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옛날에는 겪지 않았던 어려움에 맞닥뜨릴 때가 많다. 예전에는 여기저기 식당이 있었고 밥맛도 나쁘지 않았다.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식당 찾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찾았다 해도 밥이 밥이 아니고 반찬이 반찬이 아닌 경우가 드물지 않다.
모두 찾는 사람이 적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밥도 처음 지어놓았을 때는 괜찮았겠지만 손님이 적어지니 식은밥 묵은밥이 되기 십상이다. 반찬 또한 마찬가지. 언젠가 소고기 곰탕을 시킨 적이 있는데 거기 든 고기가 젖은 목화솜보다 뻑뻑했고 퀴퀴한 냄새까지 났다. 냉동칸에서 적어도 반 년은 묵혀두었던 것일 수 있겠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2.
대한민국 인구가 시골일수록 더 빨리 더 많이 줄어드는 현실의 반영일 뿐이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또한 그것대로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괜찮은 빵을 미리 챙겨 가거나 고구마나 감자를 쪄서 가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아예 굶을 때도 없지 않다. 놀러 다니는 것이기만 하면 그래도 견디기가 쉽지만 밥벌이 삼아 해야 할 일이 있어 갔을 때는 아이고 내 신세야, 처량하구나 한탄까지 나온다. 다녀보면 아시겠지만 허기진 배로 산길 들길 걷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3.
그러다가 이런 집을 만나면 그야말로 황홀해진다. 아무 기대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면 그 황홀은 곱빼기가 된다. 며칠 전 합천 가회 나무실마을 서정홍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둘이 함께 점심을 먹은 중앙식육식당이 그렇게 멋졌다.


어디서나 나오는 반찬에 밥이지만 깔끔했다. 밥은 질거나 되지 않고 탱글탱글하면서 부드러운 쌀알이 입안에서까지 고슬고슬 살아 있었다. 주인의 반찬 손맛도 무척 괜찮았다. 어쩌다 보니 좀 싱겁게 간이 되었다고 하는데 내 입에는 딱 맞았다. 삶은 배추 쌈과 감자조림은 환상적이었고 새로 한 김치는 싱싱함과 슴슴함이 제대로 어우러져 있었다.
함께 나온 청국장도 청국장 같지 않은 것이 맛이 훌륭했다. 살짝 매콤했는데 자극적이지 않았다. 콩알은 씹히는 식감이 있는 듯 마는 듯 리드미컬하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자작자작한 국물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았다. 처음 한 그릇은 국물을 떠먹었고 한 그릇 더 달라고 한 두 번째 밥은 여기다 비벼서 먹었다.
그래서 밥과 반찬을 이렇게 깨끗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물론 남긴 것도 있다. 톳을 비롯한 바다풀 나물 둘과 고등어 찍어먹는 멸치젓갈 하나는 다 먹지 못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인아주머니 손이 커서 많이 주셨기 때문이다.
4.
내년에 경남 지역 임진왜란 의병 전수 조사를 위해 돌아다닐 일이 많은데 합천 가회는 끼니 걱정을 덜었다. 이제 여기는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다. 합천 가회는 그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의병의 고장이다.
영산 탈환 전투 등 곽재우 휘하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맹활약한 윤탁 장군이 그 대표다. 1593년 6월 진주성 2차 전투 때는 죽을 줄 알면서도 미리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류를 뿌리치고 주저 없이 입성(入城)하여 순절하신 인물이기도 하다.
5.
중앙식육식당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43-1
055-933-9271, 010-2680-9271
# 언제 쉬는지는 깜박하고 물어보지 못했다. 밥값은 청국장 정식이 1만 원이었다. 다른 것도 아마 고만고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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