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 개의 밥무덤
다랭이마을에서는 동제를 밥무덤제라 한다. 밥무덤은 모두 세 곳에 있다. 북쪽을 빼고 동·서·남 세 방향에 있다. 동쪽은 옛 가천초등학교 자리(남면로679번길 17-31, 지금 바리스타김) 담장 아래 축대를 파고 들어가 있다. 남쪽은 중앙인데 남면로679번길 17-20 앞(지번은 남면 홍현리 852)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서쪽은 남면로679번길 31-9 옆 길가 야트막한 돌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밥무덤은 하나같이 동네 길가에 있다. 재해는 바다를 통해서도 들어오지만 역병이나 액운 등은 육로를 통해서도 들어온다. 마을을 지키려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나 바깥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다 이렇게 밥무덤을 두었다.
2. 일반 가정집 제사와 비슷
10월 보름 저녁 6시 정도 되면 마을 주민들이 남쪽 중앙 밥무덤 앞에 다 모인다. 밥무덤제를 지내기 위해서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던 옛날에도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였다. 지금 대략 70~80명 정도 된다. 연세가 많아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노친들은 두레방(남면로679번길 21)으로 먼저 가서 기다린다.
제사는 특별한 것 없이 유교식으로 지낸다. 마련한 제수를 제상에 올리고 밥과 국을 진설한다. 절은 두 번 하고 일어나고 숟가락 꽂고 젓가락 걸치고 다시 재배하고 일어난다. 그런 다음 술을 잔에 치고 축문 읽고 수저 걷고 밥그릇 뚜껑 덮고 또 절하는 등 다를 바 없다.
절은 제관들만 한다. 제사를 지내는 남쪽 밥무덤 앞 장소가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좁기 때문이다. 두루마기 같은 제복도 제관들만 차려 입고 나머지는 평상시 차림으로 참여한다.
3. 소지 종이로 액땜
제사를 지낸 다음에는 밥을 적당하게 한지에 싸서 밥무덤을 덮고 있는 바위를 들어낸 다음 그 밑에 묻고 위에는 황토를 덮어준다. 이렇게 밥을 묻는다고 해서 밥무덤이고 밥무덤제라 한다. 세 군데 밥무덤에 밥을 다 묻는 데까지 모두 합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축문 등 제사에 쓴 한지는 마지막에 모두 소지(燒紙)한다. 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기 위하여 불사른 한지가 공중으로 올라갈 즈음에는 사람들이 서로 먼저 잡아 가지려고 다툰다. 소지하는 종이를 가지면 복을 받고 액땜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소지할 때 불도 나고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일이 없다.
제사 뒤에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은 세 곳 밥무덤에 밥을 묻고 나서 바로 옆에 있는 두레방으로 장소를 옮겨서 진행한다. 동네 사람 모두가 참여한다. 분위기가 활기차고 떠들썩하다. 밥이 있고 술도 있고 안주가 있고 모두 푸짐한데 오지 않을 사람이 없다.
4. 제관은 모두 세 사람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같은 제관 3명이 제사를 진행한다. 옛날에는 마을이나 고을 또는 나라에 공적이 있고 학식도 있는 사람이 맡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준으로 정할 수도 없고 그런 분들이 실제로 있지 않으니까 한 해 전 마을 동회에서 이듬해에 이장을 포함해서 제관 맡을 사람을 세 명 선정한다. 이장을 뺀 나머지 두 사람은 동네회의에서 주민들 중에 경조사라든지 우환이 있는지 등을 살펴서 가장 문제가 없는 사람을 선정한다.
제관들은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제주는 이레 전에 자기 집 대문에 금줄을 치고 이때부터는 사람들과 말도 섞지 않는다. 밥무덤 제사를 신성시하기 때문이다. 홍현마을은 제사를 지내러 나온 유사가 길에서 사람과 마주치면 집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지만 다랭이마을은그렇게까지는 안 한다. 마주치지 않으면 좋고 마주쳐도 말만 섞지 않으면 된다.
금줄은 밥무덤에도 친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방향으로 세운 양쪽에 대나무 사이에 한지를 꽂은 왼새끼를 매단다. 대나무 위쪽에는 댓잎이 그대로 달려 있고 금줄은 그 아래에 놓이도록 한다. 규모는 밥무덤 크기대로 간다. 남쪽(중앙)이 가장 크고 동쪽이 중간이며 서쪽이 제일 작다. 세 곳 밥무덤을 둘러싸는 모퉁이나 어귀에는 조금씩 황토를 뿌려준다.
5. 천지신명 모시고 추수감사제
밥무덤제는 제물을 깨끗하게 갖추고 천지신명에게 비는 측면도 있지만 용왕신·산신·지신 등을 따로 구분해 가면서 모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을걷이가 다 마쳐지는 시점에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위해 벌이는 추수감사제 같은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동네 사람 모두가 제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외지인에 대해서도 참여를 금하는 것이 없다. 다만 옛날에는 외지인이 일부러 찾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동네 사람끼리 지내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제물을 시장에서 사다 쓰지만 옛날에는 1970년대만 해도 마을에서 나는 것을 썼다. 지금은 고기잡이배가 마을에 한 척도 없지만 그때는 9~10명이 타는 잠수기 배가 열 척 있었다. 마을 앞바다는 맑고 깨끗하고 물살도 세어 남해에서 최고 좋은 수산물이 나는 어장이었다. 당시는 전부 일본에 수출했는데 그런 생선과 해물을 제사에 썼다.
경비는 원래는 마을 공동재산으로 조달했다. 그러다가 2005년 문화재청(지금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다랭이마을 일대가 명승으로 지정된 뒤로는 나라 예산 400만 원이 지원되고 있어서 그것으로 마련한다.
# 다랭이마을을 옛날에는 가천마을이라 했다. 다랑논이 유명해지면서 다랭이마을로 바꾸었다.
## 다랭이마을 동제는 남해 다른 마을들의 동제와 달리 신령들께 기원하는 성격보다는 추수감사제 성격이 더 짙다.
### 다랭이마을 동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소지하는 한지를 앞다투어 서로 가지려고 하는 데 있다.
#### 밥무덤이 남해 다른 마을들보다 압도적으로 큰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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