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 좀 아는 이라면
모두 사랑하는 자리
사지포제방 옆 언덕 위의 팽나무.
연세가 이백오십은 넘었으리라 짐작되지만
키는 저렇게 조그맣다.
여기서 바라보는 맞은편 대대(大垈)마을은
토종말로 한터라 했다.
더러는 대대라고도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팔할은 한터였다.

우리 할부지는 그 한터에서 나고 자라
팔십 평생을 농사지으며 사셨다.
‘훤주’라는 내 이름은 당신께서 친히 지으신 것인데도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늘 “훈주야”, “훈주야” 하셨다.
막내손주였던 덕분에 나는
다른 형제들처럼 방구들 미지근한 건넌방이 아니라
소여물을 끓여 아랫목이 따끈따끈한 사랑방에서
할부지 곁에 누워 안온하게 잠들 수 있었다.
당신 등에 업혀 폴짝거리는 개구리를 내려보며
“저게 뭐냐?” 물었던 적도 있고
가물대는 호롱불을 앞에 두고
당신 품에 안겨 잠든 기억도 있다.
여름철에는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서
지금은 몽골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그 장한 은하수 기나긴 흐름을
그때 나는 할부지 무릎을 베고 직관했었다.

할부지는 저 할배나무처럼 키가 작으셨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어느 날 문득 보니
할부지보다 내 키가 더 커져 있었다.
나는 도회지로 나왔고
할부지는 방학 때 아니면 설 추석 명절에나 찾아가 뵈었다.
사랑방 한가운데 정좌하신 할부지를 향하여
우리는 문지방을 넘지 않고 마루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큰절을 올렸다.
할부지도 분명 반갑고 기쁘셨겠지만
웃음이나 손길을 표나게 많이 내어주지는 않으셨다.
나는 저 할배나무를 보면
사십 년 전 한 번 앓지도 않고
점심 지나 이부자리를 깔고 누우셔서는
그날 저녁 답에 세상을 떠나신
우리 할부지 생각이 난다.
그늘이 할부지 품처럼 넉넉하고
햇살이 할부지 웃음처럼 따사롭다.

나는
저 나무 아래에서 한 번씩 강바람을 맞아야 한다.
한가롭게
우포늪을 어루만지며 다가오는 저 바람에는
할부지
팔십 평생의 숨결이 담겨 있음이 틀림없다.
## 2024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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