만중의 소설이 ‘구운몽’이었다.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고 입신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깨어보니 꿈이더라는 내용이다. 김만중은 병자호란 때..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숨결 노량해협 따라 흐르는 듯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2022년 남해군 방문의 해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남해군은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경상남도의 지원 아래 찾아오는 탐방객과 관광객을 늘리고자 지역을 갈고닦으면서 널리 알리는 활동을 펼쳐 왔다. 경남도민일보는 이를 응원하는 뜻으로 연말을 맞아 '내년에 남해로 오시다' 짧은 기획을 마련했다. 이미 잘 알려진 것도 좋지만 그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작고 소소한 것들을 좀 더 찾아보고자 한다. ◇노량해전이 벌어진 관음포 앞바다 남해 하면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역사의 풍랑이 거셌던 데이기도 하다. 430년 전 백성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임진왜란의 마지막 끝자락 회오리가 남해를 몰아쳤다. 하동에서 남해대교와 노량대교를 건너면 ..
고준위 방폐장 창원 유치를 공약하시라 원자력 발전은 안전하지 않다. 지구상 모든 나라가 인정하고 우리나라도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게다가 대형사고라도 한 번 터지면 나라 경제가 결딴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그 생생한 증거다. 그런데도 일부 국회의원은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 원자력발전만큼은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고가 일어나봐야 인정하겠다는 수준 이하 억지다. 그나마 일본 후쿠시마는 인구 밀집 지역과 나름 떨어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 도시 옆에 붙어 있다. 여기에 더해 방사성 폐기물 처리를 둘러싼 분열·대립·갈등이 원전산업의 기반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가 인정하는 최대 현안인 것이다. 지금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갖은 우여곡절을..
추미애 아들 허위 보도의 경우 1. 2020년 8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청탁 관련 허위 내용이 SBS를 통해 방송되면서 정치권과 민심이 크게 출렁였다. 조국 전 장관에 관한 허위보도로 엄청난 혼란을 겪은 뒤끝이라 잇달아 터져 나온 이 기사로 많은 사람들이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발단은 당시 장관 아들의 인사권자였던 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장 이철원 예비역 대령이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실과 한 통화 녹취였다. '부대를 바꿔달라고 청탁했지만 거절했으며 그러지 말라고 40분 동안 교육했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는 이를 거짓말로 판명했고 이 대령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2. 그런데도 SBS에 대한 경찰의 의견은 불기소였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일리가 없는 것..
비열한 조선일보여 1.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다. 제목이 '문대통령 양산 사저 인근 655억원 들여 도시재생'이었다. 양산에 도시재생 사업이 결정됐는데 문재인 대통령 집과 직선거리 5㎞이고 퇴임 후 집과 직선거리 12㎞라는 것이다. 첫 문장에 이렇게 적혀 있고 뒤에 다른 내용은 없다. 아무 실체도 없이 대통령이 특혜를 받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박정엽 기자가 쓴 기사였다. 이게 기사면 조선일보 사장 집이 무슨 사업과 직선거리로 5㎞를 띄우고 밀접해 있다고 써도 된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집이 어떤 사업과 12㎞ 직선거리를 두고 이웃해 있다고 써도 된다. 아예 조선일보 사옥이 광화문광장 재정비 지역과 바로 붙어 있다고 쓰면 특종이다. 2. 음주운전 단속에 검찰 신분을 밝히지 않아 징계를 모면했던 검사가 이 정부에서 줄승진했다..
두 손 가득 움켜쥐는 게 우리의 선택일까 경남도민일보에서 ‘습관 된 나를 넘어’를 펴냈다. 치매 어머니와 함께하는 일상을 담은 책 ‘똥꽃’으로 유명한 전희식 농부의 작품이다. 올여름엔 KBS1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자연의 철학자'로 소개되면서 평소 생각과 말과 행동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작가는 습관이 얼마나 힘이 센지 얘기한다. 직접·간접 경험과 상상 속 경험이 쌓여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면 무엇이든 쉽고 친숙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습관으로 코딩된 반응이다. 습관은 나이만큼 살아온 삶의 궤적이다. 일상을 돌아보면 무심코 하는 행동이 많다. 작정하고 하는 행동은 오히려 적다. 무심코 하는 행동은 대부분 제공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심코 종이컵 커피를 마시고 무심코 켠 텔레비전에서 무심코 홈쇼핑을 보다가 무심코 상품을 구..
