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낮에 ‘서울의 봄’을 보았다. 과연 잘 만든 영화였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눈에 거슬리거나 긴장을 떨어뜨리는 군더더기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반란군 대장 전두환은 비열하지만 카리스마가 있었다. 진압군 대장 이태신은 정의롭고도 의연했다. 이쪽저쪽 굴러다니는 똥별들은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굴하고 무기력했다.
덕분에 흡족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설 수 있었다. 앞에 엘리베이터가 멈추기에 올라탔다. 뒤이어 많아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부부도 함께 탔다.
1. ‘잘난 친구 전두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노태우는 좋았겠다. 잘난 친구를 만나서~~” 그러고는 무어라 말을 이으려는데 여자가 손으로 조그맣게 가위 표시를 했다. 남자는 가만히 입을 더 열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영화 보면서 은근히 신경 쓰였던 것이 바로 이거였다. 어쩌면 영화를 본 관객 가운데 전두환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없지 않을 것 같았는데 바로 그렇구나.
물론 맞는 말일 수 있다. 반란을 일으켰든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든 권력을 찬탈하고 8년 가까이 대통령으로서 갖은 위세를 떨치고 영화를 누린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2. 오욕으로 버무린 인생
하지만 그의 인생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다. 대통령을 그만두자마자 전두환은 국민의 공적이 되었고 숱한 시위대의 등쌀에 시달렸다. 결국은 강원도 백담사로 유폐되어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두 번이나 넘겨야 했고 법정에서는 반란죄 수괴로 사형과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
그에 따라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감빵살이를 해야 했고 그 뒤에 나와서도 두고두고 욕을 얻어먹었으며 말년에는 치매와 암으로 고생했다.
3. 죽었어도 묻히지 못하는 신세
2021년 11월 드디어 삶이 끝났지만 전두환의 비참한 신세는 그대로였다. 대한민국 모든 산천이 그의 주검을 거부하는 바람에 지금도 자기 집 냉동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어떤 악인도 우리나라 5000년 역사에서 이런 참상을 겪지는 않았다.
이것을 두고 과연 잘난 사람의 일생이고 그 마지막 여정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 그 어떤 양아치도 이보다는 나을 정도로 참혹하고 비루한 신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노태우도 좋을 것 없었다. 평생 전두환 쫄쫄이로 살았다. 전두환 뒤를 따라 7년 동안 청와대에서 지냈지만 감옥에서도 2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 나머지 인생의 비루함도 전두환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다만 말년에 자신의 악행에 대해 사죄한 것이 전두환과 달랐고 그래서 꼭 그만큼 덜 나쁜 인간이 되었다.
4. 대화는 사람끼리
<서울의 봄> 영화 마지막 즈음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전두환이 이태신에게 “우리 좀 대화로 풀어보자”는 취지로 말했다. 이태신의 응답은 이런 투였다. “야, 대화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
그렇구나. 전두환은 인간이 아니었구나. 짐승이구나. 사람의 탈을 빌려 쓴 악마구나. 그런 존재의 한살이를 두고 인생이니 삶이니 한다면 그 자체가 잘못이구나. 이 영화의 메시지가 바로 이거였구나.
5. 정상은 짧고 인생은 길다
나는 젊은 세대들이 좀더 길게 넓게 보기를 바란다. 역사를 두고 어쩌니저쩌니 하는 그런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자기가 사는 자기 인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짧은 듯 싶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어떤 존재가 올라갔던 높은 정상 자리만 쳐다보지 말고, 떨어져 박혔던 깊은 바닥까지 보기 바란다. 얼마나 영예로웠는지만 생각하지 말고, 치욕의 나락에서 얼마나 헤어나지 못했는지도 가늠해보면 좋겠다. 역사는 인생보다도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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