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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경남도청에는 전두환 조상을 기리는 초상이 있다

1.

경남도청 4층 대회의실에 가면 향토 출신 선현여섯 분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 문익점·김종직·조식 선생과 사명대사, 정기룡 장군이 그들이다.

이들 다섯 분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왼쪽에서 두 번째에 영수 전제 장군이 끼여 있다. 초상 아래에 적힌 약력은 이렇다.

 

2.

1558(명종 13)~1597(선조 30), 합천 초계 출생

자 시적(時適), 호 영수(英叟)

관직은 영산현감, 호조참판 추증

조선 중기 무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창녕 박진·의령 정암싸움에서 승첩을 거둠

정유재란 때에는 명의 도원수 마귀와 함께 울산 도산전투에 출전, 선봉장으로 크게 전공을 세우고 전사함

경남도청 대회의실의 영수 전제 장군 초상

 

3.

대부분 사람들에게 다른 다섯 분은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만 전제장군 이 분은 듣보잡이다. 물론 다른 다섯 분과 동급은 아니어도 그렇다고 영 엉터리 인물인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초계 의병대장이 전치원이었는데 전제의 당숙이었다. 전제는 그 아래에서 조호장(調護將)으로 활동했다. 조호장은 지금으로 치면 대장의 부관쯤 된다.

 

연락과 호위를 맡아 하는 직책이니 초계 의병 부대에서는 중책이고 요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딱 그만큼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경남 대표 선현으로 손꼽을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말이다.

 

4.

전제장군 같은 인물을 꼽는다면 모든 시·군마다 100명도 넘게 명단에 올릴 수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높은 대접을 1983년부터 41년째 받고 있다.

 

게다가 여기 적힌 의병 관련 약력은 모두 가짜뉴스다. 당숙 전치원 의병 대장 아래 활동했으니 의병을 일으켰다는 것만 맞고 나머지는 팩트가 아니다.

 

5.

먼저 임진왜란 발생 당시 창녕 박진 전투는 없었다. 1950년 육이오 전란 때에나 있었다.

 

둘째 의령 정암싸움은 의령 곽재우 의병 부대의 단독 작전이었다. 당시 초계 의병은 자기 지역과 황강 물줄기를 지키는 일만으로도 분주했다.

 

셋째 도산전투에서는 크게 전공을 세우고 전사하지 않았다. “도원수 권율이 영산현감 전제 등 3명을 머리 베어 조리돌렸다”(<선조실록> 159816일자)가 역사적 사실이다.

 

이후 배대유(전제가 곽재우 방어사 아래에서 조전장을 하고 있을 때 장서기(掌書記)를 맡았던 인물)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상소를 올려 신원이 되기는 했다.

 

6.

이런 범상한 인물이 1983향토 출신 선현의 두 번째 자리에 놓인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으로 나왔던 전두환의 14대 조상이라 그런 것이다. 당시 도지사 최종호와 이규효는 전두환이 보낸 관선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해도 지금껏 그 초상이 걸려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합천에 일해공원이 그대로이니 경남도청에도 이런 전두환 흔적 하나쯤은 남겨놓아야 한다는 심산일까? 어쨌든 대단하다.

 

7.

이러고 보면 서울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다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봄을 녹일 불씨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피어나지 못하고 꺼져버린 것은 아닐까?

 

(약력 표현 가운데 명의 도원수 마귀와 함께는 전형적인 기대기다. 띄워야 할 인물이 자기 스토리가 빈약할 때 유명한 사람을 들러리로 세워서 혹세무민하는 정신승리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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