윤석열의 역사적 임무는-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걱정이 많았다. 그의 공약과 발언 때문이다. 언론노조를 손보겠다느니 선제타격을 하겠다느니 사드 배치를 하겠다느니 핵발전을 늘리겠다느니 검찰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느니 등등 예사로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권 차원 보복 수사는 당연한 것으로 예고됐고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가리고 덮었다. 최저임금제를 손보고 주 5일 노동제를 무력화하고 해고의 자유를 넓히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손질하고…에서는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아무리 공약이라 해도 실행은 않기를 바랐다. 공약이나 발언대로 하면 더 큰 폐해가 생긴다는 것을 얼른 깨닫고 없었던 걸로 삼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는 공약도 아닌 것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감옥에 갇힌 김경수의 진실 10년쯤 됐는지 모르겠다.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와 피해자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가까운 이웃이었다. 피해자는 용의자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경찰은 용의자가 빚 독촉을 하다가 살인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용의자의 창고에서는 피 묻은 옷이 나왔다. 함께 발견된 범행에 쓰였음 직한 도구에는 용의자의 지문도 묻어 있었다.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경찰은 용의자를 구속했지만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했다. 같이 들일을 하던 피해자가 다쳐서 피를 흘리기에 헌옷으로 닦아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동기가 뚜렷하고 증거도 갖추어졌다며 아랑곳없이 기소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경찰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범행 도구에 용의자의 지문이 있다 해도 그것이 용의자가 살해..
예쁘네, 함안 가야장 예쁘네. 젊은 호박도 예쁘고 꽃 핀 배롱나무도 아름답다. 함안 가야장은 5일과 10일에 선다. 31일까지 있는 달은 30일 말고 31일이 장날이다. ---- 2022년 8월 5일
경주, 그 친구 1. 경주, 라고 하면 나는 아득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눈물 어리게 좋아했던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경북 월성군 건천읍 용명1리. 나는 문학소년이었으나 간이 작아서 문학반에 들지는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문학반 ‘태동기’의 당당한 멤버였고 2학년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태동기에서 시를 잘 쓰는 친구로 우뚝 꼽히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우리 반은 참 별났다. 모두 50명 남짓이었는데 화가, 사진작가,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연극배우, 가수 지망생이 숱하게 많았다. 현직 건달 또는 건달 지망생 대여섯까지 더하면 스무 명가량이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도 그 친구도 그랬다. 친구는 웃는 모습이 기막히게 멋졌다. 웃으면 자그마한 눈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꼬리가 처지면서 얇..
할부지 계시는 데까지는 한장딴일까 두장딴일까 1. 시골 집에서 읍내 장터까지는 길이 제법 멀었다. 아부지는 8키로라 하셨고 할부지는 20리라 하셨다. 걸어서 두 시간이 걸렸는데 읍내 중학교 다니는 형들은 새벽밥 챙겨 먹고 6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었다. 할부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셨다. 어둑어둑한 어스름에 사랑방에서 나는 “에헴!” 소리는 집안을 깨우는 신호였다. 식구들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부산함을 어린 꼬맹이였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할부지 옆자리 이불 밑에서 꼼지락거리며 게으름을 부렸고 할부지는 사랑채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셨다. 콩깍지랑 볏짚이 삶아지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면 할부지는 소마구의 구시를 김이 펄펄 나는 소죽으로 가득 채우셨다. 아침 세수는 소죽 끓인 솥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물로 하셨다. 아침밥 먹는 자리는 안채 대청마..
