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신문 자료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눈에 띄었다. 동아일보 1924년 4월 1일 자와 5일 자에 실려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지금 천공 같은 사람이 그때도 있었다는 게 신기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그때도 지금도 세상에는 착한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 좀 더 한심스러운 것 같기는 하다. 100년 전에는 시정잡배 같은 인사들이 휘둘렸지만 지금은 국정을 최고 책임지는 대통령과 아내가 휘둘린다는 얘기가 파다하니까.
옛 글투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요즘 사람들도 알아듣기 쉽도록 옮겨보았다. 또 원문은 그냥 마침표가 하나뿐으로 단락 구분이 없었는데 이 또한 읽기 쉽도록 조금 고쳤다.
동아일보 1924년 4월 1일자
천공대사(天空大師)가 검사국(檢事局)
괴상한 예언으로 금전 사취
뽕나무 잎새만 먹고 산다고
‘병이 들어 고생하고 늙어서 죽는 고해의 중생(苦海衆生)을 구원한다’는 천공대사(天空大師)가 수일 전 동대문경찰서(東大門署) 유치장에 갇히어 여러 가지 취조를 받고 드디어 재작일(그저께) 오전에 일건 서류와 함께 경성지방법원 검사국(檢事局)으로 넘어가서 ‘장차 대원불교원(大圓佛敎院) 교수가 되어가지고 쇠퇴하여 가는 조선의 불교를 부활시키려는 포부’라는 것도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는데
이 천공대사는 본적을 부외 숭인면돈암리(崇仁面敦岩里)에 두고 수년 전부터 시내 원동(苑洞) 일백팔십사번지에 머물러 있는 백세채(白世彩)(33)란 자로 불경(佛經)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절(寺)에 가 있은 일도 없는 주제에 승려(僧侶)란 직업과 전기 천공대사란 이름을 얻어붙이고
밝은 듯하고도 어두운 시내는 물론 전 조선 각처로 돌아다니며 어리석은 양반(兩班)이나 미련한 재산가의 집에 드나들면서 갖은 수단으로 막대한 금전을 편취하는 자인데
속이는 수단도 교묘하여 의관의 차림차림도 이상야릇하게 차리고 ‘나는 광대무량한 비범을 깨닫고 무극대도를 중생에게 전하려는 신령이므로 보통 사람과 같이 밥이나 반찬을 먹지 않고 뽕나무 잎사귀를 그늘에 말리어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차(茶)에 타서 마신다’는 신선 같은 소리를 하며 남 보는 앞에서는 실제로 실행도 하여 어리석은 남녀의 믿음을 얻은 뒤에는
기회를 보아서 ‘너는 장수를 못 하겠다’ ‘너는 열두 해 만에는 죽을 것이다’ ‘너는 횡사를 하겠다’는 등의 괴상한 말로써 위협을 하고 ‘그와 같은 횡액을 피하는 방법은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기도(祈禱)를 하는 것이라’ 하여 기도하는 비용으로 수백 원 내지 수천 원을 훔쳐먹은 일이 적지 않아
수년 이래로 부내 인사동(仁寺洞) 김모(金謀)란 양반에게서도 삼천 원을 빼앗았고 다옥정(茶屋町) 김모(金謀)에게서도 일천 원을 빼앗은 사실이 발각되었으며
최근에는 또 인사동 김모의 조카를 붙잡고 ‘너의 삼촌에게서 받은 돈 삼천 원 중에서 이천구백 원은 도로 주고 백 원만 받았으니 이천구백 원을 받았다는 영수증(領收證)을 써내라’는 예의 악귀 같은 수단으로 위협하여 영수증을 받아가지고 또다시 모모 계획을 꿈꾸다가 그만 동대문경찰서에 잡히어 검사국에까지 넘어가게 된 것이라더라.
동아일보 1924년 4월 5일자
천공대사(天空大師) 등 뒤에 귀족계급(貴族階級)도 관계(關係)
검사국(檢事局)은 예심(豫審)에 경찰(警察)은 재활동(再活動)
민모 윤모까지 관련한 내용
◇탑골승방에까지 조사의 손이 전개◇
시내 원동(苑洞) 일백팔십사번지에 사는 백세채(白世彩)(33)란 자가 천공대사(天空大師)란 이름을 가지고 어리석은 자들을 속여먹던 죄상이 발각되어 동대문경찰서에서 취조를 받고 지난달 삼십일에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넘어갔다 함은 그 당시 보도한 바이거니와
이 괴상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사건은 내용이 자못 복잡하여 더욱 충분한 조사를 하기 위하여 예심(豫審)에까지 부쳐 가지고 엄중히 심리하는 중이며 다시 동대문경찰서에서도 검사국으로 넘긴 뒤에 발견된 사건이 많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심상치 않은 풍설이 많으므로 고등계(高等係)가 중심이 되어 가지고 재차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 사건은 의외에 확대되어 조사의 그물은 동대문 밖 ‘탑골승방’에까지 벌어지고 제일착의 철퇴는 조선의 귀족계급(貴族階級)에 내리어 자작 민모(子爵閔某) 자작 윤모(子爵尹某) 등과 관계된 사실이 차례차례로 나올 모양인데 원래 전기(앞에 적은) 천공대사란 백세채는 기보한(이미 보도한) 바와 같이 괴상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하는 수단이 비상히 교묘하며 따라서 그와 관계된 자의 범위가 넓어서 재산계급 양반계급 부녀계급 다시 귀족계급에까지 미치고 게다가 부근에 있는 절(寺) 중에서도 가장 으슥한 곳에 있는 ‘탑골승방’까지 튀어나옴은 아무리 보아도 심상한 일이 아니며
더욱 검사국에서는 예심에 부치고 경찰서에서는 재차 활동을 시작하리만큼 그만큼 사건이 복잡하고 괴상하여 의외에 확대될 모양이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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