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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나는 태양을 향해 두부를 바친다

 

1. 나는 태양교 맹신도다

나는 태양을 열렬히 숭배한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 바로 이 태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나는 틈만 나면 하늘을 우러러 햇볕 바라기를 하고 그때마다 아 따사롭구나, 참 좋구나.” 고마운 마음으로 기도를 바친다.

 

나는 태양교의 맹()신도로서 두부를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 태양께서는 나를 비롯한 여러 신도들과 마찬가지로 물을 참 좋아하신다. 촉촉하게 젖은 물건에서  물기를 남김없이 뽑아가시고 건더기는 우리 신도들더러 먹게끔 남겨 주신다.

2. 나는 태양에게 다른 제물도 바친다

태양에게 바쳐지는 제물은 종류가 다양하다. , , , 사과, 고구마, 두부 등은 그대로 맨 하늘에 바치고 무청이나 배추 잎사귀는 그늘을 지운 아래에서 바친다. 그리고 대구·민어·조기 우럭 같은 생선이나 미역·다시마 같은 바다물풀은 이러나저러나 무관하다.

 

태양을 위해 바치는 다른 제물들은 진설법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두부는 어떻게 차리면 되는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부터 이 맹신도가 알려주는대로 하면 햇볕을 통해 내려주시는 태양의 은총을 제대로 입을 수 있다.

3. 반드시 얼렸던 두부를 진설한다

두부를 진설하는 데에서 핵심은 반드시 얼렸다가 녹인 것을 쓴다는 것이다. 태양께서는 자신의 본성과 반하는 차가움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이신다. 오히려 열을 식혀주는 갸륵한 행동이라 여기시고 은총을 더욱 풍성하게 내리신다.

 

두부를 얼리면 물기는 물기대로 뭉치고 콩 성분은 콩 성분끼리 뭉친다. 콩 성분끼리 뭉친다는 말은 단백질 농도가 높아진다는 뜻으로 태양께서는 평균 7배를 보장해 주신다. 그러는 과정에 두부에는 작은 구멍이 생기는데 이는 씹는 식감을 좀더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이렇게 구멍이 숭숭 나면 좋은 점이 또 있다. 태양에게 두부에 스민 물기를 바치고 나서 그 건더기를 요리해 먹을 때 소금·고추·마늘 같은 갖은 양념이 잘 스며든다. 생두부로 할 때보다 훨씬 적게 써도 같은 맛을 내므로 그만큼 나트륨을 줄여주시는 것이다.

얼리면 좀더 오래 보관하면서 태양께 바칠 수 있다는 숨은 장점도 있다. 생두부는 바칠 때까지 고작 사나흘밖에 보관이 안 되지만 얼리면 한 달도 두 달도 석 달도 가능하다. 일상에는 게으르면서도 태양을 숭배하는 데는 열심인 맹신도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이다.

 

나는 얼린 두부를 상온에서 한나절을 녹인다. 태양을 향해 정성을 들이는 기간을 충분히 잡는 것이다. 그러나 바쁜 사람들은 전자레인지를 써도 된다. 3~5분 돌리면 된다. 솔까말 태양께서는 사전 정성 기간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신다.

 

4. 크기는 물기 흡입을 잘 하실 수 있을 정도로

두부를 바칠 때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막대처럼 길게 썰어도 되고 깍두기처럼 잘게 썰어도 된다. 찌개에 넣을 때처럼 반듯한 네모꼴도 괜찮은데 다만 너무 두꺼우면 곤란하다. 대략 1cm면 태양께서 물기를 흡족하게 거두어가실 수 있다.

 

이러면 건더기의 단백질 농도가 다시 3배 정도 높아지는 은총을 받게 된다. 마그네슘 함량은 그보다 더 높여주신다. 식이섬유도 더욱 농밀하게 높여주시는데 이는 적게 먹고도 더 오랫동안 포만감을 누릴 수 있는 태양교 신도들만을 위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5. 전자레인지는 이단이 되기 쉽다

태양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몸소 내리시는 햇볕을 얼마나 오래 영접하느냐 여부이다. 햇볕을 쬐는 시간이 길수록 은총은 두터워진다. 그러려면 구름을 잘 피해야 한다. 일부러 그늘에 진설하면 은총이 얇아지고 건조기나 전자레인지에 진설하면 은총이 없어진다.

 

건조기나 전자레인지는 보조 수단으로만 써야 한다. 3분의1까지 쓰면 천사로 남고 3분의1을 넘어가면 그 순간 악마가 된다. 모든 종교가 다 그렇듯이 천사와 악마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태양교에서는 그런 상태를 이단으로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