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냥

감옥에 갇힌 김경수의 진실

10년쯤 됐는지 모르겠다.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와 피해자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가까운 이웃이었다. 피해자는 용의자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경찰은 용의자가 빚 독촉을 하다가 살인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용의자의 창고에서는 피 묻은 옷이 나왔다. 함께 발견된 범행에 쓰였음 직한 도구에는 용의자의 지문도 묻어 있었다.

 

결정적 증거를 확보했다면서 경찰은 용의자를 구속했지만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했다. 같이 들일을 하던 피해자가 다쳐서 피를 흘리기에 헌옷으로 닦아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동기가 뚜렷하고 증거도 갖추어졌다며 아랑곳없이 기소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경찰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범행 도구에 용의자의 지문이 있다 해도 그것이 용의자가 살해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대법원이 살아 있구나 생각했다. 신선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여론은 유죄가 압도적이었는데도 괘념치 않고 형사 재판의 원칙에 충실하게 판결했기 때문이었다.

 

형사 재판의 원칙은 '결정적 증거가 없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이다. 법률과 판례에도 반영돼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범죄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적혀 있다. 대법원 판례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하는 증거가 없다면 유죄 의심이 간다 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형사 재판의 원칙이 이렇게 까다로운 데에는 까닭이 있다. 민사 재판은 패소해도 다소간에 돈을 잃으면 그만이지만 형사 재판은 패소하면 짧든 길든 인신이 구속되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21일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에 대한 입장 표명 모습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재판은 그렇지 않았다. 댓글 조작 공모 여부를 다투었는데, 검찰도 공모의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고 김 전 지사도 공모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면 형사 재판의 원칙에 따라 무죄 판결이 나와야 옳다. 하지만 1심과 2심은 물론 3심인 대법원까지, 똑 부러지게 이유를 대지도 못하면서, 검찰이 내놓은 알량한 몇몇을 두루뭉술하게 유죄의 증거로 인정된다고 했다.

 

마침 7월 21일은 지난해 김경수 전 지사에게 대법원이 최종 유죄 판결을 내린 날이다. 김 전 지사는 당시 수감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법부가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해도 진실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주권자의 한 명으로서 이렇게 말한다. "사법부는 진실을 밝히지 못한 것이 아니고 진실을 파묻은 것이다."

 

법원 판결은 어지간만 하면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어지간하지도 않으면서 지나치게 존중을 받아왔다. 더이상 존중은 없다. 법원의 판단은 비판받아야 한다. 더 나아가 시민배심원제 도입을 통해 판단 과정을 감시받아야 하고 판단 결과는 통제받아야 한다.

 

--- 2022720경남도민일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2022년 12월 28일 사면으로 창원교도소에서 나오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