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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김장하 보유도시 진주 제대로 둘러보기

 

남성당한약방~진주성~대숲~형평운동기념탑~백촌 강상호 묘역, 그리고……

 

MBC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와 도서출판 피플파워의 책 <줬으면 그만이지-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가 관심을 끌면서 진주·사천을 찾아 선생의 흔적을 더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진주가 시나브로 김장하 보유 도시가 되고 만 것이다. 

진주시는 이에 선생의 평생 일터이자 나눔과 베풂의 발상지인 남성당한약방 건물 보존을 결정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선생의 뜻을 따라 개인을 위한 기념관이 아니라 후원문화 정착과 확산을 위한 교육관으로 올해 말 문을 열기로 했다.

 

◇남성당한약방 = 남성당한약방은 진주시 남강로 677-1 3층 건물이다. 진주성 북문까지 500m 정도 거리가 된다. 김장하 선생이 남긴 자취를 새기는 동시에 진주 본연의 매력도 누리는 ‘김장하 투어’의 출발점으로 안성맞춤이다.

지난해 5월 폐업을 해서 문은 잠겨 있다. 낡은 페인트 글씨가 육중한 철제 셔터에 남아 있을 뿐이다. 안에 들어가 보려면 연말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햇살 내리쬐는 가운데 간판과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 하나 남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진주성 촉석루.

◇진주성 = 다음은 남강을 거슬러 진주성 북문 공북문에 이른다. 진주성은 오랜 세월 쌓여온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남아 있는 자리다. 눈에 담을 거리도 많아서 꼼꼼히 살펴보려면 하루로도 모자란다. 이 가운데 빠뜨리면 후회할 데로는 국립진주박물관과 촉석루 일대가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하나뿐인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이다. 전란 전후 사정에서 구체적인 경과와 7년에 걸친 전쟁이 남긴 끔찍한 상처까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당시 진주와 경상도 일대에서 있었던 여러 움직임과 전투 상황들은 좀 더 실감 나게 정리해 놓고 있다.

촉석루 일대는 바라보는 남강 경관이 더없이 빼어나다. 봄을 맞은 햇살이 따사로운 자리에 수천 년 역사를 머금고 강물이 흐른다. 더불어 멀리 또 가까이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민가와 산야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가슴에 스며든다.

바로 옆 의기사로 간다. 1593년 진주성 2차 전투의 처참한 패배 직후 저들의 전승연에서 왜장을 붙안고 몸을 던져 원수를 갚은 의로운 기생 논개를 기리는 사당이다. 기생이라는 말은 맞지 않을 수 있다. 논란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옛날 신분 사회에서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의기사 안에는 의젓하고 단정한 논개 영정이 놓여 있다. 바깥쪽 처마에는 여러 시문이 걸려 있다. 일제강점 전후 을사오적 이지용의 수청을 거절한 용감한 진주 기생 산홍, 을사늑약을 맞아 자결로 저항한 매천 황현,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 등이 논개를 기린 흔적이다. 강변으로 나가면 바위가 수직에 가깝게 뾰족 솟아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의암이 있다. 한 길가량 떨어진 물속에 있는데 논개가 왜장을 붙잡고 투신한 자리다.

 

◇대숲과 형평운동기념탑 = 동문 촉석문으로 나와 오른쪽 다리를 건너면 대숲이 반겨준다. 촉석루에서 보이던 바로 그 대나무다. 들어서면 바람 소리까지 푸른색을 띤다. 높다랗게 곧게 뻗은 대나무가 무리 지어 흔들리면 그림자도 일렁이고 하늘도 출렁거린다. 청신한 기운이 가득한 대숲을 거닐면 머릿속도 맑아진다. 들르지 않고 건너뛰어도 된다. 형평운동기념탑에 가면 거기에도 비슷한 규모로 펼쳐지는 대숲이 있기 때문이다.

