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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동 앞바다, 딱새, 가리비, 낭태

 

1.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 집안이 너무 더워서, 어디라도 가볼까 하는데 갑자기 툭 떠올랐다. 그래, 오늘이 진동 장날이었지. 4·9일인데 5~6년 전만 해도 자주 갔더랬다. 한 번씩 가서 잡어를 사왔는데 1만 원어치씩 팔 때가 많았다. 한 번 사면 열흘 정도 구워 먹고 쪄서 먹고 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는 같은 무더기를 5000원에 떨이를 하기도 했었다. 해가 늬엿늬엿 넘어가는 저물 무렵에 그랬다. 왜 그렇게 싸게 파느냐고 멍청하게 물은 적이 있다. 잡어를 다 팔지 못하면 아줌마들은 내장을 끄집어내고 머리·지느러미 등을 떼어내 말린다. 도리없이 이런 노동을 더해도 말린 고기는 생물보다 값이 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진해 경화시장( 3·8일 )에서 잡어를 보고 사다 먹기 시작했다. 말린 고기로 나왔는데 어차피 집에 냉장고에 넣어 두고 조금씩 먹기 때문에 생물이나 마른 생선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3만 원어치 사면 한 달 정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코로나19도 끼어 있었구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은 집안으로 오므라들었고 시장은 오랜 기간 폐쇄까지 되는 등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곳저곳 5일장을 찾아 기웃거리는 버릇까지 씻은 듯이 잊어버리고 말았었구나.

딱새
가리비
낭태

 

2.

마산 바닷가 명주·욱곡 갯벌에서 조금 노닐다가 돌아오는 길에 진동장에 들렀다. 요즘 시골 장은 오전 11시만 지나도 파장 분위기가 나는 데가 많다. 오후 3시 넘으면 어지간히 큰 장터라도 한산하기가 십상이다. 더위 탓도 있겠지만 오늘 진동장이 그랬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살 만한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털래털래 돌아 나오는 발치에 몇몇 어물 대야가 보였다. 허리가 심하게 굽은 할머니가 파는 생물이었다. “이거 다 만 원. 낮에는 하나 만 원씩 팔았는데 두 개 엎어서 만 원.” 횡재하는 기분으로 딱새를 샀다.

 

할머니는 가리비도 두 접시 나누어 놓았던 것을 하나로 엎더니 마찬가지 만 원에 사라고 했다. 냉큼 그러마고 했더니 할머니는 다시 낭태까지 내놓았다. 두 마리씩 두 접시를 네 마리 하나로 합치더니 역시 만 원에 가져가라 했다.

 

진해만의 중심 바로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건이라 낭태 빼고 딱새와 가리비는 그때까지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었다. 다행히 평일이라서 그렇지, 눈 밝은 아줌마들이 장 보러 나왔다면 내게까지 차례가 돌아왔을까 싶었다. 나는 마다할 까닭이 없는 것이었다.

 

3.

고맙다고, 남은 것도 마저 다 파시라고 진심을 담아 머리를 숙이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리비와 딱새를 따로 나누어 잘 씻은 다음 찜통에 함께 넣고 쪄서 먹었다. 끝까지 꼼지락거리는 딱새와 가리비에게 살짝 미안했다. 하지만 금세 잊어버리고는 술도 한 잔 걸쳤다. 두 가지 다 조금씩 남았는데 다른 날 점심 반찬으로 써야겠다.

 

낭태는 찌지 않았다. 먼저 비늘을 긁어내고 내장을 꺼내고 지느러미를 자르는 등 장만을 해서는 한 마리씩 봉지에 담아 냉동칸에 넣었다. 그대로 쪄서 먹어도 좋지만 나는 말려서 쪄 먹고 싶다. 낭태 탱탱한 속살은 맑은 여름날 쨍쨍한 햇살에 한나절만 말려도 제법 쫀득해질 것이다.

 

--2023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