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해 해녀의 고향은 제주도
지금 남해에 있는 해녀들은 모두 제주도 출신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제주도에서 물질을 익힌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들이 어려서부터 물질을 할 줄 알았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10대 후반에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2~3학년이거나 졸업을 하거나 할 즈음이다. 그런 해녀들이 육지에 나오면 스무 살 스물한 살 20대 초반이었다. 아가씨들이 다들 젊어서 호기심으로 나왔지 일거리가 있어서 나온 것은 아니다. 친구들하고 어울려 나왔다가 물질을 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2. 물질할 때 쓰는 도구들

물질하러 들어갈 때 갖추는 도구를 꼽아보면 이렇다. 먼저 잠수복을 챙겨 입고 수경을 쓴다. 두렁박을 가슴에 차고 비창을 허리에 꽂고 손으로 갈쿠리(호미)를 든다. 오리발을 신고 허리에 납을 찬 다음 물에 들어간다. 제주도에서는 작살(소살)도 챙기지만 남해에서는 그런 적이 없다. 작살로는 물고기를 찔러서 잡는데 그럴 만큼 물고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무명 옷감으로 만든 물적삼과 물소중이를 입고 작업했다. 적삼은 위에 입는 속옷이고 소중이는 아래에 입는 속바지이다. 물에 젖으면 무거운데다 물에 대한 저항이 커서 1970년대에 들어서 상·하의 모두 고무 잠수복으로 바뀌었다. 오리발이나 수경을 착용하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비창은 빗창이라고도 한다. 전복을 딸 때 쓴다. 제주말로 전복을 ‘빗’이라 한다고 한다. 앞부분이 꼬부라진 20~30cm 길이의 쇠꼬챙이에 나무 자루가 끼워져 있고 손잡이 끝에는 고리줄이 달려 있다. 바위에 붙은 전복을 딸 때 자루를 잡은 손을 고리줄로 감은 다음 꼬부라진 쇠꼬챙이를 전복 밑으로 밀어넣으면 좀 더 세게 힘을 줄 수 있다.
두렁박은 바다에서 가슴에 받쳐서 물 위에 뜰 수 있도록 하는 둥근 공처럼 생긴 기구인데 제주말로는 테왁이다. 대개 그물이 달려 있어서 해녀들이 물속에서 잡은 것들을 여기에 넣는다.)

3. 썰물 때 들어가는 이유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준비 운동 같은 것은 따로 없다. 물질하는 장소는 따로 정해져 있다. 아무 데나 들어가지는 않는다. 원천마을 숙호마을 등 동네마다 정해져 있는 데가 모두 여덟 군데인데 해당 마을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바다다.
물질하는 데까지는 배를 타고 간다. 배로 10분이나 20분씩 나가서 물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주가 해녀를 고용하는 방식이 아니고 선주와 해녀가 협업하는 형태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육지와 가까운 얕은 바다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가 많아 60대 넘고 하면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체력도 다르고 개인의 능력이나 기술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물질하는 때는 밀물 썰물에 따라 정해진다. 썰물 때 들어가고 밀물 때 나온다. 하루 24시간 동안 밀물 썰물이 두 번 바뀌는데 오전 썰물 때에 나가서 작업하고 밀물이 시작될 즈음에 들어온다. 바다에 한 번 들어가서 작업하는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된다.

물질을 썰물에 맞추어 나가는 까닭이 있다. 그만큼 바다가 얕아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썰물 때에는 5m만 들어가면 되는 깊이인데도 밀물 때에는 해수면이 높아지기 때문에 10m를 들어가야 한다. 밀물 때보다 썰물 때에 힘을 덜 들이고도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하지만 날씨가 맑으면 해산물을 많이 잡을 수 있고 흐린 날은 잘 잡히지 않는다. 맑은 날은 물속에서도 시야가 좋고 잘 보이지만 날씨가 흐리면 물속이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4. 하루에 한 번 한 달에 스무 번

