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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남해 앵강만 이웃 마을 이야기 ③홍현마을 동제

1. 동제의 명맥을 잇고 있는 중땀

 

홍현마을에는 중땀과 아랫땀이 있다.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가로지르는 개울이 있는데 그 남쪽이 중땀이고 북쪽이 아랫땀이다. 아랫땀은 얼마 되지 않고 중땀은 사람이 많은 편이다. 위쪽에 있는 무지개마을도 1974년에 분동(分洞)이 되기 전에는 홍현마을 웃땀이었다.

 

동제를 땀제사라 한다. 땀제사에서 은 마을을 가리킨다. 지금 땀제사를 지내고 있는 데는 중땀 하나다. 아랫땀은 지낼 사람이 없어서 얼마 전에 그만두었고 웃땀(무지개마을)은 이미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중땀도 땀제사 존속 여부를 두고 논의한 적이 있다. 2015년 발문회의에서였는데 여차저차 이야기 끝에 계속 지내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남쪽 밥무덤.

 

2. 나이 순으로 제관 임명

 

땀제사는 이레 전(음력 108)에 준비를 시작하고 그 하루 전에 발문(跋文)회의를 한다. 이 자리에서 제관들을 임명하는데 계장, 공원, 유사(有司), 차기 유사, 대축(大祝)1명씩이고 집사(執事)2명이다. 유사는 제사를 직접 모시는 제관이고 계장은 전전 유사, 공원은 직전 유사이다. 대축은 축문을 읽는 제관이며 집사는 제사와 관련된 여러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다. 아울러 차차기 유사도 이때 미리 정해둔다.

 

제관은 나이순으로 맡아서 한다. 동갑이면 생일이 빠른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몇 년 뒤에 자기가 제관을 맡는지는 발문회의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유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집안에 우환이 일어나면 차기 유사와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유사는 이레 전부터 부부 합방을 금하고 동제 전 사흘과 동제 후 사흘 동안 몸가짐과 언행을 삼간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유사를 서로 하려고 나섰다. 지금은 시나브로 없어졌지만 그때는 거기서 나는 소출을 제사 지내는 데 쓰는 농지인 제위답(祭位畓)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사를 맡게 되면 그 제위답을 한 해 동안 부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발문회의 다음날 유사는 자기 집 대문과 밥무덤 세 곳에 금줄을 친다. 금줄은 볏짚으로 왼새끼를 꼬고 거기에 한지와 숯, 고추를 꽂아 만든다. 밥무덤 주위에도 대나무 잔가지를 세 개씩 세우고 고추··한지를 세 개씩 꽂아 둘러 묶는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임을 미리 표시하는 것이다. 유사는 밥무덤에 밥을 묻을 때 쓸 황토도 미리 준비해 둔다. 다른 제관들은 제각각 하얀색 두루마기 등 제복을 미리 챙겨놓는다.

 

3. 머적골수원지에서 산신제부터

 

땀제사는 산신제로 시작한다. 유사는 집에서 목욕재계한 다음 대략 오후 430~5시에 제복 차림으로 혼자서 머적골 수원지(지번은 남면 홍현리 산 146-1)로 향한다.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출발한다.(이를 위해 이장은 동네 방송을 통해 유사가 이동할 시간에 잠시 외출을 자제하도록 주민들에게 알린다.)

 

수원지에 도착한 유사는 먼저 세수를 하고 한 번 절한 다음 초를 켜고 향을 피운다. 이어서 과일을 올리고 다시 한 번 절하고 다시 제주(祭酒)를 올린 뒤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절한다. 이렇게 모두 세 번 절을 올린 다음 사잔(捨盞)을 하면 산신제는 끝난다. 사잔은 술잔에 담겨 있는 술을 뿌려 비우는 것인데 고시레라 할 수 있다.

서쪽 밥무덤.

 

4. 큰 양푼에 담은 밥은 조상을 위해

 

유사가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오면 대략 530분에서 6시 정도 된다. 본 제사는 옛 홍현1리마을회관(남면 남면로 355-3)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7시 즈음에 시작된다.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 제물(祭物)을 차리는 동안 유사는 좀 쉬기도 한다. 제물은 그해 유사를 맡은 집안에서 마련해 가져온다.

 

첫째 줄에는 메와 나물을 세 그릇씩 담아 올린다. 이밖에 커다란 그릇(양푼)에 담은 메도 하나 올리는데 숟가락을 여럿 꽂은 다음 나물과 탕을 함께 진설한다. 그리고 좌우 끝에 떡을 차리며 술잔도 세 개를 올린다. 메와 나물, 술잔을 세 개씩 진설하는 까닭은 제각각 산신·지신·용왕신을 모시기 위해서이다. 큰 양푼 하나에 메를 담고 숟가락을 여럿 꽂아 올리는 것은 마을에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선조들과 어른들을 위해서이다.

 

둘째 줄에는 생선을 올린다. 수어(首魚=가장 큰 고기)와 낭태·써대··갈치 등이다. 수어로는 주로 민어··큰 조기를 올린다. 셋째 줄에는 대구전·명태전 같은 전류, 문어·멍게·소라·전복·해삼·새우 같은 해물류 그리고 닭·쇠고기·계란·두부 등을 올린다. 넷째 줄은 과일인데 조율시이(棗栗柿梨=대추···), 유자·포도·사과·수박 등을 올린다.

