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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5] 도끼로 밥무덤 깨우는 남해 대량마을 동제(洞祭)

1. 옛날에는 서로 하려고 했던 제관

 

대량마을 동제는 음력 10월 보름에 치러진다. 남해군 바닷가 마을은 대개 다 그렇다. 저녁에 해가 넘어갈 즈음인 5시 정도에 시작한다. 순서는 산신제~밥무덤제~당산제~용왕제로서 모두 네 차례 제사를 지내는데 모시는 자리가 저마다 다르다.

 

제주(祭主)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이장이 맡는다. 집안에 초상이 났거나 결혼이 있거나 애기를 임신했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한다. 대신할 사람은 특별한 조건이나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집안과 일신에 무탈한 사람 가운데 동네 의논을 거쳐 결정한다.

 

지금은 제주를 자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서로 하려고 했다. 마을 바닷가에 잔뜩 밀려드는 몰(톳이나 미역 같은 해초류를 가리키는 남해말)을 남 먼저 차지할 수 있는 특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료나 퇴비가 없던 시절 몰을 거두어 말리면 논밭에 쓰는 거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대량마을 동제당

 

옛날 자원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동네에서 회의를 거쳐 제주를 선정했다. 덕행이나 지식 등 어떤 기준과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길흉사나 우환 등 제주를 맡기에 저촉되는 바가 없고 가장 무탈한 사람을 골라 뽑았다.

 

제주와 축관 등 제관 두 사람은 하얀 두루마기 등 제복을 갖추어 입는다.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일상적인 복장을 깨끗하게 차려입으면 된다. 동제 참여에는 별도 제약이 없어서 지금도 옛날도 남녀노소 모두 나올 수 있다. 외부인도 못 오도록 막지는 않는다.

 

제주로 선정되면 옛날에는 1년 동안 경조사 출입을 못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동제 이전 열흘 동제 이후 열흘이 삼가고 조심하는 기간이다. 부부 합방은 당연히 금한다. 그리고 이전 보름 이후 보름 하는 식으로 제주가 기간을 늘려서 삼가는 것은 가능하다.

 

2. 정결을 위해 소금부터 뿌리고

 

먼저 산신제는 옛날에는 대량마을 뒷산 덕이산(한자로 덕의산(德義山)이라고도 한다. 지도에는 천황산으로 적혀 있는데 잘못이다. 천황산은 소량마을 뒤편에 있다.) 정상 아래에서 지냈으나 지금은 올라가기 힘든데다 길도 없어져서 마을 들머리 첫 집(상주면 상주로 564)에서 서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제단을 마련하고 지낸다.

산신제 자리. 사진 한간운데 바닥에 놓인 넙적한 돌이 밥무덤이다.

 

먼저 주변에 소금을 뿌려 맑게 정리하는데 이는 밥무덤제와 당산제도 똑같다. 다음으로 제상을 차리고 향과 초를 켠 뒤 메 한 그릇을 과일·북어포와 함께 진설한다. 제주가 한 번 잘하고 술을 올리고 엎드린 상태에서 축관(祝官)이 축문을 읽은 뒤에 다시 두 번 절한다. 마지막으로 제주와 축관이 앞에 있는 넓적한 판돌을 들고 아래에 메를 묻고 황토를 덮은 다음 북어포를 풀숲에 매단다.

 

다음으로 밥무덤제를 지내는 자리를 마을에서는 사직단(社稷壇)이라 하는데 산신제를 모신 데에서 마주 보이는 건너편 도롯가(양아리 산 286-5)에 있다. 도로가 해안을 향해 불룩하게 내민 곳으로 서너 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앞에 두고 도로를 두르는 가드레일 바로 옆에 밥무덤이 있다.

 

제물은 산신제와 같은데 메와 나물·국을 두 그릇씩 진설하는 것이 다르다. 절을 한 번 한 다음 술을 올리고 다시 두 번 절한다. 축문은 읽지 않으며 판돌을 들어올려 메 두 그릇을 묻고 금줄을 두른 다음 북어포는 금줄에 끼워서 모신다.

