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울어진 운동장
한때 노회찬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급진 좌파라고 오해한 적이 있다. 지금도 국민의 힘 같은 수구 극우들은 노회찬이 몸담았던 정의당을 두고 극좌라는 극언을 일삼는다. 하지만 세계 보편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에 있는 중도좌파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급진좌파로 간주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형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를 두고 국민의힘 부류와 조선일보는 하나같이 좌편향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엉터리 주장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 진보 진영에서 그를 두고 진보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착시 현상일 따름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는 헌법과 법률을 지키려고 하는 보수주의자라는 규정이 더 알맞다. 이는 그가 내린 판결을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일이다.
2. 헌법과 법률을 지킬 뿐
먼저 그는 인권을 비롯해 제아무리 숭고한 가치도 대한민국 헌법이 인정하지 않으면 불법으로 판단했다. 2005년 10월 공무원 노동3권 쟁취를 위한 쟁의 찬반투표와 불법 집회를 주도한 전국공무원노조 김영길 위원장에 대해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때 유죄 판결을 내리며 그가 덧붙인 이 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독재 헌법이면 따르지 않아도 되겠지만 지금 헌법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만들어진 민주 헌법이다. 이 헌법이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하면서 노동3권 가운데 단결권은 보장하고 단체행동권은 행사할 수 없게 하고 단체교섭권은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따라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공무원 노동3권을 대정부 투쟁을 통해 달성하기는 어렵다.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 공무원노조가 국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앞장서 노력하고 그 결과 공무원 노동3권이 국민에게도 보탬이 된다고 국민 스스로가 생각해서 헌법상 권리로 주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3. 4대강 소송도 마찬가지
내가 그 전말을 모두 지켜본 사건은 아니지만 2009년 1819명의 국민소송단이 정부를 상대로 해서 하천공사 시행계획 취소를 청구한 이른바 낙동강 소송에서 그가 재판장으로 있던 부산지방법원 제2행정부가 2010년 12월 내린 원고 패소 판결도 보기로 꼽을 수 있다.
당시 그는 1년 넘게 재판을 진행하면서 국민소송단과 정부의 주장을 귀담아들으며 세심하게 검토했다. 법정을 벗어나 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낙동강을 몸소 찾아가 현장검증도 했다. 또 공사 관계자와 피해대책위 등 시민단체를 비롯해 현지에 사는 지역민들의 의견도 파악한 끝에 결국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요지는 이랬다.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라는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사업 수단의 유용성도 인정되는 반면 △정부가 대운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는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계획을 입안·결정할 때 비교적 광범위한 재량권을 갖고 있는데 △정부의 재량권 행사에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음을 국민소송단이 입증하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적법 여부는 판단하면서 사업 내용이 합당한지 여부는 따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사업 시행에 따른 문제점이 인정되고 △적절성에도 문제가 있다 해도 △사업의 범위와 시행의 계속 여부는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대안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지 △사법부가 심사·판단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이 판결문을 곰곰이 살펴보면 낙동강 사업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눈길은 상당히 비판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로 끌어와 떠넘기도록 정치의 사법화를 부추기는 정부와 여당에 일침을 놓았다. 그럼에도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없거나 있더라도 경미하기 때문에 정부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보수적 판결을 내렸다.
4. 그래도 진보라 여겨지는 까닭
어쩌면 지금도 대한민국의 어느 법정에서는 법관의 이런 소리가 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성실히 공직 생활을 수행해 왔는데다 동료들의 탄원이 제출되어 있어서…….’ 이런 타령으로 재판이 시작된다면 보나마나 그 결론은 집행유예 아니면 벌금형이다. 아무리 때려도 아프지 않은 솜방망이 처벌이다.
헌법과 법률을 지키면 이런 판결은 나올 수 없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헌법)인 공무원이 3000만 원 이상 뇌물을 받으면 5년 이상 징역, 1억 원 이상이면 10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법원은 갖가지 감경 사유를 붙여 풀어주는 불법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법원에서조차 헌법과 법률이 무너져 있는 현실 때문에 문형배처럼 헌법과 법률을 보수하려는 법관을 마치 진보인 것처럼 착시하게 된다. 사회 고위층의 부패·선거 부정에 대한 법원의 관대하고 온정적인 처벌은 보수적인 것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을 파괴하는 극우 망동이다. 진정한 의미의 보수는 문형배한테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형배와 그의 헌법재판소가 세운 믿음 위에서 (0) | 2025.04.19 |
---|---|
김건희는 왜 아직도 ‘여사’인가 (1) | 2025.04.19 |
문형배 이야기 ⑤지역법관 (0) | 2025.04.19 |
‘윤석열 자택’이라고 하는 매체가 늘어났다 (1) | 2025.04.19 |
문형배 이야기 ④공엄사관(公嚴私寬) (0) | 202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