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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그 집 툇마루에서 대나무를 보았다

1.

그 집에 가서 대나무를 보았다. 경남 함안 고려동 종택 사랑채 자미정. 오른쪽으로 감아들어 툇마루에 앉았다. 오후 2시 툇마루에는 제법 알뜰하게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어릴 적 대숲을 두른 집에서 살았다. 그 대숲은 길고 깊었다. 할아버지는 대밭이 돌밭이고 뱀도 많다면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틈 나는대로 대밭에 들어갔다.

 

들어가 앉으면 한여름에도 시원했다. 마당에서 어른들 나누는 말씀이 아득하게 들리는 느낌이 좋았다. 할아버지가 내게 심부름 시키려고 "주야! 주야!!" 부르기도 하셨지만 나는 잠자코 쪼그린 채 있었다.

 

2.

나는 대나무가 내는 소리를 조금 알고 있다. 휘어지는 소리도 있고 꺾어지는 소리도 있다. 휘어지는 것은 바로 서기 위해서였고 꺾어지는 소리는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왔다.

 

겨울에는 살을 에는 바람이 불었다. 방안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어도 추운 소리였다. 잎과 가지는 솨아솨아 도리질 치는 소리를 냈고 줄기는 휘어졌다가 튕겨지는 소리를 냈다.

 

다른 계절에는 소리가 달랐다. 잎과 가지가 내는 소리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저녁 나절 평상에서 모깃불이 흔들리는 정도였다. 줄기가 휘어졌다 바로 서는 소리도 그렇게 탱글탱글하지는 않았다.

 

3.

꺾어지는 소리는 한겨울이 되어야 들을 수 있었다. 30년 전까지는 경남 창녕에도 눈이 많았다. 해마다 적어도 한 번은 한 자 넘게 폭설이 내렸다.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밤이면 대숲은 이따금 "꺾꺾" 우는 소리를 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과 지붕은 물론이고 가깝고 먼 산이 모두 하얬다. 집 뒤 대밭 또한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몇몇 대나무는 반드시 텅 빈 마디가 세로로 갈라진 채 거꾸러져 있었다.

 

나는 지금도 두껍게 쌓인 눈의 차가움과 갈라진 대나무 가시에 찔리는 따끔함이 느껴진다. 그때는 장갑이 귀했다. 댓잎 위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나는 맨손으로 털었다. 할아버지는 마당부터 쓸지 않고 딴 짓을 한다고 역정을 내셨다.

탄은 이정이 그린 풍죽도(위)와 설죽도

 

4.

대여섯 해 전인가 국립대구미술관에서 '풍죽도'를 본 적이 있다. 바람에 맞서는 것 같기도 했고 바람과 어우러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팽팽한 긴장을 실감나게 그려낸 솜씨가 감탄스러웠다.

 

'풍죽도'가 있으면 '설죽도'도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았다. 눈이 짧아 그렇겠지만 '풍죽도'만큼은 멋지지 않았다. 그래도 눈을 뒤집어쓴 무게만큼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가서 털어주고 싶었다.

 

5.

돌아나오며 보니 사랑채 누마루에 우죽헌(友竹軒) 현판이 걸려 있었다. 대나무를 벗으로 들여놓은 공간이라니. 열 번도 넘게 왔었지만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랑채 주인은 여기서 대나무와 사귀었구나. 나는 잠깐이지만 그의 벗과 어울리는 호사를 누렸다.

 

대나무는 언제나 곧은 줄 여기는 사람이 많다. 윤선도가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라고 한 탓이 크다. 하지만 실제로는 쉽사리 휘어지고 꺾어진다. 나는 대나무가 사랑스럽다. 나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어렵지 않게 휘어지고 꺾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