우포늪 저어새 나는 보았네. 부리가 노란색이 아닌 그냥 부리 저어새 일당을. --- 2023년 1월 28일
보람은 작은 것에도 있더라 1. 경남도민일보 출판국에서 2023년 들어 처음 펴낸 책이 ‘줬으면 그만이지-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이다. 20대 초반부터 50년 넘게 나눔과 베풂을 실행하고도 정작 당신의 이름은 눈곱만큼도 드러내지 않은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다. 커다란 울림과 감동을 안겨주는 내용이어서인지 반응이 뜨거워 한 달 남짓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3쇄를 준비하고 있다. 새해 들머리부터 이런 좋은 일이 생기니 책이 나오는 데 작으나마 힘을 보탠 당사자로서 보람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선한 영향력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퍼져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일지언정 빠듯한 신문사 살림에 보탬도 되니까 말이다. 2. 하지만 보람은 이렇게 크고 빛나는 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눈길을 덜 끌고 적게 팔리는 책에도 보람은 ..
장승포 애광원 애빈하우스 거제 장승포 애광원 애빈하우스. 괜찮은 경관을 푸근한 분위기로 누리는 멋진 카페. 커피와 빵과 과자도 맛이 좋다. 예전엔 현금만 됐는데 이제는 카드로도 결제 가능. 맛, 풍경, 분위기 다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하나는 여기 와서 뭐든 사면 장애인 복지시설 애광원에 바로 보탬이 된다는 사실. --- 2023년 2월 5일
멀리 오래 떨어져 있어서 잘 보이는 모국 1. 22년 전, 13년 차 기자 성우제는 장애를 가진 자녀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장애인을 캐나다에서는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잘나가는 시사잡지 기자 생활을 접고 월급을 모은 돈과 아파트 판 돈을 갖고 캐나다로 날아갔다. 원래 이민이란 게 몇십 년 살아온 자신의 뿌리를 통째 뽑아 옮기는 존재의 결단이다. 그래서 새로 잔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이민 초기는 새로운 정착과 생존을 위한 고달픈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그에게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 몸부림은 더욱 절박하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영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 작업으로 음식점에 '알바'로 들어가 새벽부터 '철카트'를 밀며 뛰었다. 펜..
화왕산의 새와 벌레 옥천계곡에서 화왕산 올라가는 들머리 새들에게 습격당한 벌레들의 아파트. ---2023년 4월 10일
화왕산과 봄 창녕 화왕산의 진달래, 억새, 버드나무. 진달래와 억새는 좋고 멋지다 해도 볼 수 있는 다른 산이 적지 않게 있다. 반면 버드나무가 산꼭대기에서 자라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버들은 습지식물이고, 습지는 저 아래 낮은 데에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밀양 재약산 사자평 700~800m 고지에도 있는데 거기가 높기는 하지만 산꼭대기는 아니므로. 가운데 네모 난 못은 용호상박과 용쟁호투의 현장 용지(龍池). 호랑이 대가리가 여기에서 발굴되었는데~~ 옛날 기우제를 지내면서 이걸 집어 넣고는 물 속에 사는 용이랑 한 바탕 붙어서 구름을 모으고 비를 내려 달라는 주술. 그리고 용지 왼쪽 위에 보이는 네모 난 울타리는 창녕조씨 득성비. 관련 전설은 인터넷 찾아보면 나옴. 이 또한 용지 관련이라네. --- 2023년 4월..
가온길과수원 청년 농부 김성인을 응원하는 까닭 그제 합천 삼가 난전에서 복숭아를 샀다. 1만 원에 네 개였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맛이 없었다. 씹는 맛도 목화솜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 맛도 없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딸도 같은 말을 했다. 둘이서 한 개는 억지로 삼켰지만 나머지는 도저히 먹기가 어려웠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면 천벌 받는 줄 알면서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멀쩡한 복숭아 세 개를 음식물쓰레기통에 집어넣으려니 마음이 심란했다. 어제 다시 복숭아를 두 상자 샀다. 가온길과수원에서였다. 한 해 전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샀다. 상자를 집어드는데 단내가 코를 찔렀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과연!이었다. 한 상자에 열여섯 개 들었는데 씹는 식감까지 제법 괜찮았다. 문자로 얼마냐고 물었더니 2만9000원이라 ..
망우당 곽재우 생가 안채 정지간 나는 저런 으스럼이 좋더라. --- 2023년 5월 16일
고분군의 봄 아직은 봄. 한참 들여다 봄. 옛 무덤 뒤덮은 노란색 봄. --- 2023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