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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안동 만휴정이 아쉬운 까닭

경북 안동에 가서 만휴정(晩休亭)을 보았다. 멋진 산수 가운데 바위 계곡 건너편 도도록한 자리에 들어앉아 있었다. 말은 정자라 하지만 다섯 칸 이상도 많은데 만휴정은 조그마해서 고작 세 칸이었다. 500년 전 즈음에 김계행이라는 인물이 서울서 벼슬살이 하다가 늘그막에 돌아와서 노닌 정자다.

1. 쌍청헌에서 만휴정으로

원래는 그의 장인 남상치가 짓고 당호를 쌍청헌(雙淸軒)이라 했는데 사위가 거처하면서 만휴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뀐 만휴정은 뜻을 바로 알 수 있다. 그 주인의 행적 그대로 늘그막에 쉬는 정자라는 뜻이다.

 

쌍청헌은 왜 그리 이름붙였을까 싶었는데 둘러보니 까닭이 짐작되었다. 먼저 건너가기 전에 아래쪽으로 물줄기 쏟아지는 폭포가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다. 건너가서 몸을 돌려 올려다보면 그보다는 작지만 위쪽에도 폭포라 할 수 있는 물줄기가 있다. 이처럼 맑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쌍()으로 자리한 추녀() 마루라는 뜻인 것 같다.

 

이들 장인과 사위는 여기에 크지도 않은 정자를 하나 들이앉히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 이렇게 단박에 통째로 주변 풍경을 자신들의 소유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게 성공한 그 욕심이 살가워서 좀 부러울 지경이었다.

 

 

2. 콘크리트 다리와 미스터 션샤인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도 큰크리트 재질이지만 그럴듯하다. 거기 서면 아래위 골짜기 풍경이 모두 눈에 담긴다. 만휴정이 대중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도 어쩌면 이 다리 덕분이다.

 

2018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남녀가 다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얼굴은 마주보았는데 손은 맞잡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합시다, 러브(Love)"라는 닭살 돋는 멘트가 여기서 태어났다.

 

그래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덩달아 찾아오는 이들도 지금껏 줄을 잇고 있다. 동네 들머리에서 입장료로 1000원을 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 싶었다.

 

 

3. 정자 마루는 출입금지

정자에는 올라갈 수 없었다. 난간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이런 취지가 적혀 있었다. "만휴정은 선조들의 500년 역사가 어려 있는 '대체 불가능한' 문화재이므로 훼손을 막기 위해 출입을 금합니다."

 

마루에 오르지 못하고 아래에서 풍경을 보려니 아쉬웠다. 정자는 올라가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라고 있는 것이지 정자를 쳐다보라고 정자를 세운 것이 아니다.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정자라고 말하기 어렵다.

 

4. 세병관 영남루 촉석루의 경우

게다가 출입 금지가 유지 보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집은 사람이 머물지 않으면 생각보다 빨리 낡고 쉽게 허물어진다. 흙이나 나무로 지는 건물은 더욱 그렇다. 현명한 이들이 자기 건물이 오래 됐어도 사람들에게 개방하여 드나들도록 하는 까닭이다.

 

우리나라 최대 목조건물이면서 국보로 지정된 통영의 세병관을 본보기로 들 수 있다. 누구나 올라갈 수 있다. 임금 전패를 모시던 자리만 빼고 어디에 엉덩이를 내려놓아도 된다. 마루의 나무들은 사람 손때를 타서 반들반질하다. 우리나라 으뜸 누각 밀양 영남루도 진주 촉석루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면 마찬가지다.

통영 통제영 세병관
밀양 영남루
진주 진주성 촉석루

 

5. 출입 개방하고 들기름 입히면

그래서인지 낡고 삭은 정도는 만휴정이 오히려 더하다. 굵고 깊은 골이 여기저기 파였을 정도로 헐었고 조각 나 떨어질까봐 손도 대지 못할 정도로 삭았다. 사람이 드나들지 못해서 손때를 타지 못한 탓이라 할 수 있다. 계속 저대로 두었다가는 절로 무너질 수도 있다.

 

보전을 위해 인위를 더하려면 들기름이 있다. 옛날 우리집도 대청마루에 한 번씩 들기름을 입혔다. 최근에는 10년 전 즈음 창녕 성씨고가 안채 마루에서 보았다. 내 손은 아직 들기름이 스며들고 마른 그 마루의 뽀송뽀송한 질감을 기억하고 있다.

 

한편으로 문화재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도 바꾸면 좋겠다. 나무는 아무리 보살펴도 결국은 썩고 삭는다. 세월이 흐르면 비바람과 햇살에 절로 그렇게 된다. 만휴정도 이런 이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일부러 함부로 망가뜨리는 일이 없도록 관리는 해야 한다. 보전을 위해 노력하되 드나들도록 개방은 하고, 낡고 헐고 삭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므로 제때제때 새것으로 갈아주는 것이 최선이다.

 

 

##만휴정 정자 마루에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어서 별 소리를 다한다. 거기서 바라보일 멋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면 이렇게 된다.

 

##그러고 보니 같은 안동의 병산서원 만대루도 올라가지 못하도록 바뀐 지가 제법 된 것 같다.

병산서원 만대루(2012년)
만대루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가을풍경(2012년)

 

--2023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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