밥무덤제를 지내는 댈향마을 사직단.

 

3. 도끼로 두드려 깨우는 당산제 밥무덤

 

이어지는 당산제는 동제당(洞祭堂)에서 모신다. 지번은 상주면 양아리 914-3과 양아리 915-5 일대인데 주변에 400년가량 된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다. 당산제를 지내는 당산나무는 느티나무인데 몇 해 전 태풍에 뿌리째 뽑히는 바람에 새로 심은 후계목이다.

 

당산나무 앞 밥무덤 아래에 제상을 차리고 메·나물·국 두 그릇씩과 수어와 받침수어, 그밖에 갖은 제물을 진설한다. 수어를 옛날에는 민어를 많이 썼고 요즘은 돔을 주로 쓴다. 특별하게 정해진 생선은 없으며 제주 집안에서 평소 제사를 지낼 때 수어로 쓰는 생선 종류가 그대로 나온다고 보면 된다.

 

절차는 일반 가정집 보통 제사와 비슷하다. 먼저 한 번 절한 다음 술을 올리고 다시 절하고 엎드려 축문을 읽은 뒤 한 번 절한다. 두 번째는 메에 숟가락을 꽂고 수어 등 제물에 젓가락을 올린 뒤 한 번 절하고 술 올리고 두 번 절한다.

 

세 번째는 한 번 절하고 술 반 잔 올린 뒤 두 번 절하며, 네 번째는 한 번 절하고 술잔을 채운 뒤 합문(闔門)하면서 길게 한 번 절한 다음 한 번 더 절한다. 합문은 첨잔 후 산신·지신 등이 와서 음식을 먹는 동안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나물을 내리고 숭늉을 올리고 다시 술을 드리고 두 번 절한다.

동제당의 당산나무와 당산제 밥무덤.

 

이어서 밥무덤에 밥을 묻는다. 먼저 판돌을 도끼로 두세 차례 세지 않게 두드리듯 내리쳐 밥무덤을 깨운다. 판돌을 들어내고 메와 나물 두 그릇씩을 정성 들여 묻고 술을 드린 다음 황토를 덮고 그 위에 다시 판돌을 올린다. 밥무덤을 금줄로 두르고 수어 생선도 짚단으로 싸서 당산나무에 금줄로 매달아둔다.

 

4. 제물을 짚배로 바다에 띄우는 용왕제

 

당산제를 마치면 나머지 제물은 함께 나누기 위해 마을회관으로 가져가고 받침수어(수어를 받치는 두 번째 큰 생선)는 짚단에 싸서 술과 함께 용왕제 지내는 데로 보낸다. 용왕제는 방파제 들머리 가까운 데에서 제상을 차려놓고 올린다.

 

촛불만 켜고 향은 피우지 않으며 메와 나물·국도 올리지 않는다. 당산제에 썼던 받침수어를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술을 올리고 절하는 것은 같지만 축문은 읽지 않는다. 뒤이어 받침수어를 짚단으로 만든 배에 담아 바다에 띄워 보내면 동제 전체가 마무리된다.

 

이렇게 동제를 마치면 대략 9시 즈음이 된다. 앞서 당산제 마치고 먼저 제물을 들여갔던 마을회관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제사 음식을 나눈다.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서로 덕담을 나누고 얘기를 주고받는다.

짚으로 싸서 당산나무에 달아놓은 제물.

 

5. 저마다 종이 사르며 소원 빌고

 

산신제 축문은 산신제에서 소지(燒紙)하고 당산제 축문은 당산제에서 소지한다. 이와 함께 당산제에서는 참여한 사람들마다 하나씩 종이를 나누어주어 개인별로도 소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마다 액땜을 하고 안녕과 평안을 기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옛날에는 두모마을과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개별적으로 제상을 차려 나왔다. 크기는 대체로 겸상이나 독상 정도였다. 두모마을은 산신제부터 개별 제상이 있었지만 대량마을은 당산제를 지낼 때만 있었다는 것이 다르다.