형평운동기념탑은 남강을 따라 1km 정도 아래 둔치(칠암동 201-5)에 솟아 있다. 주인공 두 남녀는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달려갈 태세다. 열어젖힌 돌문을 뒤로한 채 가없이 상승하는 아치 모양 조형물을 마주하고 있다. 100년 전 백촌 강상호 선생이 주동이 되어 창립한 백정 신분 해방 운동 단체 형평사의 평등과 자유를 향한 기백이 담겨 있다.

김장하 선생은 진주 정신 가운데 형평을 가장 사랑했다. 지금 백정은 없어도 평등은 여전히 멀고도 멀다.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어린이, 여성 등이 사람대접 못 받는 것이 애달픈 것이다. 선생은 평등을 위하는 뜻으로 형평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그래서 기념탑을 만드는 데도 크게 이바지했다.

다시 3km 정도 하류 남강이 가좌천과 만나는 어귀에는 석류공원(진주대로 685)이 있다. 남해고속도로 진주 나들목을 지나 진주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정상 팔각정에서는 굽이치는 남강과 오밀조밀한 시내 전경, 산과 들판이 펼쳐지는 원경까지 고루 맛볼 수 있다.

 

◇강상호 묘역 = ‘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묘역’은 그 아래 산책로와 도로가 만나는 산기슭(가좌동 산 93-7)에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비석은 어머니 이 씨의 것이다. 가진 바를 이웃과 두루 나눈 은공을 기리는 송덕비다. 편평한 비탈에는 강상호 선생과 부인의 쌍분이 누워 있다. 형평운동에 자신이 가진 바를 쏟아부은 백촌은 말년이 가난했다.

선생 가시고 40년 남짓 흐르도록 아무 흔적도 없던 묘소에 나지막한 비석이 하나 세워졌다. 앞면에는 백촌강상호지묘(栢村姜相鎬之墓)라고 쓰였고 뒷면에는 “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 작은 시민이.”라고 적혀 있다. 김장하 선생이 남몰래 1999년에 세운 것이다.

강상호 선생 묘역은 남성당한약방에서 시작한 김장하 투어가 끝나는 자리로 안성맞춤이다. 넉넉잡아 6km가량 강변을 따라 큰 힘 들이지 않고 거닐기 알맞은 길이기 때문이다. 평등을 향한 지향, 자신을 낮추다 못해 감추기, 드러내지 않고 하는 베풂이 여기 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상호 선생 부부 묘역.

◇정동초교와 경상국립대 = 물론 더 계속해도 된다. 사천에서는 정동초교를 꼽을 수 있고 진주에서는 경상국립대학교를 찾으면 된다. 정동초교에는 선생이 후배들을 위해 세운 세종대왕·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으며 경상국립대에는 선생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전당 헌액과 남명학관 건립기문이 있다.

 

정동초등학교의 이순신 장군 동상.

이 밖에도 사천 석거리 남성당한약방 최초 영업 자리(용현면 석거리길 24)와 최초 살림집(용현면 석거리길 25-8), 진주의 명신고교와 그 역사관 등을 더할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대신 이 고장의 역사·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찾으면 되겠다. 진주는 일호광장 진주역 일대 차량정비고와 전차대(轉車臺), 문산성당 한옥본당과 양옥본당 같은 근대문화유산이 괜찮다. 사천은 사천바다케이블카와 각산봉수대, 대방진굴항과 대곡마을숲이 그럴듯하다. 대곡숲은 정동초교 근처이기도 하다.

 

진주역차량정비고.
진주 문산성당
사천 대방진굴항.
사천 대곡마을숲.

어디서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다. <어른 김장하>에서 장학생 부부와 진주냉면을 먹으며 최동원 이야기를 했던 하연옥 촉석루점(진주시 남강로673번길 7), 진주가을문예 마지막 시상식을 치르고 뒤풀이를 했던 마천흑돼지(진주시 진주대로1032번길 5-2), 선생이 세운 명신고를 나온 것만으로 감화를 받아 나눔을 실천하는 박영석 셰프의 비란치아(사천시 용현면 신송길 45-15) 정도가 있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 2023년 3월 7일자에 실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