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월 초하루 제주 집 대문에 금줄
육지에서는 대부분 동제를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낸다. 남해에서는 다들 10월 보름에 지낸다. 농지에서는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바다에서도 산물이 많은 철이 이때다. 바닷가니까 바다에 관련된 일도 있지만 한 해 농사일을 다 끝내고 감사의 뜻으로 조상님에게 드리는 제사가 동제다. 두모마을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오랜 옛날부터 모셔왔다.
예전에는 마을 전체 동회에서 제주(祭主)와 제관(祭官)을 선정했다. 동회는 한 해 전 연말에 열렸다. 제주로 선정되면 1년 동안 경조사에 가지 못했다. 지금은 그런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옛날과 달리 이장이 제주를 맡는데 축문 읽는 제관은 별도로 정하는 절차 없이 연세가 많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맡아 한다.
이장이 경·조사나 또 다른 이유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새마을지도자가 대신 동제를 모신다. 음력 10월에 들어서면 제주는 부부 합방을 하지 말아야 하고 행동거지와 언행을 삼가야 하는 것은 다른 마을 동제와 마찬가지다.
시월 초하루가 되면 제주는 자기 집 대문에 금줄을 둘러친다. 숯과 고추·한지 등을 끼운 왼새끼줄이 금줄이다. 집주인이 올해 동제를 모시니까 부정 타지 않도록 사람이 돌아가셨거나 결혼을 했거나 하는 집에서는 들어오지 말라고 출입을 금하는 줄이다.
2. 옛날엔 선녀꺼리서 목욕재계
동제 당일에는 옛날에는 동제에 앞서 선녀꺼리(서복공원(양아리 산 4-21) 근처 위쪽 골짜기의 폭포 자리)에 가서 목욕재계를 하고 벅시꺼리(마을 뒤편 다랑이논에 있는 삼거리. 상주면 양아리 129 아래) 앞에서 제사를 모셨다. 가는 길에 사람을 만나면 돌아와 손을 씻고 다시 올라갔다.
지금은 그런 사전 절차가 없어졌다. 제주가 집에서 몸을 깨끗하게 한 다음 혼자 나서서 동제 지내는 자리로 바로 가면 되도록 바뀌었다. 그냥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면 되도록 간소화하고 동제를 간편하게 지내도록 했다.
동제는 해가 지면 바로 시작한다. 6시에서 6시30분 사이다.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끝나는 셈이다. 옛날에는 선녀꺼리와 벅수꺼리를 다녀와야 했으니까 지금보다 이른 4시30분~5시에 시작했다.
3. 네 차례 제사에 제상도 네 번
제사는 모두 지낸다. 첫 번째로 산신제, 두 번째로 칠성제, 세 번째로 당산제, 마지막으로 용제를 지낸다. 제사에 따라 지내는 자리도 다르다.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보면 먼저 산신제는 당산나무에서 동쪽으로 길 건너편 산기슭(상주면 양아리 산 193)에 있는 제단에서 지낸다.
당산나무 앞에는 제단이 세 개 마련되어 있는데 제각각 북·서·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북쪽을 바라보는 데서는 칠성제를 지내고 서쪽을 바라보며 당산나무를 향한 제단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고 남쪽을 바라보는 제단에서는 용신을 모시는 용제를 지낸다.
제상도 네 번을 차린다. 산신제 칠성제 동신제 용제 모두 따로 마련한다. 먼저 산신제는 제상에 밥, 나물, 마른 명태를 올리고 술을 따라 올리고 축문을 읽은 다음 제주와 제관이 함께 두 번 절한다. 이어서 밥을 참종이에 싸서 도끼로 제단 위쪽 커다란 바위 틈새의 땅을 파고 묻는다. 밥 위에 나물을 덮어주고 황토를 덮은 다음 소주를 석 잔 부어 드린다.
칠성제는 큰 양푼에 밥을 뜨고 숟가락 일곱 개를 꽂는다. 대나무 세 개로 만든 삼발이를 위쪽이 벌어지도록 해서 거기에 밥을 올리고 바닥에 나물을 그릇 일곱 개에 나누어 담는다. 칠성제는 술이 들어가지 않고 대신 숭늉이 들어간다. 조그만 그릇 일곱 개에 숭늉을 담아 올리고 절을 두 번 한다. 그 물은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마시는데 그러면 복을 받게 된다고 한다.
4. 일반 제사와 비슷한 당산제
당산제는 지내는 절차가 일반 가정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비슷하다. 제복을 갖추어 입은 제관이 축문을 읽고 제주가 순서에 따라 술을 따라 올리고 절을 두 번 한다. 차리는 제물도 일반 가정집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밥 두 그릇, 나물 두 그릇, 그리고 가장 큰 생선인 수어(首魚)를 올린다. 그 앞에는 수어 다음으로 큰 생선인 받침고기와 다른 생선류, 전 종류, 과일 종류, 떡 두 가지를 차린다. 수어는 돔을 주로 쓰고 받침고기는 민어를 주로 쓴다. 돔은 도와준다는 뜻이고 민어는 밀어준다는 뜻이다. 서대, 양태, 나막스 등 여기 바다에서 나는 고기를 써도 무방하다. 다음으로는 육고기부터 생선까지 올리고 두부를 부치고 파전을 올린다. 과일도 올리는데 사과, 배, 감, 바나나, 호두, 수박 등을 장만한다.
