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녕

엄마의 키질, 나의 키질

나는 저 키와 체를 경남 창녕 어느 시골마을 허름한 민가에서 보았다. 둘이 생김새는 다르지만 알곡에 섞여 있는 쭉정이나 찌꺼기를 걸러내는 데 쓰인다는 것은 똑같다.

 

키는 알곡들이 무겁고 가벼운 차이에 따라 내려오는 속도가 다른 원리를 활용해 걸러낸다. 체는 작은 구멍을 기준으로 크고 작은 것을 가려서 걸러낸다.

 

1. 어렵지 않은 키질

키질은 얼핏 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곧게 뻗은 팔을 얼굴 높이까지 올리면, 키에 담겨 있던 것들이 길게 줄줄이 따라 올라간다. 그랬다가는 다시 순서대로 떨어지면서 타다닥 튀는 소리를 낸다.

 

검불이나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나 가벼운 쭉정이는 하늘하늘 내려오다가 흩어진다. 아니면 스쳐지나는 바람에 쓸려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마른 흙냄새가 풍겨온다.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세진길 43-7 대문간에 걸려 있던 체와 키

2. 엄마의 키질

어릴 적 보았던 엄마의 키질은 예술이었다. 그때는 한복 차림이 일상이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는 다소곳하게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채 콩이나 팥을 키질하는 모습이 그랬다.

 

엄마의 키질은 오랫동안의 고된 살림살이로 숙련된 것이었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보노라면, 저 푸른 하늘을 향한 키질은 리드미컬하고 다이내믹하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런 키질로 쓸모없는 것들이 가려내져서 정화된다는 것도 어린 나에게는 참 신기했다. 그런 때문인지 입술을 다물고 같은 몸짓을 한결같이 되풀이하는 모습에서는 경건함까지 느껴졌다.

 

3. 재미있었던 키질

나도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처음 몇 번만 엇박자를 내었고 곧바로 서툴지 않게 알곡과 박자를 맞추며 까부를 수 있게 되었다. 몇 번만 까부르면 말끔하게 골라진 콩알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뒤로 어지간한 키질은 다 내 몫이 되었다. 지켜볼 필요도 없었던 체질은 진작부터 내 몫이었다. 나는 키질이나 체질로 이것저것 골라내고 모으는 것이 재미있었다.

 

4. 키와 체의 온기

기억에는 온기가 묻어 있다. 키질하는 마당에서는 햇살이 따사로웠고 체질하는 방안은 아랫목 이불 아래에 넣은 발목이 따뜻했다. 엄마의 웃음은 내게 포근하게 다가왔고 나의 재잘거림은 엄마에게 해맑게 여겨졌을 것이다.

 

무슨 음식점이나 영업장에서 저런 키와 체를 볼 때도 있다. 말끔하게 새것인 경우가 많다. 그런 데서는 나는 온기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아무 기억도 묻어나오지 않는다. 자기 자리가 아닌데 억지로 끌려나온 생뚬맞음이 느껴질 따름이다.

 

온기는 저렇게 시골마을 허술한 집 대문간에 걸려 있는 키와 체에 제대로 담겨 있다. 그것들은 어제도 쓰였고 오늘도 쓰이며 내일도 쓰일 것이다. 거기서 털려나온 콩들은 나와 식구들의 입에 들어가는 된장이 되고 두부가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키와 체는 점점더 낡아가기 마련이다. 결국에는 저기 저 키와 체처럼 엉덩이가 너덜너덜 해어져서 명주실로 짜고 깁고 헝겊으로 메울 것이다. 나는 삶 속에 살아 있는 저게 더 정겹고 좋다.

너덜너덜 해어져서 엉덩이를 짜고 기운 키와 체

5. 나의 키질

키와 체를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날 때도 있다. 시인 신동엽의 저 절창처럼, 그 모오든 껍데기를 싸그리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향해 열심히 키질 체질을 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곡은 알맹이와 껍데기를 따로 떼어낼 수 있어도 사람과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완전히 옳거나 완전히 그른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의 키질은 자식들에게 먹을거리를 안겨주었지만 나의 키질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나중에야 실체가 보였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알맹이는 조금이고 대부분은 껍데기·쭉정이인 존재가 바로 나였다.

 

지난날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며 지금도 날려 버려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 욕심과 집착, 시기와 질투, 독단·독선과 고집, 출세욕과 명예욕, 조급함과 편협함, 무시와 멸시…….

 

이제부터 저 키와 체는 나를 위하여 먼저 써야겠다. 오랜 벗들아, 조금만 더 고생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