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는 집에서 멀었다. 대략 1k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 아침에 여럿이 어울려 등교하다 보면 한 시간은 예사로 걸렸다. 걸음이 어른처럼 빠르지 않았는데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노느라 그랬을 것이다.
학교는 컸다. 가로세로 150m 정도는 되었다. 학교 뒤쪽 담장이 보이고 나서도 정문까지는 그만큼 더 걸어가야 했다. 공부하는 교실은 뒤쪽 담장에 가까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간 다음 넓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그만큼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한 시간씩 걷다 보니 지치기도 했겠지만 그렇게 정문까지 돌아가는 것이 억울했다. 뒤쪽 담장은 탱자나무 울타리였는데 개구멍이 몇 군데 나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등교할 때 그 개구멍으로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선생님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개구멍으로 들어가다가 선생님한테 걸려 꿇어앉아 있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탱자나무 개구멍으로 학교를 드나들게 된 것은 3학년 때부터였지 싶다. 그렇다고 해서 아침 등굣길에까지 드나들었던 것은 아니다.
2.
나는 키가 크고 빼빼 말른 편이었다. 어떤 선생님이 몸이 날렵하겠다고 여겨 탁구부를 시켰다. 그리고 공부도 조금은 하는 편이어서 고전 읽기도 시켰다. 이런 과외 활동을 하면 일단 집으로 갔다가 다시 학교로 오도록 하거나 수업 시간에 빼내서 그런 활동을 하도록 했다.
탁구부는 거의 수업을 들어가지 않았다. 등교도 아침 9시가 아니었다. 어떤 때는 새벽 5시였고 보통은 아침 7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도 달랐다. 대부분 밤 9시까지 공을 쳤다. 파김치가 되도록 운동하다 보니 집에 와서는 옷을 벗다가 잠들기도 했다.
고전 읽기는 수업을 빼주면서 어디든지 가서 읽으라고 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학교 뒷산 골짜기 너럭바위에 앉거나 누워서 읽었다. ‘공룡 이야기’, ‘신약성서 이야기’, ‘예수 이야기’, ‘공룡 이야기’, ‘해동명장전’, ‘해동고승전’ 이런 것들이었다. 선생님이 지켜보지 않는데도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노릇이다.
그때 우리는 탱자나무 울타리 개구멍을 애용했다. 탁구부는 등교할 때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너무 아침 일찍이어서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6교시를 지나 학교가 파한 후에 남아 연습할 때도 아무도 없었으므로 필요에 따라 수시로 개구멍으로 드나들어도 되었다.
고전 읽기는 다른 아이들은 수업에 붙잡혀 있는데 나만 풀려나는 것 같아 짜릿한 느낌이 있었다. 이 짜릿함을 더해주는 것이 바로 개구멍 출입이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할 때 사람들은 좀더 쾌감을 느낀다.
3.
나는 탱자나무가 좋았다. 우리는 탱자나무 가시로 칼싸움을 했다. 봄철 물이 올랐을 때 탱자나무 가시를 떼어서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면 껍질과 목질이 분리된다. 우리는 그것을 칼과 칼집으로 여기면서 앉은 자리에서 가지고 놀았다. 얼마나 귀여운 칼이고 칼집인가.
국민학교 3학년 때 할아버지 따라 창녕읍내 5일장에서 처음 해삼을 먹을 때 그것을 찍었던 도구이기도 했다. 거뭇거뭇한 해삼 조각은 그 탱자나무 가시에 떨어질 듯 매달려서 내 입으로 들어오더니 오톨도톨 생전 처음 겪어보는 식감을 내게 안겨주었었지.
탱자나무 별 모양 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5월이면 활짝 피어났는데 짙푸른 줄기와 가지를 뚫고 연초록 나뭇잎이 부드럽게 솟을 때 하얀 꽃잎도 같이 피어났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바람에 하늘거렸다.
학교 울타리 탱자나무 그늘은 울적할 때 숨는 장소이기도 했다. 울적할 일은 참으로 많았다. 주로 선생님한테 얻어터졌을 때였다. 거기 들어앉아 있으면 운동장에서 떠드는 소리는 저 멀리 아득하고 나는 온전하게 혼자서 외톨이가 될 수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매 맞아 아픈 다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훔치는 국민학교 3학년 어린 꼬마, 귀엽지 않은가.
4.
이런 기억이 나는 있는데 자라서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탱자나무 울타리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해마다 10월이면 질릴 듯이 노란색으로 동그랗게 맺은 열매를 땅에 떨구던 탱자나무들이 공공기관에서도 민가에서도 죄다 잘려나가고 없었다.
허망했다. 그래서 나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10m라도 남아 있는 데가 있으면 소중하게 생각하고 받들어 모셨다. 그렇지만 그렇게 남아 있는 데가 별로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없앴는지 모르겠고 왜 복원을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콘크리트나 철재로 담장을 하면 보기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름에 기온을 높이는 나쁜 역할까지 한다. 나무로 울타리를 하면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탱자나무에 눈길을 주고 관심을 갖는 사람을 나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다.
5.
그러다가 2023년 11월에 보았다. 경남 함안중앙초등학교에서였다. 함안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함안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강의를 하러 갔다가 보았다. 학교 건물 뒤편 북쪽 울타리여서 때깔은 나지 않지만 대충 보아도 80m 정도 탱자나무 울타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경상남도교육청이 학교 울타리를 탱자나무로 하는 사업을 진행하면 좋겠다. 전국의 모든 교육청이 그렇게 하도록 선도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 탱자나무 울타리 그 푸근한 모습을 세상 많은 사람들이 보고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다.
함안중앙초등학교는 정말 대단하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앞으로도 길이길이 보전하시기를.
다른 데서도 탱자나무 울타리가 남아 있다면 제발 없애지 말고 남은 것만이라도 길이길이 보전하시기를.(새해 들어 경남 함안군 칠서면 신기리 일대에 무엇을 찾으러 갔었는데 거기 민가에서도 보기 드물게 30m 남짓 길게 남은 것을 비롯해 여러 탱자나무 울타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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