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겸손
다랑논은 골짜기를 끼고 있는 산지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고 또 돋우어 만들었다. 내륙 산간 지대에 많이 보이지만 하천이 짧고 경사가 심한 바닷가 해안 마을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다.
언덕배기 비탈진 땅을 논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먼저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 바위와 돌로 축대를 쌓고 안쪽을 흙으로 채워야 하고 높은 데는 깎아내고 낮은 데는 채워 넣어야 한다. 달구지 같은 것은 들어가지 못하니 맨손과 지게로 나르는 수밖에 없었다.
다랑논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하여 최소한으로 자연을 변형시킨 조화와 타협의 산물이다. 대규모 간척이나 개간과 달리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겸손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장소가 바로 다랑논이다.
2. 다랭이마을·두모마을이 유명
다랑논은 다랭이마을에서 대량마을까지 앵강만에 자리 잡은 열두 개 마을 산기슭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2005년 국가명승으로 지정된 다랭이마을 다랑논이 가장 유명하고 다음으로는 두모마을 다랑논이 꼽힌다.
한눈에 보기에 씩씩하고 시원한 눈맛은 다랭이마을이 으뜸이다. 하지만 다랑논에는 그런 아름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부드럽게 펼쳐지는 두모마을의 다랑논은 그와 달리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푸근하고 아늑하다.
3. 나머지 열한 마을에도 있다
앵강만에 자리 잡은 다른 열한 마을의 다랑논도 두 마을 못지않게 그럴듯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다랭이마을 두모마을 사이 어디쯤에 해당한다. 어떤 마을은 다랭이마을에 가깝고 어떤 마을은 두모마을에 가깝다. 또 그 두 마을을 알맞게 버무려놓은 것 같은 마을도 있다.
다랑논을 다랭이마을과 두모마을의 명물에서 앵강만 모든 마을의 명물로 확장시키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지형지세 등 특징이나 성격이 마을마다 다르므로 그에 걸맞도록 마을별 맞춤형 활용방안을 연구·개발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물론 앵강만의 열세 마을 모두를 다랭이마을이나 두모마을처럼 많은 이들이 찾아오도록 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최소한 앵강만과 남해군의 생태가 매우 우수하고 건강하다는 것을 안팎에 뚜렷이 인식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4. 생존을 향한 간절함, 삿갓배미
다랑논 가운데서도 생존을 향한 인간의 간절함이 가장 짙게 밴 것이 삿갓배미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흔했지만 요즘은 귀해졌다. 삿갓배미에서 ‘삿갓’은 삿갓만큼 조그맣다는 말이고 ‘배미’는 한 배미 두 배미 세 배미 하며 논을 세는 단위다.
삿갓배미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 농부가 논에서 김을 매다가 세어 봤더니 한 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날도 저물고 하여 집에나 가야겠다면서 벗어둔 삿갓을 집어 드니까 그 밑에 사라진 한 배미가 있었다…….
이런 우스개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작은 논이 삿갓배미다. ‘삿갓배미 열 개를 모아도 한 마지기 될까 말까 하다’는 말까지 있었다. 삿갓배미는 층층이 계단을 이룬 다랑논에서 높은 위쪽에 많았고 그래서 같은 노동을 해도 훨씬 더 힘이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가난하고 굶주렸으면 저런 땅까지 논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싶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다랑논에서도 삿갓배미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묵정이가 되어 수풀로 뒤덮이면서 자연으로 돌아간 것도 많고 포클레인 같은 기계·장비가 보급된 덕분에 큰 배미 하나로 합쳐진 것도 적지 않다.
다랭이마을에는 이런 삿갓배미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제2주차장에서 제일 가까운 동쪽 진입로로 내려가면 오른쪽(지번은 남면 홍현리 994-1)에 있는데 개울에 바짝 붙어 있다. 옆에 삿갓배미 안내판이 서 있는데 추수하고 남겨진 그루터기가 서른 개 될까 말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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