 

동제는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천지신명에게 올리는 추수감사제였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평안, 마을의 단합과 화합을 꾀하는 것이었다. 동제에 쓰이는 제물은 제주를 맡은 집안에서 장만했다. 관련 경비로 어촌계에서 현재 60만 원을 지원하는데 동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드는 것도 있다.

 

##축문(祝文)

 

산신제

() 세차(歲次) 갑진(甲辰) 시월(十月) 기사삭(己巳朔) 십오일(十五日) 계미(癸未)

대량리거민(大良里居民) 유학(幼學) 김재성(金在聲) 감소고우(敢昭告于)

덕의산왕신령(德義山王神靈) 지신(之神)

대량리주민(大良里住民) 연중평안(年中平安) 소망여의기원(所望如意祈願)

재해병질(災害病疾) 일령제거(一令除去) 인구번성(人口蕃盛) 백실안도(白室安堵)

우순풍조(雨順風調) 오곡풍등(五穀豐登) 양양만가(穰穰滿家) 육축번식(六畜蕃殖)

무재무해(無災無害) 기수다복(旣修多福) 가호소만(家戶笑滿) 출입행로(出入行路)

재액소제(災厄掃除) 등산야제인(登山野諸人) 무사귀거(無事歸去) 가족상봉(家族相逢)

자비시우(慈悲視祐) 근이포육(謹以脯肉) 근이건고(謹以虔告)

()~~~~ ()~~~~

 

국역

유세차 갑진년 시월 기사삭 십오일 계미일에

대량에서 태어나 살아온 유학 김재성은 고하나이다.

덕의산 왕신령님.

대량 주민들이 올해에도 평안하고 소원성취하기를 비옵니다.

모든 재해와 질병 일행에 제거하시어 인구가 번성하며 편안토록 하옵시고,

비가 순하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 오곡이 풍년 되어 곡식이 집안 가득하게 하옵시며,

가축들이 많이 늘고 재앙과 해악이 없이하여

다복한 가운데 집집마다 웃음이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객지에 나가 있는 자들에게는 재앙과 횡액을 막아 주시옵고,

산과 들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무사히 귀가하여

가족과 만나도록 자비스러움으로 보살펴 주시옵기를

삼가 포육을 올리고 공경을 다하여 고하나이다.

비록 적지만 차린 제물을 받으옵소서.

 

당산제

() 세차(歲次) 갑진(甲辰) 시월(十月) 기사삭(己巳朔) 십오일(十五日) 계미(癸未)

대량리거민(大良里居民) 유학(幼學) 김재성(金在聲) 감소고우(敢昭告于)

당산지신(堂山之神) 유차상월(惟此上月) 개이보사(改以報事)

일리강길(一里康吉) 백곡풍년(百穀豊年) 어업풍어(漁業豊漁)

도민지덕(導民至德) 가민혜택(加民惠澤) 가가안녕(家家安寧) 기뢰신휴(冀賴神休)

비례장성(菲禮將誠) 유신고흠(惟神顧歆) 궐거(厥居)

()~~~~ ()~~~~

 

국역

유세차 갑진년 시월 기사삭 십오일 계미일에

대량마을에서 태어나 살아온 유학 김재성은

올해 시월 상달을 기하여 밝게 맑게 고치어

당산 지신님께 제를 올리면서 삼가 고하나이다.

온 마을이 편안하고, 백곡이 풍년들고,

어민은 만선풍어, 동민은 지덕으로 인도하시고

동민께 혜택을 더하여 집집마다 안녕하기를

모두 당산신의 힘입기를 바라옵니다.

변변치 못한 예를 드리오나 정성으로 마련하였습니다.

신께서는 돌보시고 음향하시며 영구히 이 거처에 안정하시고

비록 적지만 차린 제물을 받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