오후에는 썰물이 들어도 나가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만 물질을 한다. 물질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오후에 해가 지면 바닷속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때에 맞추어 바다에 들어가야 하니까 4시간 동안 식사도 못하고 물질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허기가 져도 마칠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 힘든 것은 나이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나이가 많으면 아무래도 숨도 빨리 차고 힘도 많이 빠진다.
오전에 썰물이 있는 날이 한 달에 대략 스무 날 정도 된다. 나머지 열흘은 썰물이 없어서 못 들어간다. 물때가 한물, 열두물, 열세물 이런 날은 그냥 쉬는 날이다. 비가 오거나 바람에 세게 불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또 못 나간다.
납을 찼으니까 가라앉는 것은 어렵지 않다. 들어가서는 오리발로 갈퀴질을 해서 오르내리고 방향도 잡는다. 들어가는 깊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7~8m 정도이고 더 들어간다 해도 9~10m 정도이다. 10m 넘게 들어가기는 어렵다.
5.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숨비소리
한 번 물속에 들어가서 머무는 시간은 1분을 넘기기 힘들다. 몇십 초만 지나도 숨이 차오른다. 그러면 위로 올라와 두렁박에 의지해서 쉬기도 하고 다른 데로 옮겨가기도 한다. 많이 견뎌도 1~2분 정도가 최선이다. 숨이 깊은 사람은 한 번 물질에 더 오래 있으면서 더 많이 잡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별도로 망사리를 차고 들어가기도 한다.

물속에 들어가면 풍경이 아름답지만 감상할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이리저리 헤엄치면서 다니면 지난 일상 속에 있었던 여러 일들도 떠오른다. 이게 직업이다 보니까 힘들다거나 갑갑하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해녀들이 휘파람처럼 길게 내는 독특한 숨비소리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날까 궁금해하고 낭만적으로 여기며 신기해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물질이 얼마나 힘든 노동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숨비소리다.
해녀들이 물밑에 있는 동안 호흡을 못 하기 때문에 숨이 차서 물 위에 올라와 내쉬다 보니까 나는 소리다. 이렇게 “호~~” 하고 소리를 내고나면 속이 시원해지면서 숨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6. 해녀 돈벌이는 겨울철 해삼

물속에서 잡는 해산물은 문어, 해삼, 소라, 전복, 멍게, 낙지, 성게 등이다. 해조류로는 미역, 톳, 우뭇가사리, 청각을 뜯는다.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해삼, 전복, 소라, 문어를 주로 하고 한여름에는 성게, 미역, 청각을 주로 한다. 이 가운데 소라, 전복, 문어는 1년 내내 잡힌다. 문어와 낙지는 갈쿠리(호미)로 잡고 전복은 비창으로 따고 해삼은 손으로 잡는다.
사람에 따라서 잘 잡고 못 잡는 차이가 많이 난다. 같은 전복을 따도 빨리 따는 사람이 있고 늦게 따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것을 기술이라 한다. 어디에 어떤 해산물이 있는지 알아보는 눈썰미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물질은 1년 내내 계속된다. 돈이 되는 것은 겨울 물질이다. 겨울에는 해삼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녀들 돈벌이는 겨울 물질로 한다는 말이 생겼다. 겨울 물질은 추위 때문에 더 고되다. 겨울에는 물에 들어갈 때 장갑을 끼고 배에도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난로가 마련된다.
지금은 들어가도 잡아 올 게 없다. 소라·전복밖에 없어서 벌이가 별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지가 10년 정도 됐는데 그 사이 해녀들이 다른 데로 많이 이사를 갔다. 주로 충남으로 많이 이사갔는데 거기는 7월에도 해삼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해삼 잡을 때 되면 잠시 돌아와 머물면서 물질하고 돌아간다.

7. 수익은 선주·어촌계와 분배
물질로 얻은 해산물은 선주가 여수수협 공판장에 내다 판다. 해녀들이 일일이 못 가니까 선주에게 위탁하는 셈이다. 배분은 어촌계가 절반가량을 갖고 해녀와 선주가 각각 37%와 13%를 갖는다. 어촌계 몫은 물질했던 바다 사용료이고 선주 몫은 선박 운영비 등이다.
지금 홍현마을에 살고 있는 해녀는 다섯 명 정도 된다. 많을 때는 열다섯 명까지 살았다. 떠나간 열 명 가운데 서너 명은 이사 간 데서 이리로 왔다갔다 하면서 물질을 하고 있다. 남해에서는 1960년생들이 마지막 해녀 세대다. 지금 남해에 해녀가 있는 마을은 홍현마을 말고는 미조·평산·용소 정도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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