북쪽 밥무덤.

 

5. 유사와 차기 유사가 함께 밥을 묻고

 

땀제사는 홀판(笏板=의식(儀式)의 절차를 기록한 글판)을 참조하여 대축과 집사의 안내로 일반 가정집에서 제사 모시듯이 지낸다. 제사를 모신 후에 유사와 차기 유사 두 사람이 함께 세 군데 밥무덤을 찾아가 밥을 묻는다.

 

먼저 넓적한 판돌을 들어올리고 한지에 곱게 싼 햇밥을 놓은 다음 깨끗한 새 황토로 덮어준다. 판돌을 원래대로 놓은 뒤 그 위에 막걸리를 붓고 소금을 뿌린다. 옛날에는 목화씨와 콩··수수 등 오곡도 뿌렸다. 어느 밥무덤을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밥무덤은 마을 어귀 동서남북 길가 네 군데에 있다. 사정에 따라 옮기기도 하고 새 도로가 나기도 하면서 달라진 것도 있지만 네 곳 모두 마을로 드나드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까닭은 도로를 통해 들어오는 액운과 역병(감염병) 또는 잡신을 막기 위해서였다.

 

6. 동서남북 길목에 있는 밥무덤

 

현재 밥을 묻는 데는 서··북 밥무덤 세 곳이다. 동쪽 밥무덤은 아랫땀에서 따로 동제를 지내고 나서 찾아가 묻었었는데 2016년 이후 어느 해인가 중단되었다.

 

남쪽은 남면로와 무지개로가 갈라지는 삼거리 무지개로 1(홍현리 248-1) 근처 도롯가에 있다. 서쪽은 무지개마을 쪽으로 올라가다가 보면 왼편에 나오는 파인힐스키즈스파펜션(남면 홍현리 310-4) 울타리 안에 있는데 펜션 건물 뒤편의 커다란 소나무 아래가 그 자리다.

 

북쪽은 도로에서 중땀으로 들어오는 남면로 353번길 콘크리트 다리 근처 도로 쪽(남면 홍현리 산 22-1)인데 모과나무 동목(洞木) 아래에 있다. 지금은 밥을 묻지 않는 동쪽 밥무덤은 홍현마을숲 북쪽 끝에서 서쪽으로 100m 남짓 떨어진 옛 마을길 나들머리 밭(남면 홍현리 6-1)의 두둑에 있다.

동쪽 밥무덤. 지금은 제사를 받지 못하고 있디.

 

밥무덤에 밥을 다 묻고 돌아오면 대략 밤 9시가량 된다. 동제에 참여했던 이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마을회관에서 유사와 차기 유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서 제사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면서 얘기를 주고받는다.

 

예전에는 동네 아이들이 유사가 밥을 다 묻고 돌아올 때까지 밖에서 함께 어울려 놀며 기다렸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어른들이 떡이나 과일 등 제사에 썼던 음식을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과일이며 먹을 것은 흔해지고 아이들은 귀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이튿날 아침에는 분식(分食)을 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동제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모두 모여서 하루 전에 지낸 땀제사 제수 음식으로 식사를 함께 나누는 자리이다. 서로 덕담을 나누고 내년 제관들을 확정하면서 결산도 한다. 땀에서는 유사에게 제수 비용으로 현재 5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동쪽 밥무덤.

 

7. 첫 시작은 임진왜란 때

 

땀제사의 유래는 대략 600년 전 임진왜란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적들의 침탈과 노략질이 극심해 그에 대응하여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빌기 위해 땀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밥무덤은 농경지가 협소하다 보니 쌀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신앙 차원으로 승화되면서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짐작된다.

 

홍현마을 중땀 땀제사에는 여자들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제약 없이 참여하고 있다. 옛날에도 그랬다. 음식 준비 이런 것은 여자들이 다 한다. 지금은 제수를 모두 시장에서 장만하지만 옛날에는 바다에서 고기 잡는 부인들이 좋은 생선을 잡으면 땀제사에 올리라고 내놓곤 했다. 외부인에 대해서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금기는 없다.

 

## 축문(祝文)

 

유세차(維歲次) 갑진시월기사삭십오일계미(甲辰十月己巳朔十五日癸未)

감소고우(敢昭告于) 이사지신(里祀之神)

유차맹동(維此孟冬) 약시보사(若時報事)

일리강길(一里康吉) 백곡풍양(百穀豐穰)

기뢰신휴(冀賴神休) 비례장성(菲禮將誠)

유신고흠(惟神顧歆) 영전궐거(永奠厥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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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유세차 갑진년 시월 기사삭 십오일 계미에,

마을 제사를 맡은 신에게 감히 밝게 아뢰나이다.

이 한겨울에 때맞추어 보답하는 일을 합니다.

온 마을이 편안하고 좋으며 모든 곡식이 풍년이 들어 잘 여물었으니

모두가 신령님 덕분이니 작은 예물과 정성을 올립니다.

오직 신령님은 돌아보시어 흠향하시고 오래오래 이곳에 머무소서.

비록 적지만 차린 제물을 받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