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지 않은 앵강만의 덤벙
경남에서도 내륙으로 들어가면 둠벙이라 하는데 남해에서는 고성과 마찬가지로 덤벙이라 했다. 개울이 여울지면서 파여 생긴 물웅덩이도 덤벙이지만 논 안에 적당한 장소를 골라 파서 만든 물웅덩이가 진짜 덤벙이다. 원형 또는 타원형이 대부분으로 논농사를 지을 때 물을 가두고 모으는 역할을 했다.
축대를 주변에 있는 돌을 모아 쌓아올린 것은 다른 지역 덤벙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크기는 다른 지역보다 대체로 작은 편이었다. 너비가 한 길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많았고 더 커도 대부분 두어 길 안팎에 그쳤다.
다랭이마을은 주로 산비탈을 타고 흐르는 개울물을 논에 댔기 때문에 덤벙 덕을 크게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 조사해 봐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홍현·대량·소량·두모마을은 다랭이마을과 사정이 좀 달랐던 것 같다.
2. 죄다 메워졌다는 다랭이마을도
남해 앵강만 마을에서도 세월이 흐르고 쓸모가 줄면서 덤벙이 많이 메워졌다. 다랭이마을에서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먼저 다랭이마을에서 남아 있는 덤벙이 하나 확인됐다.
남면로 679번길 31-16 다랭이마을돔하우스 뒤편 남면 홍현리 825-3 농지 한쪽 구석에 있었다. ‘천연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었는데 옛날부터 식수·생활용수로도 쓰고 논물로도 썼다고 한다.
그 덤벙은 위쪽과 전후좌우를 콘크리트로 덮여 있고 앞쪽 가운데는 트여 있었다. 가로 세로 1m 남짓으로 작았고 깊이도 대략 그쯤 되어 보였다. 주변에 이런저런 물건이 널려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덤벙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홍현·두모·대량·소량 등 네 마을에서도 덤벙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15곳 정도 확인했는데 다랭이마을에서 본 것보다는 다들 규모가 컸다. 그렇다 해도 모두 가로 세로 3~4m를 넘는 크기는 아니었으니 다른 지역에 견주면 작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홍현마을과 다랭이마을에서는 넓적한 판돌을 이어붙여 만든 봇도랑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콘크리트로 대체된 것도 적지 않았지만 다른 시골 마을에 견주면 흙과 돌 같은 자연 자재를 활용한 정도가 훨씬 높았다.
3. 덤벙을 겸하도록 만든 지하 터널
다랭이마을의 남면 홍현리 995-2, 994-1, 991-1 일대 다랑논에서는 그보다 더한 노동력 들여 만든 인공 구조물이 확인됐다. 아래쪽 다랑이논이 위쪽 다랑논 축대와 만나는 지점에 벽돌 정도 크기의 돌로 지상 0.5~1m 높이까지 쌓은 것이 세 개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너비 70~80cm 길이 1~1.5m이고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길쭉하다. 안쪽을 들여다보면 아래쪽 위쪽 모두 상하좌우를 돌로 쌓고 괴어 가운데가 뚫려 있었다. 그런 것이 서너 계단에 걸쳐진 다랑논 지하로 끊이지 않고 이어져 수로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도 덤벙이 맞다고 했다. 물이 필요하면 아래쪽 수로를 돌로 막아서 물이 고이도록 한 다음 퍼 썼다는 것이다. 아래쪽 수로를 막았던 돌을 빼내면 물이 그대로 내려가 아래쪽 다랑논에서 한 번 더 쓰이는 식이었다.
4. 손으로 푸고 도구로 푸고
덤벙에 얽힌 어린 시절의 기억들도 있었다. 여름철에는 다른 지역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거기 들어가 멱을 감았다. 물고기를 잡은 기억도 있다. 미꾸라지와 붕어도 있었고 민물장어도 있었다. 개구리와 올챙이도 같이 놀았고 도롱뇽을 본 적도 있다.
50~60년 전에는 남해도 겨울에 얼음이 얼었다. 얼음은 30cm 안팎으로 두껍게 얼어붙어 깨지거나 빠질 염려는 없었다. 덤벙이 크지 않았지만 거기 들어가 앉은뱅이 스케이트 등을 타고 몇 바퀴고 뺑뺑이 돌면서 신나게 놀았다는 얘기였다.
여름철 가물 때는 아이들도 나서서 덤벙에서 논으로 물을 퍼냈다. 너비와 깊이가 1m 안팎인 작고 얕은 덤벙에서는 용량이 한두 되 정도 되는 바가지를 가지고 퍼냈다. 하지만 너비가 2~3m 이상 되는 도구를 써서 물을 펐다.
2~3m가량 되는 기다란 나무작대기를 썼다. 가는 쪽에는 물을 풀 수 있도록 바가지를 매달았고 굵은 쪽은 손으로 움켜잡는 자루로 썼다. 자루 끝에서 한 뼘 정도 자리에는 손가락 마디 서너 개 정도 길이의 나뭇조각이 꼭지로 쓸 수 있도록 박혀 있었다.
덤벙 앞에다가는 나무로 삼발이를 만들어 세우고 바가지가 달린 나무작대기를 거기에 걸쳤다. 지렛대의 원리에 따라 힘을 적게 들이고도 물을 풀 수 있었다. 먼저 두 발을 나란히 하고 덤벙을 향해 서서 자루를 쳐들면 덤벙 안으로 들어간 바가지에 물이 담겼다.
이어서 자루를 눌러 바가지가 올라왔을 때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허리를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틀고 꼭지를 잡은 손도 같은 방향으로 돌리면 논에 물이 쏟아졌다. 바다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젓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여기 바가지는 손으로 풀 때 쓰는 것보다 두 배는 커서 서너 되 정도 되었다.
5. 앵강만에 60곳 남해 전체엔 500곳 이상
이밖에 홍현·대량·소량·두모마을에서도 덤벙을 여러 곳에서 보았고 여태 많이 메워졌지만 남은 것도 적지 않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지도를 확인했더니 그보다 더 많은 마을에서 덤벙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보거나 주민에게 들은 것과 지도에서 확인한 것을 합하면 다랭이마을 4개, 홍현 3개, 숙호 1개, 용소 9개, 화계 1개, 신전 3개, 원천 2개, 벽련 1개, 두모 7개, 소량 7개, 대량 20개다. 월포·두곡 두 마을을 뺀 열한 마을에서 58개의 덤벙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앵강만을 넘어 남해 전체로 넓히면 훨씬 많아진다. 지도에서 대략 살펴보았을 때 대량마을 동쪽에 있는 상주은모래해수욕장 일대에서만 해도 덤벙이 87개 확인되었다. 이런 밀집도라면 국가중요농업유산·세계관개시설물유산으로 지정된 ‘경남 고성 해안지역 둠벙 관개시스템’의 450~500개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따라서 앵강만과 남해군 전체에 걸쳐 덤벙을 조사하고 활용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덤벙은 생태관광을 위한 자원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매개도 될 수 있다. 고성처럼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면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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