제사를 마치면 밥무덤 돌을 뒤집은 뒤 도끼로 땅을 파서 앞서 올린 산신제와 마찬가지로 밥을 한 그릇씩 한지에 싸서 묻는다. 나물을 그 위에 올린 뒤에 파낸 황토를 다시 덮고 돌을 원상태로 덮어준다. 밥무덤은 두 개인데 당산나무 앞 가까이 있는 것에는 당산제 지낸 밥을 묻고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것에는 칠성제 지낸 밥을 묻는다.
이어서 금줄을 당산나무에 세 바퀴를 돌리고 묶는다. 밥무덤 두 개에도 주위에 마찬가지로 대나무 잔가지를 세 개씩 꽂고는 금줄을 각각 세 바퀴씩 돌려서 묶는다. 그리고 커다란 푸대에 담아두었던 황토흙을 밥무덤 위에 부어준다.
5. 밥을 올리지 않는 용왕제
용왕제는 수어와 받침고기는 당산제에 썼던 것을 그대로 내려서 쓰지만 과일은 새로 바꾸어 올린다. 대신 용왕제는 다른 제사와 달리 밥을 올리지 않으며 따라서 밥무덤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술을 올리는 것은 산신제·당산제와 똑같다.
산신제, 칠성제, 당산제, 용제를 차례대로 지낸 다음에 마지막으로 축문을 쓴 한지 종이 등을 불에 태워서 날리는 소지(燒紙)를 한다. 이어서 징을 세 번 세게 때려 동제가 모두 끝났음을 알린다. 마지막에는 마을회관으로 음식을 가지고 가서 같이 나눈다.
징을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동제 지내는 날에는 가능한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또 집안에 경조사가 있거나 아이를 가졌거나 우환이 있거나 하면 동제에도 스스로 알아서 참여하지 않는다. 부정 타지 않도록 삼가는 것이다. 세 번 울리는 징 소리는 이제 동제가 끝났으니 마음대로 움직여도 좋다는 신호이다.
제사 비용은 대체로 100만 원 안팎이다. 70만 원은 마을 어촌계에서 공동체 경비로 댄다. 나머지 20만~30만 원은 제주인 이장의 개인 부담이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해초를 주워 팔아서 마련했다. 제사 제물은 제주를 맡는 이장 집안에서 만들어 가지고 온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제상을 하나씩 마련해 왔다. 가장 먼저 지내는 산신제부터 그랬다. 제단에서 도로까지 죽 늘어설 정도로 많이 들고 나왔다. 크기는 겸상이 많았고 독상도 있었다. 그때는 남녀 모두 모두 하얀 한복을 차려입었다. 지금은 제주와 제관만 하얀 제복을 갖추어 입는다.
6. 여자는 참여 못하는 동제
지금 동제는 남자만 참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여자들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다 1977년도 동제사 때 애기를 가진 여자분이 상을 갖고 나와 동제에 참여했다. 당시에는 두모항에서 여수까지 장을 보러 다니곤 했는데 동제 지낸 며칠 뒤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뒤집어졌다.
야끼다마(やきだま(燒玉)=실린더 압축실의 벽면 일부를 달구어 피스톤으로 압축된 혼합가스가 접촉하여 폭발하는 기관으로 어선에 많았다.) 엔진으로 가는 동네배였다. 아홉 분이 나갔다가 오는 길에 모두 돌아가셨고 시신도 거의 수습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여자는 출입을 못하도록 바뀌었다.
동제가 끊긴 적도 있었다. 2000년인가 2001년인가 동회에서 동제를 그만 지내자 해서 안 지내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5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 자꾸 죽어 나갔다. 그래서 2004년부터 다시 동제를 지내게 되었고 그러자 그런 흉사가 없어졌다. 이때부터 이장이 제주를 맡게 되었고 더불어 개인 제상도 차리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옛날에는 외부인은 동제에 참여할 수 없었다. 와서 옆에서 구경하는 참관조차 불가능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도 허용은 되지만 마을 어른들이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 두모마을 동제의 첫째 특징은 이번에 살펴본 남해 다른 마을들의 동제와 비교하여 산신·칠성·동신·용왕신 모두 제각각 제사를 모신다는 데 있다. 제사로만 보면 규모가 가장 크고 절차도 가장 복잡하다. 그만큼 기원(祈願)하는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
## 두모마을 동제의 둘째 특징은 밀행성(密行性)이 가장 크다는 데 있다. 제사를 마치고 나서 마쳤음을 알리려고 징을 치는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또 외부 사람들의 참여는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꺼리는 대상이고 동네에 살더라도 여자는 참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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