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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서울인천

넉넉함과 옹졸함, 부처와 인간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한 번 가서 보았다.

 

전북 남원 만복사지

경남 합천 영암사지

전북 익산 미륵사지를

맞먹거나 능가하는 규모라기에

경관과 감흥도 그러할 줄 알았다.

 

회암사지는 그러나

절터가 아닌 왕궁터였다.

절간 형식으로 지어진 궁궐이 원형이었다.

태상왕과 방장을 위한 공간을 바라보는 전경

 

상왕과 태상왕 노릇을 하던

태조 이성계를 위한 자리가

가장 높은 데 가장 널찍하게 있었고

그 아래에 방장 그것도 동서로

두 방장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부처를 위한 전각은

그 아래였는데다가

석가모니 진신사리 탑조차

높은 자리이기는 했지만

오른쪽 한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진신사리탑을 바라보는 전경

부처가 아무리 높아도

중심은 아니라는 듯

세상의 중심=태조 이성계를

밝고 돋보이게 하는

보조 장치일 따름이라고 일러주는 듯.

 

마당에서 어둠을 밝히는

정료대는 왜 그렇게 많은지

석탑과 짝을 이루는

석등은 또 왜 보이지 않는지

그 옛날 정료대마다

관솔불을 올려놨으면

그 밤은 한낮만큼 환했겠다.

 

정료대

여유와 여백이 없었다.

신분과 위계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옆에서 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을 건물들

그 자취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회암사지는

세상 이치를 깨달은 부처의

넉넉함이 스며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욕심과 차별로 버무려진 인간들의

옹졸하고 비루한 자리였다.

진신사리탑

 

걸음을 옮길수록

자꾸 감흥이 떨어져서

나는 절반도 돌아보지 못 한 채

돌아 나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