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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노배를 보면서 출산 정책을 생각했다

1. 나무로 만들고 넓적한 노를 젓는

노를 저어 움직이는 노배를 보았다. 노도 나무로 만들었고 배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요즘 이런 배 진짜 드물다. 게다가 바닷가 둑방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만치 바다에서 사람이 노를 젓고 있었다. "찌그덕 찌그덕" 노가 뱃전이랑 마찰하면서 내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맺히면서 정말 보기 드문 '인문 경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러 나온 걸음이 아니고 다른 볼 일이 있었는데도 가던 걸음을 멈춘 까닭이었다. 노를 젓는 분이랑 얘기라도 한 자락 주고받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사진만 한 장 찍고 금세 자리를 떴을 텐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옆에는 자전거를 길가에 세우고 바라보는 다른 한 분이 계셨다. 모자를 벗어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고기가 예전 같지 않게 없다는 이야기,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바다가 더러워졌다는 이야기, 저 너머 바깥쪽은 그래도 해류가 돌아서 맑은 편이지만 이쪽 고성만은 막혀서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 농사가 힘들어 남한테 주고 밭뙈기만 하나 부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2. 바라보는 이야기는

그때가 910분 즈음이었는데, 노배를 두고서는 "아직 진동 고현마을 바닷가 같은 몇몇 군데는 남아 있다"면서 "그래도 거의 전부 FRP로 만들었고 순수 나무배는 없다"고 하셨다. 이어서 "나는 힘이 없는데 저 양반은 기력이 좋다"면서 "노를 저으면 팔 운동도 되고 가슴 운동도 되고 허리 운동도 되고 다리 운동도 되니 좀 좋으냐"고 하셨다.

 

내가 "같은 동네에 사십니꺼?"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바다에 붙어 있는 바로 옆 경남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였다. "저 배 큰 편이야. 열 사람도 더 탈 수 있어. 보통 낚시배로 쓰는 건 두세 사람밖에 못 타지. 살 때 300만 원이나 줬다니까." 하셨다. 그 분은 한 30분쯤 있다가 일어나 자전거를 끌고 가셨다.

3. 통발 거두고 내리기

그 사이에 노를 젓는 주인공은 통발을 걷어올리고 있었다. 노를 젓다가 통발을 만나면 안에 든 것을 배에 실은 통에다 털어내고는 통발은 한 켠에 쌓았다. 어떤 때는 통발을 잡고 한 바퀴 돌렸다가 뱃전에 두들기기도 했는데 아마도 비어 있는 통발에서 어떤 불순물을 털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서 제법 먼 데까지 나가더니 이번에는 다시 통발을 내리기 시작했다. 통발이 무엇이든 머금어 다음에 거두어 올릴 수 있도록 다시 내리는 모양새였다. 어느덧 시간은 10시 가까이 되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배에 제법 수북하게 쌓였던 통발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4. 물속에서만 움직이는

노는 온몸으로 젓는 것이 맞았다. 노는 움직이다가 말았다 했다. 통발을 거두거나 내릴 때는 노를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할 때는 노를 움직였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노가 배를 움직일 때만 물 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노는 배가 목적한 방향으로 갈 때도 물 속에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물 속에 있었다.

 

서양 조정을 보면 물을 칠 때는 물속에 있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물 위에 나와 있다. 노배는 아니었다. 가만히 보니까 노를 미는 장면에서 당기는 장면으로 전환되는 순간 손목에 회전을 주어서 각도를 달리했다. 어렴풋하게나마 눈에 잡혔던 그게 노젓기의 핵심이었다.

5. 지나가는 사람은

이윽고 그 분이 돌아오는 길을 잡으셨다. 어깨 너머로 나를 보는 표정이 살짝 긴장되어 있었다. 낯설 때 틈을 타고 들어온 나는 그런 취급을 받아도 싸기는 하다. 나는 다시 모자를 벗었다.

 

"지나가던 사람인데예~~"

"뭐라꼬?"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

"노배를 하도 오랜만에 봐서예, 사진 한 장 찍고 싶습니다예."

 

그러자 얼굴에 얼핏 웃음이 잡히는 것 같았다.

나는 놓치지 않고 사진과 동영상을 번갈아가면서 찍었다. 그 분은 배를 정박시키더니 통에 들어 있는 문어 게 장어 성게 해삼 소라 같은 해물을 집게로 하나씩 집어 광주리로 옮기셨다. 그러고 남은 해파리 등은 바다에 도로 털어 넣으셨다.

 

"별로 많이 못 잡았네예. 내다 팔라고 하십니꺼?"

"어데가, 집에서 먹을라고."

 

6. 실제로 노 젓는 사람은

잇달아 나는 물었다.

 

"노배가 참 보기 힘들던데예."

"그렇지, 이런 노배는 요즘 없을 끼다. 고현에 가면 노배가 있을 낀데 그래도 거기는 다 FRP."

"언제 장만하셨습니꺼예."

"오래 됐다."

"힘들지는 않습니꺼?"

"와 아이라, 마이 힘들지. 그래가 없애뿔라고 생각도 한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그런데도 못 없애고 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아들은 다 컸고 나가 산다 아이가. 그 아들이 저거 아들 델고 한 번씩 오는데 손주들이 오기만 하면 '할아버지 배 타러 가자' 한다 아이가."

 

나는 그 손주들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웃고 즐거워하는 손주들을 바라보며 웃으시는 이 분의 모습도 떠올랐다.

근처 신용리 바닷가에서 보았던 또다른 노배인데, 나무가 아니라 FRP로 만든 것이다.

7. 바라보기와 실제 하기

나는 바라보는 사람과 실제 하는 사람이 느끼는 바가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보는 사람은 자기 처지에 따라 노 젓는 것이 크게 제대로 운동이 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다. 나도 바라보기만 할 때는 그 힘듦을 생각지도 못하고 '참 멋지구나'라고만 여겼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바라보던 그 분도 노 젓는 이 분이 부러웠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비슷한 연령대인데도 노 젓는 이 분은 건장하셨지만 바라보던 그 분은 그렇지 않으셨다. 나는 이렇게 역지사지를 한 번 더 하려니까 잠깐이지만 단순한 머리가 흔들려서 버거웠다.

 

8. 인문 경관을 지키는 일등공신은

그렇게 힘들어도 손주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달게 노를 젓는 할아버지의 마음도 느껴졌다. 아들 녀석들이 그런 마음을 알아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어린 손주들은 언제나 뱃머리에 앉아서 그냥 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할아버지는 바로 그 즐거움을 위해서만으로도 아이들을 싣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간다.

 

할아버지는 해산물을 다 거둔 다음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타고 왔던 것이었고 타고 가는 것이었다. "나도 옛날에는 큰 어선을 했다. 지금은 이것도 힘에 부친다." 또 더하기를 "이번에 좀 많이 잡았으면 나누어 주기라도 할 낀데 그래 못해서 아쉽네." 나는 말했다. "아이구, 아입니더예. 말씀만이라도 배가 부릅니더예."

 

'인문의 경관' 어쩌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모든 것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노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노배를 없애지 않고 지키도록 만든 일등공신은 열 살도 되지 않았을 그 분의 손주다. 우리나라는 출산 정책을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

 

--2023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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