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해

12] 멸치잡이 지휘하던 현란한 꽃춤

--다랭이마을 망수꾼 김채완

 

해마다 봄이 되면 남해 바다에는 멸치 떼가 나타나 무리 지어 다닌다. 이걸 잡는 멸치잡이배를 육지에서 총지휘하는 사람을 망수, 망수꾼이라 했다. 멸치 떼의 흐름을 잘 보는 눈 밝은 망수꾼이 깃발을 흔들어 육지 언덕에서 신호를 한다.

 

김채완이라는 뛰어난 망수꾼이 있었는데 멸치잡이 사람들이 서로 모셔가려고 줄을 설 정도였다. 마을이나 남해에서뿐만 아니라 경남 일원에서 남해 바다 전체에서 그랬다. 60~70년대 한창 활동할 때 40대였는데 일찍 요절하셨다. 지금도 망수꾼 김채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멸치잡이배가 바다에서 멸치 잡으려고 두 척이 벌려 서서 한가운데에 그물을 치고 있으면 망수꾼은 육지에서 딱 그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선다. 그러고는 멸치 떼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래저래 신호를 보내면 바다에서는 배들이 그 신호를 보고 따라 움직인다.

 

김채완 망수꾼이 신호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몸짓이 마치 춤추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갖은 동작이 힘차고 리드미컬했다. 동네 아이들이 망수꾼이 깃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고 꽃춤을 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면 10명 정도 타고 있던 멸치잡이배에서는 깻돌을 집어 던지고 그랬다. 멸치가 틈새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그물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갯가에 널려 있는 작은 돌들을 출어하기 전에 배에 실어두었는데 그것을 깻돌이라 했다. 갯가에 있는 돌이라 해서 깻돌인데 말하자면 자갈이다.

 

망수꾼은 멸치잡이를 하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수입은 변변치 못했다. 멸치잡이가 끝나고 나서 현물로 받는 멸치가 망수꾼 수입의 전부였다. 멸치잡이는 봄 한 철뿐이니까 망수꾼이 먹고사는 직업은 될 수가 없었다.

김채완 망수꾼이 멸치잡이 지휘를 했던 남해 다랭이마을 앞바다.

 

다랭이마을에 세워져 있는 망수상의 모델이 김채완 씨다. 그런데 자제들이 항의를 한 적이 있다. 얼굴이 곰보였는데 망수상을 보면 그런 자국이 없다. “이게 뭐냐, 곰보 표시를 했으면 알아볼 텐데 그렇지 않게 했으니 우리 아버지인 줄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이다.

 

망수상은 다랭이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왼편에 폐교가 있는 앞쪽 길로 해서 바다를 끼고 자드락길을 걸어가면 다랑이논이 끝나는 지점 어귀(남면 홍현리 산 199-1)에 있다. 실제로 김채완 망수꾼이 깃발로 신호를 했던 망수바위는 가는 길이 없어지다시피 했는데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산길을 400m 남짓 가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