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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점빵이 하나 사라졌다-진주시 대곡면 중촌리 점빵의 기억

 

 

 

낡고 허름한 단층

콘크리트 건물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지은 주차장이

산뜻하고 깔끔하게 들어서 있었다.

지난 여름만 해도 그대로 있었는데

 

옆에서 정자나무 구실을 하던

커다란 느티나무가

이태 전 여름 태풍에 꺾일 때도

멀쩡했던 동네 점빵이

그 몇 달 새 없어지고 말았다.

 

나의 박물관이 하나 사라졌다.

나의 도서관도 함께 사라졌다.

 

이태에서 다시 이태 전 여름

점빵 안방을 지키던 여주인은

그해 연세가 여든하나였다.

 

2020년 7월 27일 찍은, 지금은 사라진 나의 박물관(정면)

 

쉰아홉일 때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도시 생활을 접고 여기 들어왔는데

한 해 전에 남편을 앞세웠다고 하셨다.

 

문을 닫아도 아쉬울 건 없지만

그래도 열어두는 것은

담배와 소주를 찾는 영감님들이

동네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주인마님이 물 끓여 부어주신

컵라면을 후루룩거리며 더불어

내어주신 깍두기와

오이지김치를 오물거리며

나는 그 말씀을 들었다.

 

2020년 7월 27일 점빵에서 먹었던 컵라면. 그리고 주인마님 인정이 담긴 깍두기와 오이지김치

 

김치도 돈을 받으시라는 내게

시골 인심에 무슨…… 하며

컵라면 값만 받는 주인마님의 손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60대처럼 고왔다.

 

여전히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웃지도 않고 이렇게 얘기했다.

일곱 칠 자가 들어 있을 때는 그래도 이러지 않았다,

여덟 팔 자가 들고부터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저녁마다 이제 갈 준비를 해야지 생각이 든다…….

 

처음 만났던 것은 그로부터 다시 9년 전 2월이었다.

한실에서 면소재지까지 걷는 길을

10시 즈음에 나섰는데 1시 가까이 되자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못 먹은 때문인지

몸이 떨리고 무릎이 꺾였다.

그때 어렴풋하게 이 점빵이 눈에 들어왔다.

 

컵라면 하나로 배를 채우고

소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로 몸을 데웠는데

이때도 주인마님은 번거로움을 마다치 않고

김치 한 보시를 가득 담아주셨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자태가 고왔는데

중학교 3학년 올라가는 손자가 있다고 하셨다.

13년 전이니 이제 그 친구도 서른이 되었다.

 

박물관 하나가 허물어지고

도서관 하나가 자취를 감추었다.

공간을 돌보며 시간을 지키던

학예사 마님, 사서 선생님도

함께 사라졌다.

 

어둑신한 점빵 내부 1
어둑신한 점빵 내부 2

물론 어디서는

새로운 박물관이 들어설 테고

어떤 도서관은 쏟아지는 신간들로

면모를 일신하겠지만

 

 

 

사라진다는 것은 언제나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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