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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태신의 목도리와 서울의 봄

1. 마지막 장면의 대치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났는데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떠오르는 모습이 하나 있다. 진압군 대장 이태신이 목에 둘렀던 목도리가 그것이다.

 

반란군 진압을 위해 전차를 끌고 나간 이태신은 경복궁 앞에서 전두환 일당과 대치한다. 19791213일 새벽에는 없었던 장면이다. 상황은 이미 반란군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태신은 출동 직전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는 낮에 전해준 가방에 목도리가 있으니 춥지 않게 하라고 일러준다. 이태신은 그 목도리를 두르고 마지막 출동을 했다.

2. 빼앗긴 목도리

목도리는 포근한 촉감과 따뜻한 온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아내의 마음은 따뜻하고 부부가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은 포근하다. 이태신은 목도리를 두른 채 반란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

 

이렇듯 이태신은 아내와도 못 만나게 되었고 일상도 깨어졌다. 맥락을 꿰어맞추고 보니 그의 목도리는 국민들이 전두환에게 빼앗기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소품으로 여겨진다.

 

3. 서울의 봄은 어디에

이렇게 보니까 영화 제목 <서울의 봄>도 참 잘 붙였다 싶으면서 실감 나게 다가온다. 돌이켜 보면 80년 서울의 봄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두 겨울공화국 사이에 끼여 있는 신기루였다.

 

12.12 군사 반란으로 그것은 오기도 전에 사라졌고 피지도 못한 채 얼어붙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그 기나긴 겨울을 목도리 하나 없이 겪어내야만 했다.

 

4. 나는 지금도 춥다

어쩌면 지난 이태 동안 내내 추웠던 것 같기도 하다. 40년 전에는 땅 밑까지 꽝꽝 얼게 하는 맹추위였다면 지금의 추위는 은근히 소름 돋게 만드는 새치름한 모습이다. 전두환 시절에는 군인들이 설쳤고 지금은 검사들이 설친다.

 

사조직의 명칭이 있고 없고는 옛날과 지금이 다르지만, 그들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며 공적인 권력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휘두르는 것은 놀랍도록 닮아있다. 서울의 봄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이태신은 전차를 끌고 나갔는데 나는 무엇을 끌고 나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